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요한묵시록 공부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든 천사(10,1-11)

윤 베드로 2016. 8. 30. 16:47

4.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든 천사(10,1-11)


이 짧은 장은 일곱째 나팔을 불기에 앞서 일종의 도입부분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이 환시는 우리를 묵시록이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부에로 인도해 간다.

비록 묵시10,7에 일곱째 나팔에 관한 언급이 살짝 비치긴 하지만 실제로 나팔소리가 나는 것은 11,15에 가서이다.


[1-2절] 힘센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모습을 아주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힘센’이라는 표현은 묵시록에서 세 번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힘센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자격이 있는 자    가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5,2)

또 나는 힘센 다른 천사 하나가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10,1)

힘센 한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바윗돌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며 말했습니다.(18,21)

 

이 천사는 아마도 “가브리엘” 대천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힘센”이라는 뜻의 “기보르”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이 천사는 예외적일 정도로 품위있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져 있으며, 얼굴은 태양같이 빛나고, 불기둥과 같은 두 발중 오른발은 바다를 디디고 왼발은 땅을 디디고 있었다. 이렇게 무지개를 머리에 두른 천사의 모습은 묵시4,3의 옥좌에 좌정하고 계신 창조주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옥 같았으며 그 옥좌 둘레에는 비취와 같은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묵시4,3)

그런 이유로 이 천사를 그리스도와 동일시 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묵시록의 그 어느 곳에서도 천사가 천사로서의 특정 이외의 다른 특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두루마리” : 하느님의 메시지나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인자의 메시지를 의미한다. 공동번역은 단순히 “작은 두루마리” 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원문을 보면 “아주 작은 두루마리” 이다. 이 두루마리는 펼쳐져 있다. 어린양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두루마리는 일곱 개의 봉인으로 봉해져 있어 어린양만이 그 봉인을 떼고 그 내용을 설명해 주실 수 있는 반면, 이 두루마리는 펼쳐져 있다. 이는 그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 내용은 힘센 천사의 말에 따라 환시를 본 요한이 선포해야만 하는 것이다.(11절) 이 작은 두루마리가 하느님의 아들이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복음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점은 묵시록 본문을 통해서 곧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이 두루마리에 대해서는 8-10절에 가서야 다루어진다.


그 천사는 “오른발로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 있었다 : 그 천사는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자로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작은 두루마리 속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우주 전체에 관계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 말씀이 보편적이고 공번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천사의 모습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3-4절]사자가 으르렁대는 것처럼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 작은 두루마리 속에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가 중요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큰 소리” 부르짖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 큰 소리는 표효하는 사자의 소리에 비유되고 있다. 천사의 그런 외침에 대해 일곱 천둥이 각각 제 소리를 내며 응답한다.


일곱 천둥” : 여기서 ‘천둥’은 묵시4,5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옥좌에서는 번개가 번쩍였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옥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훨훨 타고 있었습니다. 그 일곱 횃불은 하느님의 일곱 영신이십니다. (묵시4,5)

묵시자는 이 일곱 천둥의 소리를 기록하려는 강한 충동을 받지만, 기록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받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성서말씀을 통해 당신의 현존을 알려주시지만, 비록 그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해독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분의 현존을 완전하게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목소리는 복음을 듣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들려지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일곱 천둥이 내는 각 소리가 인간적 언어로는 표현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비밀에 붙여두라’는 대목은 다니엘12,4-9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일곱 천둥의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끝내 비밀에 붙여지고 만다.


[5-7절] 이 대목 역시 다니엘서의 영향을 크게 받은 대목이다.

모시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서 있던 분이 두 손을 하늘로 쳐들고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두고 맹세하는 말이 들렸다.”(다니12,7)

사람들은 맹세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오른 손을 쳐든다. 그런 행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관습적인 모습이다. 손을 펼쳐든다는 것은 ‘맹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법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한다는 것은 맹세의 가장 장엄한 형태이다.(창세21,23)

 

그것은 하느님을 맹세의 증인으로, 그리고 맹세의 보증인으로 내세움으로써 가장 높은 권위를 원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맹세한 것은 지고의 확실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천사의 맹세내용은, 종말에 관한 것이다. 과거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시대와 그 예언이 구현되는 시기 사이에 더 이상 지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시간은 성취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될 것이다. 또한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해 주며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될 것이라고 맹세한다.

이 작은 두루마리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어느 곳에서든 선포될 때마다, 일곱 번째 나팔은 울려 퍼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 때에 인간들은 영원하신 하느님(임마누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창조하시고” : 이 문구는 출애20,11의 문구와 글자까지 일치한다.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 :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신비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느님의 숨은 계획이 예언자들에게는 알려져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보이시고 그분은 "받아 먹어라. 너 사람아, 이 두루마리를 먹어라" 하고 말하셨다. "그리고 가서 이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일러 주어라." 내가 입을 벌리자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내가 주는 이 두루마리를 배부르게 먹어라." 그리하여 그것을 받아 먹으니 마치 꿀처럼 입에 달았다.

[8-11절] 이제 드디어 “작은 두루마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두루마리”에 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제키엘서3,1-3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는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에제2,9-10에서는 “두루마리”에 대해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바라보니, 한 손이 나에게 뻗쳐 있는데 그 손에는 두루마리책이 들려 있었다. 그분이 두루마리를 펴 보이시는데 앞뒤에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소리가 기록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정 반대로 두루마리에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소리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묵시록의 이 부분에서도 묵시자는 한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건네받아서 그것을 삼키자 에제키엘의 경우에서처럼 입안에서는 꿀맛같이 달았다. 그러나 배에 들어가자 배가 아팠다.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먹는다는 것은 그 두루마리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비록 복음말씀이 실제적으로 꿀처럼 감동과 위안을 주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하더라도, 복음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쓴맛과도 같다.

예언자 에제키엘이 삼켜야만 했던 두루마리는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소리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여기서 힘센 천사가 건네주는 두루마리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두 사건을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