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52장 공부 : 예루살렘의 해방

윤 베드로 2017. 4. 18. 07:38

예루살렘의 해방(52,1-6)

 

여기 시온을 “포로가 된 딸(2절)”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바빌론의 포로 가운데 있는 유다를 부르는 칭호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깨어나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미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바빌론에 사로 잡혀 있는 남은 자들이

         해방 될 것을 예언해 주셨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들을 향하여 “깨어나거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언의 말씀을 믿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포로로부터 해방될 것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설 것을 말함이고

                 또한 포로로 인하여 상실한 하느님 백성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의미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입어야 할 합당한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하고,

            스스로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또한 티끌을 떨어버려야 하며

             자신의 목의 줄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들이 입어야 할 아름다운 옷이란 구원의 기쁨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떨어버려야 할 티끌과 스스로 풀어야 할 목의 줄은

             포로됨 가운데 살면서 위축된 마음과 세속화된 마음 등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지니고 있어서는 안 될 마음을 말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은 스스로를 깨움으로 새롭게 될 수 있다.

여기 스스로를 깨운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화 된 모든 마음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대가 없이 팔렸다”(3절)는 것이 무슨 뜻인지 말씀해 주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노예됨과 앗시리아의 침략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애굽의 노예 됨에 대하여 “내 백성이 처음에는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는데”(4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갔고

             또한 파라오의 허락으로 애굽에 살게 된 것을 말씀하심이다.

이처럼 그들은 자유인으로서 스스로 애굽에 내려갔고

             전쟁에 패하여 노예로 잡혀간 것이 아니었다.

또한 애굽은 이스라엘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그들이 기근으로 인하여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을 때 요셉을 통하여 기근을 대비함으로

            오히려 국가적으로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앗시리아는 까닭 없이 이스라엘을 억압하였다(4절).

앗시리아는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 시켰고, 또한 유다를 침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했고

            또한 정복한 후에도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마땅히 요구할 이상을 요구했다.

그들은 민족 자체를 없애기 위하여 피정복민들 가운데

            서로 다른 민족들을 강제 이주시킴으로 그들의 민족성 자체를 파괴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에 노예된 것과 앗시리아에 의하여

         압박받은 것은 값없이 팔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값없이 팔렸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속량하실 때에도

                   돈 없이 속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 돈 없이 속량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능하신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신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됨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은

             하느님의 능하신 손으로 애굽을 치셨기 때문이고(탈출7-12장)

또한 앗시리아의 침략으로부터 유다가 구원 받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앗시리아 군대를 치셨기 때문이었다(역대하32장).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택한 백성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심으로 그들에 대한 강한 애정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이방인으로부터 억압당하는 것을

자신의 영광이 더럽혀지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구원의 선포(52,7-12)

 

여기 “기쁜 소식, 평화를 선포하고, 구원을 선포하는” 등과 같은 말들은

           하느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해 주신다는 복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 소식은 세상에서는 들을 수 없고 오직 하느님으로부터만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또한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그래서 여기 “얼마나 아름다운가(52:7)”라는 말로서

            이 복음을 전하는 자의 복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8절)의 파수꾼은 예언자들을 말한다.

하느님은 택한 종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고,

                또한 그 소식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이들의 외침은 마치 파수꾼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

                전령을 보고 그 소식을 애타게 기다라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외치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수꾼의 소리다.

그러므로 이들의 소리는 듣는 자들에게 기쁨이 되어

                그들 모두로 하여금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게 한다(52:9-10).

하느님의 백성들은 황폐한 곳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자들이다.

다만 눈을 들어 하느님의 구원을 볼 때 이와 같이 할 수 있다.

 

10절,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것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위로를 받고 또한 구속해 주실 것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는 진정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이처럼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뻐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쁜 일을 보면서도 기뻐할 줄 모르는 심각한 질병이다.

하느님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깨어나거라”고 말씀하시며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기를 촉구하신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입어야할 다른 옷은 정결함이다.

여기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거듭 요청하고 있는 것은 부정함으로부터 떠나라는 것이다.

떠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정결케 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집기를 나르는 자여 너희는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5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