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오늘의 묵상
자식의 죽음 앞에 심장이 터지고 허파가 뒤집히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제자를 두고 당신의 어머니와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심정 역시 떠나가는 이의 진한 아쉬움을 담아냅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서로에 대한 사무친 사랑의 절정에 교회는 그 시작을 알립니다.
갈수록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저 하나의 목숨을 유지하고자 세상은 사활을 건 전쟁터가 된 지 오래입니다.
죽어 가는 세상에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기억하고 일으켜 세우는 일이 교회의 일이라는 사실도,
꽤 오래전부터 죽어 왔음을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수많은 신심 활동과 사목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며,
신앙이 결국 교회의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미사를 마칠 때마다 곱씹어 봅니다. 미사는 파견입니다.
미사는 세상살이를 위한 준비고 다짐이며, 그 미사 속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당신을 내어 바치십니다.
세상에 이 한 몸 살라 바쳐 세상이 새로운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미사를 마치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나가는 이웃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도 좋고,
가끔은 원수 같이 보이는 남편이나 부인에게 살뜰한 애교 섞인 말을 건네도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목숨 바치시어 돌아가시는데,
그 정도도 못하면서 미사 시간에 거룩히 앉아 복음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은, 참 민망한 일이겠지요.
신앙은 세상 끝까지 뻗어 나가는 속성을 지닌 생물이지 멋진 어항에 갇혀 있는 관상어가 아닙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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