파라오와 이집트에 내리는 심판(29,1-16)
*29-32장까지는 애굽에 관한 예언이다.
애굽은 고대 근동세계에서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강대국으로 존재해 왔고,
이스라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나라다.
야곱은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부터 출애굽 전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400년 동안 살며 한 민족을 이루었다.
이처럼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한 가족 공동체로부터
민족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지만
또한 세속에 빠지게도 하는 유혹의 진원지도 되었다.
애굽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 빠지게 했다.
특별히 列國에 대한 예언들 가운데 애굽에 대한 예언에서만 볼 수 있는
애굽은 미약한 나라로 존속할지라도 역사에 계속 존속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열국들 가운데 애굽에 대해서만 베푸신 특별한 은혜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째서 애굽에 대해서만 이런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한 때나마 나그네 된
이스라엘을 영접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9장은 애굽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과(29:1-7),
전쟁에 패하여 애굽이 흩어지지만 하느님께서 다시 그들을 모아서
미약한 나라로 존속하게 할 것을 말해 주고 있고(29:8-16)
또한 바빌론에 의하여 애굽이 멸망하게 될 것을 말해 주고 있다.(29:17-21).
29,1-7 :
애굽에 대한 예언은 “내가 너를 대적하리라(29:3)”는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이유처럼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다.
애굽의 파라오는 마치 강에 살고 있는 악어처럼
“나일강은 내 것이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교만에 빠졌다.
애굽이 이처럼 교만에 빠진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天惠의 자연 조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나일강 주변의 기름진 토지를 통하여 풍성한 수확을 얻었으며
그들을 둘러싼 사막은 외부 세계로부터 침략을 막아 줄 수 있는
천혜의 요새 역할을 하였다.
이런 자연 환경은 애굽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파라오는 교만에 빠졌다.
그래서 파라오는 “나일 강은 내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서 만들었다.(29:3)” 라고
말함으로 스스로 높아졌다.
하느님은 이처럼 교만에 빠져 있는 파라오를 대적할 것을 말씀하셨다.
“내가 갈고리로 네 턱을 꿰고 네 나일 강의 물고기들을
너의 비늘에 달라붙게 하여 너를 비늘에 달라붙은
나일 강의 물고기들과 함께 나일 강에서 끌어 올리리라.
그리고 너와 나일 강의 물고기들을 모두 광야로 내동댕이치리니
너는 들판에 떨어져 아무도 너를 거두지도 모으지도 않으리라.
내가 땅의 짐승과 하늘의 새에게 너를 먹이로 준 것이다.(29:4-5)”
하느님께서 대적하실 때 누가 그 앞에서 피할 수 있겠는가?
애굽의 모든 풍요도, 천혜의 요새도, 파라오의 왕권도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파라오는 교만하여 자신을 강에 살고 있는 악어에 비유했지만
하느님은 갈고리로 악어의 아가미를 꿰어 들에 버리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말은 파라오가 비록 강에 살고 있는 악어처럼 강한 존재일지라도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교만한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과 더불어 하느님대신
애굽을 의지한 이스라엘의 어리석음도 함께 책망하셨다.(29:6,7)
29,8-16 :
8절, “나 이제 너에게 칼을 끌어들여, 너에게서 사람과 짐승을
잘라 내 버리겠다.”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전쟁을 통하여
애굽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애굽은 전쟁에 패함으로 나라 전체가 황폐하게 될 것이다.
10절, “이집트 땅을 믹돌에서 시에네까지, 에티오피아 국경에 이르기까지”란
최북단부터 최남단까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애굽 전 지역을 말한다.
이것은 성경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역을 말할 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이처럼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애굽의 모든 지역이 황폐하여
사람의 흔적은 물론 짐승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애굽은 대적들에게 포로로 붙잡혀가서 사십 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B.C525-487년 사이에 페르시아가 애굽을 점령한 것을 말할 것이다.
애굽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당하게 될 사십년의 고통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광야 사십 년을 연상하게 한다.
그 후에 하느님은 흩어진 애굽을 다시 故土로 모아주실 것이고
그리하여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애굽은 더 이상 세계에서 강국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미약한 나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열국 중에서 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13-15).
하느님은 애굽을 징계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교만치 않게 해 주셨고
또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이로 인하여 애굽은 연약하지만 한 국가로서 존속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집트를 정복하리라(29,17-21)
18절, “사람의 아들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티로를 치려고
자기 군대에게 힘겨운 일을 시켰다. 모든 군사의 머리털이
빠지고 어깨가 벗겨지기까지 하였지만,
티로를 치려고 애쓴 일에 대한 보상을
그 자신도 그의 군대도 티로에서 받지 못하였다.”
느부갓네살이 13년 동안 띠로를 정복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느님은 바빌론의 이와 같은 수고의 대가로 애굽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나 이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게 이집트 땅을 주겠다.
그러면 그는 이집트의 재물을 가져가고, 약탈질과 노략질을 하리니,
그것이 그의 군대에게 줄 보상이 될 것이다.(29:19)”
이 예언의 말씀대로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은 B.C. 568년 애굽을 침략하여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스스로의 힘에 의한 승리가 아니고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얻은 승리였다.
하느님은 바빌론의 승리를 통하여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향하신 자신의 뜻을 이루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바빌론의 띠로에 대한 침략행위
또는 애굽과의 싸움 등을 모두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하신 것이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29:20).
21절, “그날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에 뿔이 돋게 하고,
그들 가운데에서 네 입을 열어 주겠다.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 “그 날에”란 바빌론이 애굽을 얻는 날을 말한다.
이때 이스라엘 집안에게 한 뿔이 솟아날 것이다.
뿔은 권세와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한 뿔이
솟아날 것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고
보다 더 넒은 의미에서는 메시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회복의 은혜가 임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애굽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애굽의 멸망이 이스라엘에게 주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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