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45장 공부 ; 주님께서 키루스를 세우시다

윤 베드로 2017. 4. 13. 07:38

주님께서 키루스를 세우시다(45,1-8)

 

45,1-7 ;

하느님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것과

                그리고 70년 후에 다시 귀환할 것을 말씀하셨다(예레25:11-12).

그리고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유다가 어떻게 포로로부터 자유롭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이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를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라고 부르신 것이다.

고레스 대왕은 첫 번째 세계 제국 건설자일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메시아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매우 흥미롭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고레스는 동양과 서양을 정복하여 최초의 세계 제국을 건설함으로

                동양과 서양의 첫 만남을 시도하였다.

바로 이 고레스가 포로 된 유다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였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는 고레스로 하여금

                   이렇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였다(45:4).

하느님은 만유의 주재이시므로 원하시는 자를 택하여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실 수 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어떤 사람을 택하셨을 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능력을 더하여 주셨다.

하느님께서 그의 오른 손을 잡으셨다는 것은 그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의미다(45;5-7).

 

45,8 :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만물에 대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비로소 우리는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하느님을 찬송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義라면 우리의 환경은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만물은 하느님의 뜻대로 운행 되어 가고 있다.

여기 하늘과 구름이 義를 비같이 뿌린다는 것은 이것들이 만물의 주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운행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하느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비할 데 없는 주님의 권능(45,9-13)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라고 물을 수 없듯이

            그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라고

             물을 수 없듯이 피조물인 우리는 하느님께 만물에 대하여

             주권을 행사하시는 것에 대하여 그 이유를 묻거나 또는 불평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알기 원하는 마음으로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 물을 때 대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45:11-12).

하느님은 참된 지식의 원천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지로 인하여 마땅히 행할 일과 가야할 길을 알지 못할지라도

               하느님께 묻는다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특별히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땅을 만드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늘을 펴시고

             그 만상을 명하신 분으로 계시해 주신 것은 우리의 어떠한 물음에 대해서도

              능히 대답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말씀해 주시기 위함이다(45:13).

이처럼 만물의 주되시고 지식의 원친 되시는 하느님께서

           유다의 구원을 위하여 고레스를 일으키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읍을 건축하실 것이고

                또한 유다의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다.

 

이민족들이 주님께 돌아오다(45,14-17)

 

애굽과 에디오피아와 스바는 강대한 나라들이며 그 족속들은 장대한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유다에게 와서 그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 “사슬에 묶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이란

          스스로 유다에게 굴복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강한 나라들 장대한 족속들이 유다에게 와서 스스로 굴복하는 것은

             유다가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능력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전지전능 하시며 만물의 주되신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의 강함은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능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자들은 치욕을 당할 것이지만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어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언행은 뚜렷하시다(45,18-19)

 

여기 하느님께서 자신을 창조주와 유일하신 하느님으로 계시하신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시거나

         또는 무엇을 새롭게 요청하실 때 언제나 사용하시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모두 믿음이 요청 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온다.

즉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 때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새로운 것을 말씀해 주실 때

                 그들이 그것을 믿을 수 있도록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만방의 하느님(45,20-25)

 

이처럼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해 주신 후 자기 백성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셨다.

“민족들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자들”, “나무 우상을 떠받들고 다니는 자들과

              구원을 베풀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구원의 하느님의 초청에 응답해야 할 자들이다.

여기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은

          오직 구원은 하느님께만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나가기를 원치 않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하느님께 나가는 자는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그들의 자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