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르인(6,1-21)
*6장은 나지르인의 서원에 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나지르인은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나면서부터 나지르인 된 자가 있고,
일정 기간 동안 나지르인 서원을 함으로
스스로 나지르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나지르인은 하느님을 위하여 스스로를 구별해야 했다.
6,1-12 :
여기에 언급하고 있는 나지르인은 나면서부터 나지르인이 된 자에 대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서원을 하고 일정 기간 동안 나지르인이 되는 경우이다.
문자적인 의미로 “나지르인”이란 “구별하다”에서 나온 말로서
“구별된 자”를 말한다.
즉 자신을 구별하여 하느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사람,
하느님을 위하여 그리고 그를 섬기기 위하여
구별된 삶을 살기로 서원한 사람을 말한다.
나지르인 서원은 남녀 구별 없이 자원하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지르인이 된다는 것은 “나지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위하여 스스로를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은 나지르인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위해 해야 할 일을 말해 주고 있다.
나지르인으로 서원한 사람은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포도주, 독주, 포도주 초, 독주 초, 포도즙,
생포도나 건포도 등을 먹어서는 안 되었다(6:3-4).
하느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보면 독주와 포도나무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술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금하신 것은
온전한 정신으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려 하심이었을 것이다.
또한 술과 포도나무에서 생산되는 것들은 잔치나 축제 때 사용하는 음식들이다.
따라서 이것들을 금한 것은 서원한 기간 동안은 육체의 즐거움을 떠나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향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별히 금식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향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또한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은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하여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되었다(6:5).
성경에서 머리는 힘의 원천을 상징하기도 하고(판관16:17)
또한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였다(잠언20:29).
그러므로 나지르인으로 서원한 기간동안 머리에 면도를 대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드린 구별된 자로서 영광스러움을 나타낼 것이다.
실제로 인간에게 가장 영광스런 일은 창조주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때일 것이다.
나지르인은 서원한 기간 동안 屍體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죽었을지라도 서원한 기간 동안은
서원을 지키는 것을 우선하라는 것이다(6,7).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방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나지르인이 자의적인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닐지라도
시체와 접촉하면 그는 부정하게 되어
나지르인으로서 서원한 것이 무효가 된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이 정한 것에 따라 번제와 속건제를 드림으로
죄를 보속해야 하고, 그 후에 다시 나지르인 서원을 해야 한다.
6,13-21 :
여기 “나지르인 법”이란 서원한 기간이 다 하였을 때 지켜야 할 법을 말한다.
이것은 나지르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원한 기간 동안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 기간 동안 서원을 지킨 자만이 나지르인 법을 적용할 자격이 있다.
제사장은 서원한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가서
율법이 명한 대로 제사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
그리고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무교병 한 광주리,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려야 한다.
또한 나지르인은 회막문에서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어야 한다.
이때 제사장은 삶은 수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를 취하여
나지르인의 두 손에 두고 주님 앞에 요제로 흔들어야 한다.
요제로 흔든 제물과 또한 흔든 가슴과 들어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 되고
이것은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사제의 축복(6,22-27)
하느님은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말해 준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거룩한 삶으로 구별된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축복권”을 위임해 주셨다는 것이다.
여기 나지르인이 서원을 마쳤다는 것은 나지르인의 법에 따라
정해진 기간 동안 모든 절차를 마쳤다는 의미로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제사장에게 서원을 마친 자를 축복해 주라는 것은
자신을 거룩하게 준비한 자들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서원을 마친 자들을 다음과 같이 축복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 축복은 “주님께서 네게 ∼해 주시기를 원하며”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을 복의 근원으로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축복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다.
하느님은 복의 원천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으로는
이웃에게 복을 줄 수 없지만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제사장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
하느님은 그들이 축복한대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6:27)”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제사장은 하느님께 축복권을 위임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구약 시대 하느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위임해 주신 축복권이
신약 시대에는 보다 더 일반화되었음을 보게 된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10:12,13)”
여기 평안을 빌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은 제자들인데,
그들은 주님의 열두 제자만을 말하기 보다는
보다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시대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시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열두 제자들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이웃에게 평화를 빌어 줄 수 있는 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축복 권은 모든 사람이 화평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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