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120편 나는 평화다(7절)

윤 베드로 2022. 11. 24. 07:52

120: 개인 탄원시편,

작가는 거짓을 일삼는 적을 이겨낼 수 있도록 θ의 도움을 간청한다.

또 이 원수를 벌해주시도록 θ께 요청하면서(1-4),

                       이토록 오랫동안 적의로 가득찬 나그네들 사이에 끼어

                       살아오는 것을 비통하게 생각한다(5-7).

 

120편에서 134편까지의 모든 시편들은

                  “순례의 노래(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이런 제목이 붙은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시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불렀던 노래라고 하였고,

다른 이들은 이 시들이 흩어진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불렀던 노래라고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여인의 뜰에서 이스라엘의 뜰까지 이르는

                15개의 계단을 오를 때 한 계단 마다 한 개의 시편을 노래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여기 15개의 시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시는 순례자들이 각지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갈 때

            부른 찬송이라고 말하고 있다.

 

1. 거짓말쟁이로부터 구원

1 [순례의 노래]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나에게 응답하셨네.

2󰡒주님, 거짓된 입술에서 속임수 혀에서 제 목숨을 구하소서.󰡓

3 속임수 혀야 너 무엇을 받으랴? 너 무엇을 더 받으랴?

4 전사의 날카로운 화살들싸리나무 숯불과 함께 받으리라.

 

2. 평화의 선언

5 , 내 신세여! 메섹에서 나그네살이하고

           케다르의 천막들 사이에서 지내야 했으니.

6 나는 평화를 미워하는 자들과 너무나 오래 지냈구나.

7 내가 평화를 바라고 이야기하면 저들은 전쟁만을 꾀하였다네.

 

120: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이 흩여진 유대인들이 節氣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갈 때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면,

              여기 120편은 시인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자 했을 때

              그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기를 탄원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나에게 응답하셨네.

         주님, 거짓된 입술에서 속임수 혀에서 제 목숨을 구하소서(120,1-2).”

시인이 예루살렘을 향하고자 했을 때 누가 그것을 방해 했는지

             본문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이 이방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그를 방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와 함께 사는 자들 가운데 신앙에서 떠나 세속화된 동료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련 가운데서 시인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느님을 기억했다.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나에게 응답하셨네.라는 고백은

          과거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심으로

          시련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시인이 이처럼 과거의 기도 응답을 기억한 것은

             기도 응답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께 현재 자신이 당하고 있는

             시련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탄원하고자 함이었다.

 

다음으로 시인은 시련 가운데서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이

                 그 행위로 인하여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속임수 혀야 너 무엇을 받으랴? 너 무엇을 더 받으랴?

              전사의 날카로운 화살들을 싸리나무 숯불과 함께 받으리라(120,3-4).”

시인이 악인들에 대하여 생각하였을 때, 그들이 악을 행함으로 얻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장사가 쏜 날카로운 화살처럼 하느님의 심판의 화살을 맞을 것이고,

            또한 싸리나무의 숯불과 같이 혹독히 뜨거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불신의 세계에 살며 고난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시온에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새롭게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었다(120,5-7).

여기 메섹케다르는 부족 이름이다.

유대인들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이곳까지 가서 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시인은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이 이방 세계에 사는 것 자체가 고통임을 말하였다.

그곳에서 자신이 평화를 말할지라도 그들은 싸우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인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신앙대로 살고자 할수록 더 큰 시련을 당할 수 있다.

본 시편은 이와 같은 때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지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