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요한묵시록 공부

여섯째 나팔(9,13-21)

윤 베드로 2016. 8. 30. 15:35

3. 여섯째 나팔(9,13-21)


여기서는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나 한 음성을 개입시키고 있다. 그 음성은 하느님 앞에 있는 금제단의 네 뿔로부터 나오고 있는데, 이 금제단은 8,3에 언급된 제단을 지칭한다.

여섯째 나팔소리와 함께 유프라데스 강에 매여 있는 네 명을 천사들이 풀려 나온다.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효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있다. 말과 기마병에 대한 묘사 역시 앞의 메뚜기들에 대한 묘사처럼 진기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말들이 ‘머리가 사자 머리와 같고 꼬리가 뱀처럼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 꼬리 끝에 뱀 대가리가 달려서 독아(毒牙)로 사람들을 해친다’고 묘사한다.

그 말들의 입에서 뿜어대는 불, 연기, 유황 세 가지 재앙으로 인류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한다. 이런 혹심한 재앙을 당하고 나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뉘우칠 줄 모르고 완고하게 우상숭배와 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13-14절]매어 있는 네 천사를 풀어놓아라” : 이 네 명의 천사는 묵시7,2-3의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네 바람을 제지하고 있는 네 천사와는 다른 천사들이다. 여기서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매어 있는 천사들이라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15-17절] 이 천사들은 사람들을 해치게 될 것인데, 그들의 활동은 아직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우상숭배의 함정에 빠져들어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삼분의 일만이 죽게 된다고 15절은 말한다. 즉 아직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 중의 삼분의 일을 죽이는 것” 말과, “매여 있는 네 천사를 풀어준다”는 말은,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점은 지혜서가 잘 말해준다.

그래서 이교도들의 우상들도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것들이 비록 하느님의 창조물이기는 하지만 가증스러운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며 사람의 마음을 홀리고 어리석은 자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이 되었기 때문이다.”(지혜서14,11)

우상숭배란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거스르는 것으로 죽음으로 가는 죄이다.(로마5,12)유프라테스에 매여 있다가 풀려난 네 천사들은 믿지 못할 정도로 2억이나 되는 기병 군단으로 불어나게 된다. 기병대의 수효가 ‘2억’이나 된다는 것은 실제적인 숫자가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1세기경 로마 제국의 주민은 대략 8천만 명 정도였다. 그러므로 2억이라는 숫자는 전체 주민의 두 배 반이나 되는 숫자이다. 그들의 무기는 ‘’과 ‘연기’와 ‘유황’, 이렇게 세 가지였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우상숭배와 연계되어 있으며, 자주색은 우상숭배의 성서적 색깔이다(예레10,9; 에제23,6).


[18-19절] 이 기병들은 무엇이든 태워버리는 불과,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연기와, 불모지가 되게 하는 유황을 쏟아 붓기 위해 속임수를 가지고(뱀의 꼬리-뱀의 술책), 지혜(갑옷의로 상징)와 말(토해내는 입)로써 온 힘을 다해서(사자의 이미지-17절), 전 실존으로(머리와 꼬리로:이사9,13) 행동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인해 사람들 중의 삼분의 일이 죽게 될 것이다.


[20-21절] 종결문

이러한 재앙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우상을 섬긴다. 이 종결문을 통해 비로소 지금까지의 문제의 핵심이 하느님을 거부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 가운데 삼분의 일이 헤어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우상숭배를 일삼는 자들이 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것들을 선동한다(살인, 마술, 음행). 그리고 우상들은 인간의 품위를 감소시켜 나가고(금-돈-은-돌-나무), 영혼의 타락을 증대시키면서(보다-듣다-걸어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리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하느님은 출애굽시대에도 이집트 백성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신다. 이들은 파라오를 태양신의 아들로 섬기며 우상숭배를 하던 민족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압제 하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집트 탈출 이후에 배고프고 힘겨운 광야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전의 이집트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하였다. “비록 이집트에서는 노예로 살긴 했어도 먹을 것은 있었지 않는가? 마실 물은 있었지 않았는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집트로 돌아가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파라오의 노예가 되자.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대의 유혹이었다.

묵시록은 출애굽시대의 재앙들을 일부 인용하여, 하느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재앙과 심판을 하나하나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한 묵시자는, “사자의 모습”(17절)을 하고 있는 천사(악의 세력)와, “살해당한 것” 같이 무력해 보이는(5장6절) 어린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유일하신 하느님과, 군단인 사탄(묵시9,16; 마르5,9) 사이에서, 즉 우상과 거룩하신 분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사탄은 “사자”의 모습을 한 강력한 “군대”로 묘사된다. 그러나 반면 어린양은 “살해당한 것 같은” 연약하고 매력이 없는 모습이다. 이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똑같이 느낀 감정이다. 로마 황제는 사자와도 같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강력한 군대로 무장하고 있다. 그는 로마의 화려한 왕궁에서 신으로 숭배를 받고 있는 눈에 보이는 지상 최고의 권력자이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런 힘도 없으며, 더 이상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다. 여기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혹을 받는 것처럼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며 안전을 약속받느냐? 아니면 가나안 땅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다시 옮기듯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섬기며 순교를 각오하겠는가?

그것은 크나큰 유혹이자 고민거리이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은 매력적이다. “안전와 평안을 선택하라” 과연 누가 그와 같은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신앙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낙원의 행복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절제와 희생과 자기포기와 봉헌이라는 고통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로 돌아갈까?” 하는 유혹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받게 되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면 나를 힘겹게 만드는 계명도 희생도 필요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