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51장 공부 : 예루살렘의 깨어남

윤 베드로 2017. 4. 17. 07:55

아브라함 자손들의 구원(51,1-3)

 

51장의 메시지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 가운데

             남은 자들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다.

여기 남은 자들을 “정의를 따르며 주님을 찾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비록 유다가 죄로 인하여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그 곳에서도 신앙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먼저 그들에게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선택해 주셨는지 생각해 보라는 의미다.

하느님은 이 말씀을 전한 후에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선택해 주심이

                 그들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아브라함의 선택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2절).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선택은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은혜였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그를 축복해 주심으로

                 번성하게 해 주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선택하심과 축복하심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즉 하느님은 선택해 주신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의미다.

하느님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남은 자들에게 이처럼 선택의 은혜를 생각하게 함으로

                하느님께서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다시 복을 주심으로 창대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자”로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을 때,

                하느님께서 시온을 위로해 주실 날이 있을 것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 날이 오면 하느님은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주님의 동산같게 하실 것이고

               또한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하는 소리가 있게 하실 것이다(51:3).

 

하느님의 의로운 통치(51,4-8)

 

하느님의 백성들이 주의하고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이 있다.

그것은 율법이 하느님으로부터 발할 것과

             하느님께서 자신의 공정을 만민의 빛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이 이방의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라는 말씀이다.

여기 “민족” “섬들”과 같은 표현들은 이방의 모든 민족과 나라를 상징한다.

구원의 날에는 악인들의 멸망과 하느님을 의지하는 자들의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특별히 성경에서 종말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들은 모두 이 두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의 주의를 환기 시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살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원의 날에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라는 의미다.

그 날에 천재지변이 있겠고 악인들은 하루살이 같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영원히 있겠고 주님의 義는 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뢰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들 가운데

                 하나는 어떤 환경에 처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심판의 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들에게 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의로움을 아는 이들아 내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한 백성아.

                 사람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악담에 낙심하지 마라.

그들을 옷인 양 좀이 먹어 버리고 그들을 양털인 양 벌레가 먹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로움은 영원하고 나의 구원은 대대에 미치리라.”

 

주님의 깨어나심(51,9-11)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만민 가운데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신 것에 대해

                 구원받은 자들이 응답한 내용이다.

여기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속히 만민 가운데 구원을 이루시기를 바라는 간구다.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잘 아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전에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돌아보며

                앞으로 이루실 구원을 미리 내다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전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루셨던 것처럼

                    장래에 이루실 구원도 이처럼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구원받은 자들은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주님께서 구해 내신 이들이 돌아오리이다.

환호 소리와 함께 시온으로 들어서리이다.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의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이다.”(11절).

 

전능한 위로자이신 주님(51,12-16)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느님의 능하심과 구원에 대한 약속을 신뢰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축복들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원을 받은 자들이 이와 같은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믿음 위에 굳게 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바로 내가 너희의 위로자이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셨고

                또한 자기 백성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능히 구원해 주실 수 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이와 같은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백성은 무지하여 위로의 원천이 되시는

                구원의 하느님에게 위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고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들에게 어째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기 위하여 이렇게 물으셨다.

“너는 잊었다, 너를 만드신 주님을 하늘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을.

          압제자가 너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였다고 너는 날마다

           그의 노여움 앞에서 줄곧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압제자의 노여움이 어디 있느냐?”(51,13).

이들의 두려움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고

             하느님에 대한 무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아는 것뿐이었다.

하느님은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신 분이시고

                 바다를 뒤흔들어 파도를 울부짖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의 입에 자신의 말씀을 두시는 분이시고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덮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포로된 자들도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자들의 손에서 자유롭게 해 주실 수 있다.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세상의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뿐이다.

 

예루살렘의 깨어남(51,17-23)

 

51,17-20 :

하느님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유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시기 위하여

                먼저 그들이 어째서 포로가 되었는지 상기시켜 주셨다.

여기 “진노의 잔”이란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간 것을 말한다.

그들은 비틀거리게 하는 큰 잔을 마셨다.

이것은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간 것이 바빌론의 강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고

              하느님의 진노하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바빌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심으로 유다의 죄를 심판하게 하셨다.

 

18절 “자식들”은 유다의 소망을 말한다.

그들이 낳고 양육한 자들이란 그들이 수고함으로 얻은 것을 말하고

             또한 그들의 소망으로 삼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을 때

              이것들은 그들에게 전적으로 무력한 것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에는

                우리의 수고로 얻은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그것들은 더 이상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51,21-23 :

하느님은 이제 그들로부터 진노의 잔을 거두어 가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 잔은 그들을 괴롭히던 자들의 손에 두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이와 같이 하실 때 학대하던 학대받던 자의 위치가 변할 것이다.

“내가 너를 괴롭히는 자들의 손에 그 술잔을 놓으리라.

           그들은 너에게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지나가겠다.’ 하였고

           너는 네 등을 땅바닥처럼 만들어 그들이 바닥을 밟듯 그 위를 지나가게 하였다(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