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탈출기 공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다(2,23-25)

윤 베드로 2014. 3. 21. 12:46

3).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다(2,23-25)

 

23오랜 세월이 지난 뒤 에집트 임금이 죽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그러자 고역에 짓눌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갔다.

24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25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사정을 알게 되셨다.

 

 

*이 부분은 : 앞뒤의 문맥에서 볼 때, 출애굽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집트에서의 Is 백성의 현실은 어떠한지 간단하게 소개된다.

      앞부분에서는 : 미디안에 있는 모세에 관한 이야기가 있고,

      뒤에는 : 모세의 소명담으로 연결함으로써

                     이 이야기가 모세라는 어떤 한 인물의 사적 영웅담이 아니라

                     Is 백성의 구원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줄거리 :

 

①모세가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오랜 세월이 지나 모세를 죽이려던 파라오는 죽었으나,

              Is 백성이 받던 억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②θ께서는 : Is 백성들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신음하고, 아우성치고,

                    울부짖는 소리, 즉 히브리들의 생명의 절규를 들으시고,

                    선조들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셨다.

  ⇒ 24절의 선조들과 맺은 계약은 : “자손 번영과 땅”이었으며,

              “기억하셨다(생각하셨다)”는 말은 : 불현듯 생각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계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실제로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뜻.

③지금까지 암시적으로 드러났던 하느님의 존재가

                 이제 이야기의 전면에 나타나 파라오의 억압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세부해설 :

 

*23,a절 ; 야휘스트는 “오랜 세월이 흘러”라는 구절로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Is 백성이 오랜 심한 노예살이로 피폐해져 있음을 암시하며,

                마침내 “에집트의 왕이 죽었다”는 말로

                            이들에게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에집트 왕은 : 앞서 모세를 죽이려 했던 왕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애 7,7에서

                                          모세가 파라오 앞에 나아가 담판을 벌일 때의 나이가 80세라고 되어있고,

                                          에집트인을 쳐죽이고 미디안으로 피신했을 때

                                         모세가 청년이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수십 년이 흘렀을 것이다.

              참고로, 사도행전의 스테파노 연설에 의하면

                     모세의 미디안 지방 체류기간은 40년이라고 한다.

 

*어쨌든 모세가 미디안으로 피신하여 간지 오랜 세월,

             아마도 수십 년이 흘렀음을 암시하고 나서,

  성서저자는 : 그 오랜 세월 동안 모세의 동족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지를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역을 견디다 못하여 하느님께 울부짖었다’

    

⇒여기에 나오는 ‘울부짖다’라는 단어는 : 단순한 비탄이라든지 슬픔의 표현,

              또는 듣는 사람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단어가 아니다.

           구약성서에서 ‘부르짖음(탄원)은 : 일종의 법적 용어로서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재판관에게 억울한 처지에 있는 ‘의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간절히 호소하여 법적 보호를 간청하는 경우에 쓰이는 단어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시편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 탄원시편(22편, 102편)

            따라서 ‘백성들의 부르짖음’은 단지 너무나 고통스러워 나오는 비탄정도가 아니라

                   ‘하느님께 법적 보호’를 요청하는 것으로서

                        하느님을 움직일 수 있는 탄원이다.

           즉 ‘부르짖음’(탄원)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만 구원의 희망이 온다는

                                           믿음에서 터져 나오는 하나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의 비탄 상태는 : 이미 출애 1장에서 묘사되어 있었고,

                모세가 θ으로부터 백성들을 에집트에서 건져내라(3,10)는 사명을 받기 직전인

                이곳 2장 끝에서 더욱 극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을 향한 백성의 울부짖음은 결코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으며

                          반드시 하느님께 전달된다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 탄원을 들으시고 반드시 구원의 응답을 베푸신다.

               이렇게 볼 때, 모세의 소명은 백성의 탄원에 대한

                             θ의 응답의 한 방법인 것이다.

 

◈묵상 :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항상 사람들의 협조를

                        필요로 하신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①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사내아이들을 죽이지 않은 산파들,

②파라오의 명령에 굴하지 않고 하느님께 희망을 걸며 아이를 키운 모세의 어머니,

③측은지심에서 왕골상자에 있던 아기를 구해 준 이집트 공주,

④무슨 일이 일어날까 촉각을 세우고 모든 상황을 주시했던 모세의 누이 등,

이들 모두는 하느님의 협조자들이다.

⇒오직 하느님만을 믿으며 부르짖는 소리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비록 때에 따라서는 θ의 그 들어주심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조급하고 안타깝지만 하느님을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의 부르짖음을 꼭 들어주신다는 것이

          성서의 줄기찬 증언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생각하신다. 다만 우리가 못 알아들을 뿐이다.

라디오의 채널을 하느님께로 안 맞추고 있을 뿐이다.

하느님적 구원 방법은 : 약한 자에게 손을 내민다.

세상적 구원방법은 : 더 강한 자에게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