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9/14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윤 베드로 2020. 9. 14. 07:22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고통과 슬픔의 상징인 십자가가 영광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요한 복음입니다.

구약의 구리 뱀은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특효약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불만에 불 뱀을 내리신 하느님께서

          모세의 간청으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시고자 구리 뱀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요한 복음에서 구리 뱀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이상 죽음과 고통,

       그리고 슬픔의 상징으로 여기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대개 삶의 고통과 슬픔을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도우심으로 얼른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고통과 슬픔 안에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울어 주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영광과 기쁨 속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즐거이 함께하셔야 한다는 강박이

          신앙을 괴이한 처세의 도구로 타락시키고 맙니다.

요한 복음이 쓰인 당시 교회 공동체는 늘 박해의 위협 속에 살아갔습니다.

얼른 박해가 끝나고 고통이 없는 행복의 나라에서 주님을 섬기고자 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였을까요.

그러한 공동체에 요한 복음은, 세상의 구원은 십자가의 희생, 바로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려울수록 서로를 배려하는 나의 자그마한 희생 안에서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고,

               거기에 참된 행복과 영광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요한 복음은 짚어 냅니다.

지금을 불평하는 것은 지금을 죽이는 것이고, 지금의 상황이 어떻든 서로 나누고 토닥이고 보듬어 주는 것은

          지금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삶의 고통이나 슬픔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마저 함께하는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