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창세기 공부

성조들의 삶 ; 성조사(12 - 25장)

윤 베드로 2022. 12. 10. 07:49

1. 聖祖들이란? : 거룩한 조상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한 신앙의 조상들이고,

하느님의 약속과 축복을 유산으로 이어 준 조상들이며,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굳은 신앙을 고백한 조상들이다.

이 성조들에는 :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등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즉 성조들이라고 한다.

 

2. 이 성조이야기는 : 수백 년간 기층민인 떠돌이집단의 삶과 신앙

                                    반영해 주고 있다.

     구성 : 아브라함(12,1-25,11)

                야곱(25,19-35,20)

                요셉(37,1-50,26)

 

3. 성조사의 역사적 배경 :

 

원역사가 끝나고 성조사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역사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이 그 배경이 된다.

그러나 성조 이야기는 : 단순히 성조들에 대한 연대기적인 기록이 아니라

                 2-11장과 같이 說話이다.

, 성조 이야기는 : 사실을 진술하는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루신 일을 증언하는 신학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성조들의 삶 속에서 일하시고 이스라엘 역사의 각 단계에 개입하셔서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또한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를 지나

                    나일 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 사막지역에서 보기 힘든 沖積土의 평원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라

                  끊임없는 세력 투쟁의 무대가 되어 왔다.

    ※沖積土 평원 : 흙이나 모래가 흐르는 물에 실려 내려와 쌓인 평원.

 

기원전 2000-1800년 사이에도 이 지역으로 대규모의 민족의 이동이 있었다.

북쪽의 산간 지역(소아시아, 시리아, 다마스커스 등지)에서 후르족이 내려오고

             남쪽의 사막 지역(아라비아 사막)에서 아모리족(반 유목민)이 밀려들어왔다.

 

민족의 대이동 시기에 아브라함의 선조들은 :

               우르(페르샤만 부근)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들이 하란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브라함은 하란에 정착하고 있었다. (창세 11, 31)

            (큰 강 유역 ; 상업 지역.

              반달 지역 ; 농업 지역.

              사막 지역 ; 유목 지역)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시기는 : 바로 이 시점인 것 같다.

- 앞서 바벨탑을 세우려다 사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후손을 다시 부르시는 야훼.

Ɵ: 정착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아비와 친척들을 떠나 장차 보여주실 땅으로 옮겨가도록 요구하셨다.

 

아브라함은 : 양과 염소 떼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 유목민의 삶인데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며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던

                  본격적인 유목민들은 아브라함의 훨씬 후대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나귀를 타고 가축을 먹이기 위해

                   목초와 물을 찾아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아브라함은 : 가나안 중심부 야산지대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살았는데

                         가나안에서는 기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큰 강 유역으로 물과 식량을 찾아 이동했다.

                         아브라함도 에집트로(나일강) 기근을 피해 갔었다.

 

Ib: 오로지 θ의 약속을 믿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떠돌며 살았던 인물이다.

              땅을 소유하고, 큰 민족이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복이 된다는

               이 세 가지 θ의 약속은 : 아브라함에게서 가나안 정복에 이르기까지의

                                                      야휘스트 서사시의 주제가 된다.

 

이 약속들(, 후손): 결코 그의 생전에 실현되지 못했으나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 하나만은 실현되었다.

이 아들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의 시발점이었고

                    약속된 땅은 자기 아내가 묻혔으며

                    후에 자신이 묻히게 될 작은 땅(막벨라 동굴) 뿐이었다.

 

어떻든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

                미래가 없는 죽음을 의미했다(당시 사고).

그런 그들에게 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

            그의 생명과 가족의 미래를 보증해주는 구원 행위였다.

             그런 약속을 믿고 未知의 세계로 자신의 전부를 맡긴 것이

‘                                 믿음의 아버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사악은 :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아내 리브가는 선조들의 고향 하란에서 얻었고 야곱 역시 아내를 하란에서 구한다.

 

야곱 역시 : 방랑생활을 계속했으나 점차 정해진 지역을 떠돌며 정착 생활에 가까워진다.

 

야곱설화에서는 : 소유권의 행사, 계약의 체결, 법의 집행 등이 대두되며

                                좀 더 복잡해진 인간의 제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 하느님의 현현(천사, 꿈 등)과 거룩한 장소(성소들),

                             그와 관련된 사건 등이 기술되어 있다.

보다 후대로 인간의 사회가 발달하고 있음을 본다.

 

聖祖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경우,

   그들 모두는 :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임에 틀림없으나

            당대의 사고방식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의 신앙도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 선조들의 θ은 자기 자녀들과 함께 떠돌아다니는 가족의 수호신정도로 생각했었고

       ②가나안 민족들의 祠堂을 같이 이용했었다.

       ③또 하느님의 이름도 : 당시 사람들과 똑같이

              ‘(El)’, ‘엘리온(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엘 샤다이(El Shaddai =전능하신 하느님’)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요셉 설화에서(37-50) : 야곱과 그의 아들들도 에집트로 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 역시 가뭄으로 인한 기근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에집트의 역사는 변화가 많았는데,

        2000-1800 까지의 아브라함 시대에는 : 문화와 세력의 전성기였으나,

        요셉의 시기에 와서는(1700-1550) :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인한 분열로

                    세력이 매우 약화되었다.

 

이틈을 타고 시리아와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시 에집트를 노리던 강력한 침략자들에 의해 정복당했다.

    이들은 :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코카서스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추측하는데,

                  최신 무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여러 민족들(아모리, 후리, )로 합쳐진 무리들이었으나

           이들을 총칭하여 힉소스 족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외국의 통치자라는 말.

 

힉소스 족은 : 수도를 에집트의 테베에서

                델타(고센) 지방의 아바리스(타니스) 옮기고,

                통치기간 동안 팔레스티나와 시리아에 걸쳐 대 제국을 건설했다.

아마도 요셉이 재상에 올랐다는 기록은 :

               이 힉소스의 통치시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그리하여 야곱의 후손(요셉의 형제들)이 에집트에 정착하여

                   오랜 세월을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의 역사적인 배경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테베에 있던 옛 에집트 인들은 단결하여

               새로운 무기를 입수하고 힉소스 족에게 대항하기 시작하여

    1550년경에 아모시스 1세는 드디어 이들을 무너뜨리고 18왕조를 창건한다.

    이 시기를 新 王國 時機라 한다.

 

新 王國이 들어서고 몇 세기 동안은 : 강대한 세력으로 외국에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문화와 종교 역시 어느 세대보다도 발전되었으니

         이때 화려한 신전과 왕궁과 창고들이 세워지고 새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에집트의 전성기에 당연히 히브리인들에 대한 태도도 변화가 있었다.

     히브리인들은 : 이제 수많은 건축물을 짓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로 바뀌며

     ‘요셉을 모르는파라오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 ; 가족, 씨족의 이야기

    야곱 ; 좀 더 세분된 사회구조와 제도들(부족)

     요셉 ; 왕권과 국가제도가 뚜렷하게 부각된다.

                 (파라오 뿐 아니라 형제들의 지배권.)

 

Is이 위대한 점은 : 이스라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불화와 역사에 붉게 물든 죄를 극복하기 위해

            Is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θ때문이라는 것이다.

 

야휘스트는 : 아브라함을 통한 하느님의 약속(, 후손, )을 주제로 삼아

                         원래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를

                         이 역사의 주제에다 맞추어 놓고 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에 대한 전승이 야휘스트가 改作하기 이전에는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아브라함은 헤브론과 가까운 곳의 성소와,

             이사악은 브엘세바의 성소와,

             야곱은 베델의 하느님의 집과 연관되었다는 암시가 있을 뿐이다.

     이곳들은 이스라엘인이 점령하기 전까지는 고대 가나안의 신당이었다.

 

야휘스트는 : 어떤 인물의 전기를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역사를 의인화시킨 것이 성조들이다.

 

이러한 擬人化: 이스라엘 민족과 에돔족을 나타내는

              야곱과 에사오의 경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25,22-26).

아브라함에게서도 마찬가지인데,

               아브라함이 한 개인이라기보다 야훼께서 불러 계약을 맺은

               민족의 대표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야휘스트는 : 이러한 여러 전승들을 잘 조화된 단일 가계(家系)

           즉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 야곱 요셉의 이야기로

           연결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야휘스트는 성조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제의적인 전설이라든가 각 부족의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속한 이야기로 편집하고 있다.

 

따라서 각 성조들에게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준 계약을 갱신한 분도 야훼였으며

               아브라함에게 내린 약속은 그의 후손들이 단순한 백성이 아니라

               큰 민족이 되리라는 약속이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서사시는 다윗 제국시대의 민족주의가 깔려있는 자리가 되었다.

따라서 그전 역사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가 자리한 준비과정이었다.

 

야휘스트는 : 성조들을 야훼께서 그들에게 정해준 목표를 향해 방랑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유목민으로서의 그들의 역사는 약속의 성취를 찾아 나선 방랑이었다.

따라서 그 방랑은 단순히 양떼를 먹일 목장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훼와의 약속에 따라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훼의 약속을 믿기 힘든 상황에 자주 부딪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야훼께서는 그들의 신뢰를 시험하셨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절망에 빠지곤 했다.

 

야휘스트는 : 모든 것이 절망에 빠진 듯한 결정적이 순간에

           야훼께서 개입하시어 약속을 갱신함으로써 위기가 해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