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118편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15절)

윤 베드로 2022. 11. 11. 07:47

118 : 개인 감사시편,

이 시편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작가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뭇 나라에 대해

               주님께서 어떻게 승리를 거두시는지 열거하고,

또 그들이 얻은 구원이 주님의 놀라운 역사이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주님의 일에 있어 빼어난 일부분이 된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이 시는 할렐(Hallel)노래 부분을 끝맺는 시편(113-118)이고,

                또 서로 화답하며 부르는 화답송이다.

 

1.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1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2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3 아론의 집안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4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2. 하느님의 구원

5 곤경 속에서 내가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으로 이끄셨네.

6 주님께서 나를 위하시니 나는 두렵지 않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7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나는 내려다보리라.

8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네, 사람을 믿기보다.

9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네, 제후들을 믿기보다.

10 온갖 민족들이 나를 에워쌌어도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무찔렀네.

11 나를 에우고 또 에워쌌어도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무찔렀네.

12 벌떼처럼 나를 에워쌌어도 그들은 가시덤불의 불처럼 꺼지고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무찔렀네.

13 나를 쓰러뜨리려 그렇게 밀쳤어도 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셨네.

14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네.

15 의인들의 천막에서는 기쁨과 구원의 환호 소리 터지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16 주님의 오른손이 드높이 들리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17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18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

19 내게 열어라, 정의의 문. 그리로 들어가서 나 주님을 찬송하리라.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네.

21 제가 당신을 찬송하니 당신께서 제게 응답하시고

             제게 구원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3. 승리의 의미

22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23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24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25 ,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 주님, 번영을 베푸소서.

26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네.

27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제단의 뿔에 닿기까지 축제 제물을 줄로 묶어라.

28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찬송합니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립니다.

29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118:

시인은 이스라엘 집을 향하여 주님을 찬송하여라고 권고하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로서 좋으신 분이시고,

             자애는 영원하시다.라고 말했다(118,1-4).

즉 하느님께서 선하시며 자애가 영원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 하느님의 좋으심과 자애하심은 서로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인

         병행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인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애하심이 영원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시간적으로 변함이 없고

            질적으로도 변함이 없는 언제나 여전하다는 의미다.

 

시인은 이처럼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에 대하여 일반론적으로 말한 후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말하므로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애하심이 현실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였다(118,5-21).

그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말하고 있다.

곤경 속에서 내가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으로 이끄셨네(118,5).”

그는 기도의 응답으로 고통 중에 있던 자신이 지금은 광활한 곳에 있다고 말하였다.

이로 인하여 시인은 주님은 내편이시다(118,6)”고 고백할 수 있었고

            또한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네, 제후들을 믿기보다(118,9)”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고백들은 시인으로 하여금 두려움으로부터 평안으로 나가게 했고,

          원수들로 에워싸여 있을 때에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시인은 체험적 신앙으로 인하여 평생 주님의 하신 일을 선포할 것을 원했다.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118,17-18).”

체험적 신앙은 진심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고

            또한 하느님의 징계조차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118,19-21).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한 모든 사람의 간절한 소원은 이처럼 주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성전 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118,22-29).

시인은 성전에서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했다.

여기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란 무가치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돌을 집의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다.

물론 모퉁이 돌은 벽을 연결하여 전체 구조를 완성케 하는 요긴한 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의 은혜는 쓸모없는 자를

                가장 요긴한 자로 만들어 주신다는 의미다.

그는 계속 말하고 있다.

,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 주님, 번영을 베푸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네(118,25-26).”

시인은 주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구하며

            또한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복의 근원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았다.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제단의 뿔에 닿기까지 축제 제물을 줄로 묶어라.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찬송합니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립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118,2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