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민수기 공부

민수기 9장 공부 : 두 번째 파스카 축제

윤 베드로 2017. 12. 19. 06:54


두 번째 파스카 축제(9,1-14)

 

9,1-5 :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에서 일 년 쯤 머물렀을 때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과월절을 지키도록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미 이전에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여

그것을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전에 이미 과월절을 제정해 주셨고

        또한 대대로 그것을 지킬 것을 명하셨다(탈출12:1-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비록 광야에 머무르고 있었을지라도

과월절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언제나 순종해야한다.

과월절은 정월 십사일 저녁부터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다.

 

9,6-14 :

이때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되어

과월절을 지킬 수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월절 당일에 모세와 아론에게 와서 자신들을 금하여

과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한 이유에 대하여 듣기 원했다.

그들의 질문 내용으로 볼 때, 그들이 시체를 만진 것은

공적 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추측케 한다.

즉 이스라엘 가운데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자신들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시체를 만진 것은 공적 일이므로

사적인 일로 인한 것과는 다르게 생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그들의 물음이 타당성이 있음을 알고 잠시 기다리게 한 후,

하느님께 나가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해 주기를 청하였다.

하느님은 모세의 물음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너희와 너희 후손들 가운데 누가 주검에 닿아 부정하게 되거나,

먼 길을 나선다 해도,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이런 이들은 둘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 (9:9-12)”고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그들 외에도 이후에도 불가피한 문제로 인하여

정해진 과월절 절기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한 달을 연기해 주셨다.

 

이스라엘이 과월절을 지킬 때 규정에 따라야 했다.

그들은 정월 십사일 해질 무렵 과월절을 지켜야 했는데

그 저녁에 그들은 어린 양과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을 먹어야 했다.

여기 어린 양은 대속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애굽에서 장자를 치실 때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려 주신 것은

어린양의 희생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에 먹어야 하는 무교병은 애굽을 떠날 때 급히 떠나서

아직 부풀지 않은 반죽을 가지고 갔던 일을 회상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과월절을 지킬 때마다 무교병을 먹음으로

그들이 살 곳은 애굽(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想起하는 것이다.

이런 상기를 통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속화됨으로부터

다시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과월절에 쓴 나물을 먹어야 했다.

여기 쓴 나물이란 애굽에서 그들이 받았던 고통을 상징한다.

이들이 과월절에 쓴 나물을 먹으며 노예로서 살았던 고통을 회상한다면

지금 은혜 가운데 사는 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과월절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아

세속화됨으로부터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또한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즉 이스라엘에게 과월절은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과월절을 그릇 지키거나 또는 지키지 않는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엄중히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서 이와 같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신앙의 고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않는다면

세속화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이것을 율법으로 정해 주심으로

하느님의 백성 모두에게 신앙의 고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광야 길을 인도하는 구름(9,15-23)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였을 때 하느님은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

이와 같은 인도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성막이 완성 되었을 때 성막 위로 옮겨졌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성막 위를 바라봄으로 하느님께서 나타내 보이시는

징조에 따라 인도함을 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볼 때 처음 이스라엘이 출애굽 했을 때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특정한 장소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 앞에라는 말로서 표현할 수 있는 불특정 장소에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성막이 지어진 후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성막 위라는 특정한 장소에 나타났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결코 우연으로 돌릴 수 없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할 때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 때 하느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런 인도하심은 그들이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여기 늘 그러하였다(9:16)”라는 말이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즉 하느님은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언제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앞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피어오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한다면 日常가운데

피어오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아야 할 것을 말해 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일상으로 돌리기 때문에

일상 가운데 피어오른 인도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은 철저히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따랐다(9:22-23).

이스라엘이 언제나 이처럼 행하였더라면 약속의 땅을 향하는 여정은 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은 듯하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여정에 이스라엘이 언제나 이처럼 행하였더라면

약속의 땅을 향하는 여정은 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은 듯하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여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많은 원망과 불평은

이와 같은 사실들을 추측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