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9/12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윤 베드로 2020. 9. 13. 07:51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에서 교회는 하늘 나라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형제적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흔히 ‘교회의 복음’이라고 일컫는 마태오 복음에서 ‘형제애’란,

       공동체 구성원의 상호 책임을 바탕으로 한 끝없는 용서와 화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 시대에 아이를 사고파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내와 자식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이야기는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빚의 문제가 아니라 형벌의 문제로 뒤바뀐 이 불행한 이야기는 26절부터 급격한 반전을 보여 줍니다.

종이 엎드려 애원하니 주인이 종의 빚을 탕감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조건이나 약속도 없이 주인은 종의 간절한 청을 기꺼이 들어준 것입니다.

주인의 자비는 주인이 ‘빚’이 아니라 ‘부채’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빚’(오페이레테스)은 상당한 책임과 의무, 그리고 죄책감마저 담고 있는 단어인 반면,

           ‘부채’(다네이온)는 상호 동등한 경제적 거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입니다.

주인이 종의 빚을 탕감하는 것은,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동등한 형제적 관계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빚을 탕감받은 종의 무자비함에서 불행은 다시 불거지는데,

             자신에게 빚진 동료를 감옥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동료’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쉰둘로스’인데, ‘쉰’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의미를 지니지요.

함께해야 할 사람을 감옥에 내던지는 이의 냉혹함은 주인의 자비로움과 대비되어, 보는 이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교회는 저마다 사는 처지가 다르고 능력이 달라도 서로 형제로서 책임을 함께 지는 데 그 본디 가치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한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빚이 있습니다.

네가 있기에 내가 살아간다는 최소한의 책임 의식이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사회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돈 몇 푼에 살의마저 느끼는 살벌한 세상에 교회의 형제애는 눈물겹도록 요긴한 신앙인의 책무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