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48,1-11)
48장은 하느님께서 유다를 바빌론의 포로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해방되기 전에 그들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했고,
또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했다.
유다는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였는가에 대하여 1-2절에서 말하기를,
“야곱 집안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아
유다의 몸에서 나온 자들아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기리기를 진실과 의로움으로 하지 않는 자들아.
이들은 거룩한 도성의 백성이라 자처하고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의지한다 하는구나.”
예언자가 여기 표현한 유다의 모습은 관념화 된 신앙의 모습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택한 백성으로 불렸고,
또한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신앙의 생명력을 결여(缺如)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신앙은 자신들의 삶을 둘러싼 하나의 문화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느님은 이런 유다의 모습을 책망하셨다.
하느님은 유다가 이처럼 관념적인 신앙에 빠질 위험을 아시고
처음부터 그들에게 여러 가지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그들을 보호해 주셨다.
이와 같은 은혜들 가운데 하나는 예언이었다(48:3).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미리 將來史를 말씀해 주시고,
후에 말씀하신 대로 그 일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해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만이 오직 하나이신 하느님이심을 알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하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베푸신 은혜는 모든 시대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헛되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이처럼 완악한 유다에게
“나는 정녕 네가 완고함을, 네 목이 쇠막대기임을,
네 이마가 구리임을 안다.(48:4)”라고 책망하셨다.
또 “내가 그것을 예로부터 알려 주었고 일어나기도 전에
너에게 들려주었으니 너는 ‘내 우상이 그 일들을 이루었고 깎아 만든 내 신상과
부어 만든 내 신상이 그것을 명령하였다.’하고 말하지 못한다.(5절)”
하느님은 이처럼 유다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것을
미리 보이셨기 때문에 아무도 핑계할 수 없다.
주님의 일꾼 키루스(48,12-16)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또 다시 새로운 일을 말씀해 주시고자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또 다시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여기 하느님은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계시해 주셨고,
또한 땅의 기초를 정하시고 하늘을 펴신 분으로서 계시해 주셨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가질 때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
또는 새로운 일을 말씀해 주실 때 스스로를 계시해 주신 것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볼 수 있는 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해 주시고자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갈대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바빌론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행하게 하심으로 바빌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말씀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하시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실 하느님을 믿어야 했다.
여기 이스라엘에게 요청되는 믿음은 하느님을 처음과 나중으로
그리고 창조주로 믿는 믿음이었다.
왜냐하면 처음과 나중 되시고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뿐만이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고 또한 그 하신 말씀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빌론 탈출과 귀향길(48,17-22)
하느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시고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느님께서 또 다시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구속자로 계시 해 주시고
또한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심으로 불순종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말씀해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지금 하느님께서 새롭게 말씀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고 불순종하지 않도록 해 주시고자 하심이었다.
“너희는 바빌론에서 나와라. 칼데아인들에게서 도망쳐라.
환호 소리 올리며 이 일을 알리고 전하여라. 땅 끝까지 퍼뜨려라.
‘주님께서 당신 종 야곱을 구원하셨다.’ 하여라.
그분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목마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솟게 하셨다.
그분께서 바위를 가르시자 물이 쏟아져 나왔다(20-21절).
믿음은 언제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된다.
하느님께서 바빌론으로부터 포로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셨으므로
이 말씀을 믿는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구원을 기뻐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지금 여기에서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고
또한 믿는 자 안에 믿음의 실상이 되는 경우다.
하느님은 이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 사십년 동안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볼 때 더욱 견고해 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救援史를 계시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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