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민수기 공부

민수기 15장 공부 : 여러 제물에 곁들이는 곡식 제물과 제주

윤 베드로 2017. 12. 23. 07:29

여러 제물에 곁들이는 곡식 제물과 제주(15,1-16)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대는 가데스바나에서 불신앙의 죄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다만 그들의 후손들에게만 허락 되었다.

여기 15장은 하느님께서 후세대들을 위하여 주신 말씀으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드려야 할 제사들에 대한 말씀이다.

 

15,1-10 :

여기 너희는 이제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될 땅에 들어가라는 말씀은 

        출애굽한 세대 다음 세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출애굽한 첫 번째 세대 중에는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그 땅으로 들어갈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이것을 말씀해 주신 것은

첫 세대에 대한 징계로 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느님의 약속은 변함없으시다.

첫 세대가 불신앙으로 인하여 그 약속을 받을 수 없다면

하느님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약속을 받게 하신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약속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성실하심이 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불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교통할 수 있었고,

이것은 그들이 택한 백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을지라도 하느님과 교통하는 삶을 산다면

그곳에서도 복된 삶을 살 수 있었다.

반면에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곳에서 하느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곳은 그들에게 복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없었다.

이것은 하느님 백성들의 복된 삶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의존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화제와 번제를 서원을 갚는 제로 드리든지,

낙헌제로 드리든지 아니면 정한 절기제로 드리든지

그 예물을 드리는 자는 기름 섞인 고운 가루의 소제와

포도주의 전제와 함께 드려야 한다.

그 소제와 전제의 양은 그 제물로 죽여 드리는 짐승의 종류에 따라 정하여졌다.

어린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사분지 일을 준비해야 했다(15:1-5).

수양이면 그들은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한 힌의 삼분지 일을 섞어 예배해야 했다(15:6,7).

수송아지면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삼에 기름 반 힌을 섞어서 드려야 했다(15:8-10).

이런 제사들은 그들이 광야에 있든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든지

마찬가지로 언제나 변함없이 드려야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하느님과 교통하는 삶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을 초월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우리는 광야에서도, 약속의 땅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15,11-16 :

11,12절은 앞에서 언급한 소제와 전제물의 분량은 그 드려진 수송아지나

수양이나 어린 수양이나 어린 염소의 마리 수마다

그 수효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13,14절은 이 법은 본토인이나 그들 가운데 거하는 외국인이나

동일하게 적용됨을 말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임을 말한다.

즉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은

이방인에게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방인 가운데 하느님께 제사 드리기 원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방법에 따라 제사를 드려야 했다.

 

첫 반죽 봉헌물(15,17-21)

 

하느님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곡식을 거두었을 때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하느님께 드리도록 명하셨다.

하느님께서 첫 추수와 관련하여 드리도록 하신 것은

첫째 단(레위23:11)과 첫 가루 그리고 첫 번째로 만든 떡이다(23).

하느님은 이런 예물을 드리도록 하신 것은

그들을 축복해 주시고자 하심이었다(에제44:30).

 

실수로 지은 죄를 벗는 제물(15,22-31)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속죄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것은 지금 죄를 지은 자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위하여 주신 은혜다.

하느님은 우리가 얼마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연약한 자들이라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지금 범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범죄 할 때마다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 길이 바로 속죄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길을 통하여 언제나 거룩하신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 놀라운 은혜의 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

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겼습니다.(히브10:19-22)”

 

안식일을 어긴 자에 대한 벌(15,32-36)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 그들 가운데 안식일을 범한 자가 있었다.

그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붙잡아 모세와 아론에게 끌고 왔으나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를 가두고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를 반드시 죽이도록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진영 밖에서 데려가서 돌로 쳐 죽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 가운데 참으로 두려운 이야기다.

 

옷자락에 다는 술(15,37-41)

 

하느님은 이스라엘 대대로 지켜야 할 한 가지 규칙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옷단 술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것을 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들을 기억하도록 함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함으로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

으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규칙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첫 걸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우리의 삶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말씀에 따라 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이 말씀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말씀을

의식할 수 있도록 자신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에게 이 수단이 바로 옷단에 술을 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