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반란을 일으키다(14,1-9)
14,1-3 :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후 이스라엘은 낙담했다.
그래서 그들은 밤새 울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사고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환경과 時流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이처럼 낙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은 보고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보고(열 명의 불신앙의
사람들과 두 명의 믿음의 사람)였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수가 불신앙적인 보고를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의 보고도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두 보고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만일 결론을 낼 수 없다면 다시 새로운 정탐꾼을 보내어
사실 여부를 재확인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했더라면 그들이 그날 그토록 낙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조건 다수의 말을 권위로 받아들이고
믿음의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불행은 불신앙적인 정탐꾼들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이 문제의 원인이었지만 생각할 수 있는 기회에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다수를 따랐던 이스라엘이 더 큰 문제였다.
밤새도록 울부짖은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우리는 칼에 맞아 쓰러지고, 우리 아내와 어린것들은
노획물이 되게 하시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14:2-3).
얼마나 터무니없는 원망인가? 그들은 지금 망하지도 않았고,
무슨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낙담하고 원망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그때야 말로 하느님께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약속의 땅 앞까지 인도하신 때였다.
이처럼 그들은 가장 기뻐해야 할 바로 그때 오히려 낙담하고
하느님과 그들의 인도자들을 원망하는 어리석음에 빠졌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보는 것에 따라 행한다면
그들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아야 한다.
동일한 환경을 믿음의 눈으로 보느냐 불신앙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14,4-9 :
본문은 성경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와 같이
어둠이 승리하고 義가 무너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신앙으로 가득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인도하였던 모세와 아론을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처럼 불신앙이 이스라엘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때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리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무고히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이와 같은 때 갈렙과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불신앙으로 완악해진 이스라엘을 향하여 믿음의 소리를 외쳤지만
그들의 귀는 이미 불신앙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광야의 외치는 소리처럼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은 오히려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려했었다.
불의가 세상을 지배하려는 순간 의가 넘어지려는 순간 주님께서 개입하셨다.
“온 공동체가 돌을 던져 그들을 죽이자고 말해 댔다. 그때 주님의
영광이 만남의 천막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났다.(14:10)”
이스라엘의 수많은 회중 가운데 모세와 아론 그리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거의 무시 될 정도의 지극히 적은 수였다.
그래서 수적으로 볼 때 그들이 패한 듯 보였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의 수와 관계없이 믿음의 사람들의 편이시다.
하느님은 결코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것이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반전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수의 불신앙의 사람들이 소수의 그들을
삼키려 했지만 이제부터 믿음의 사람들 소수가 다수를 무너뜨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다(14,10-19)
14,10-12 :
하느님은 지금 이스라엘이 총체적으로 불신앙 가운데 빠져서
하느님을 멸시하고 자신들의 인도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멸하시려 하셨다.
여기 “이 백성은 언제까지 나를 업신여길 것인가?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일으킨 그 모든 표징을 보고도,
이자들은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을 것인가?”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불신앙에 빠졌을 때마다
오래 참으시고 다시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이 어리석은 백성은 깨닫지 못하고 계속 하느님을 불신하고
멸시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14,13-19 :
모세는 하느님께로부터 두려운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구했다.
모세가 이처럼 간구한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
모세의 마음에는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행하는 모든 일은 무지로 인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더라면
그리고 자신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지도자로 알았더라면
지금 그들이 하는 불신앙적인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무지함으로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그들이 하느님을
바로 알게 될 때 그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용서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했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을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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