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43장 공부 ; 이스라엘의 구원

윤 베드로 2017. 4. 12. 07:49

이스라엘의 구원(43,1-7)

 

*43장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이스라엘이 무조건적 은혜를 받은 원천적 근거 -

                        하느님이 먼저 그들을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이다(1-7절).

②그 무조건적 구원의 유일한 시행자 - 하느님만이 그 구원을 행할 능력이 있으시다(8-13절).

③구원의 구체적 방법과 그 결과 - 원수는 도망가고 광야에 강이 흐를 것이다(14-21절).

④그 구원의 성격 - 하느님의 무한하신 일방적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22-28절).

 

43,1-7 :

야곱은 하느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언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창조하시고 빚어 만드신 이”로 계시하시며

                그들에게 말씀을 들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주신 말씀이지만

            또한 그들에게 믿음을 요청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되 강과 불로부터

                그리고 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여기 강, 불, 물 등은 이스라엘이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말한다.

특별히 전쟁으로부터 오는 시련들은 연약하여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이스라엘에게는 강과 같고 불과 같은 시련들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런 것들이 이스라엘을 침범할 수 없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후

                그들을 불러 모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43:5-7)

여기 동서남북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붙잡아간 대적들을 상징한다.

특별히 대적들이 있는 곳을 동서남북으로 묘사한 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이 동서남북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주님만이 하느님(43,8-13)

 

하느님은 또 다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열방의 우상들의 허무함을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43:8)”고 말씀하셨다.

여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란

         권고의 말씀을 듣고도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의 유혹으로 인하여 불신앙 가운데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말한다.

8-10절 말씀은 하느님의 유일하심을 계시하시고자 하실 때마다

언급하시는 말씀으로 여기에 다시 반복되고 있다(42:18-22).

하느님께서 이처럼 자신의 유일성을 계시해주시는 것은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실지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면

            먼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바빌론의 멸망과 새로운 탈출(43,14-21)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救贖者”요 “거룩한 이”로 그리고

                바빌론을 멸망시키실 자와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자로 계시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파라오의 군대를 홍해에 묻은 자로 계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하느님께서 이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새로운 일에 대하여 듣기 전에 먼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아야 하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전에 불신앙 가운데 행하던 일들로서 이런 것들에 얽매일 때

                     하느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다.

여기 광야와 사막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폐한 곳을 상징한다.

이곳이 황폐한 것은 길과 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곳에 길을 낼 수 없고 또한 물을 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광야에 길과 강을 내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스스로 구원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우리의 구속자 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하느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배은망덕한 이스라엘(43,22-28)

 

하느님은 이처럼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조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았다(43:22-24).

그래서 하느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책망하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들의 죄를 씻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25절).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이 은혜야 말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변론하자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엇보다 먼저 물으신 것은

                    그들이 행한 義가 있다면 말해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제나 불의한 자로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