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41장 공부 ;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

윤 베드로 2017. 4. 12. 07:35

키루스의 소명(41,1-7)

 

본문은 異邦의 무지함을 꾸짖기 위하여 주신 말씀이다.

여기 “섬들” 또는 “겨레들”은 팔레스틴 해안지방의 베니게와 블레셋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외의 모든 나라들을 말한다.

하느님은 만물의 주님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느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고

               모든 나라와 겨레의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모든 나라와 겨레들을 통치하시고

                또한 그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민족들에게 “가까이 나오라 그리고 말하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그들에게 “우리가 서로 재판 자리에 나아가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만물의 주로서 그들로부터 마땅히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헛된 것에게 돌린 어리석음을 책망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이다.

 

하느님은 이들과 재판자리에 나가기 위하여 2-4절과 같이 물으셨다.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물으신 이 물음은 누가 만물의 주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냐? 누가 모든 민족의 통치자이시냐?를 묻는 물음이시다.

이 물음에 대하여 민족들이 하느님이시라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우상숭배에서 떠나야 하고 오직 하느님만 신뢰하여 그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느님은 민족들에게 이렇게 물으신 후에 “나 주님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셨다(4절).

즉 하느님만이 만물의 주로서 홀로 영광 받으실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스스로 “만물의 주”되심을 밝히신 후,

            민족들의 죄가 무엇인지 말씀하셨다.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

               장인은 도금장이를 격려하며 망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격려하며 이르되 땜질이 잘 된다 하니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을 흔들리지 않게 한다(41:5-7)”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고 떨었다는 것은 만물을 통하여 계시 된 하느님의 위엄을 보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41,8-16)

 

여기 “그러나”라는 말은 민족들의 우상숭배 현실에서

          예외적인 나라를 언급하기 위하여 사용된 말이다. 그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친히 택하신 나라로서

                   창조주 되신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있는 나라이므로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 계시다.

그러므로 이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서도 안 되고 빠질 수도 없는 나라다.

하느님은 이 특별한 나라에 대하여 나의 종,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러 주셨다.

하느님은 이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41:10)”

 

하느님께서 택하여 주신 자들이 누리게 되는 은혜들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다. 왜냐하면 만물의 주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대적들보다

강하기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을 도와주시기 때문이다(41:13).

이처럼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연약한 그들을 세상의 누구보다도 강한 자로 세워 주시기도 한다.

14절에서 야곱을 버러지로 비유한 것은 그들의 연약함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와 같이 연약한 자들도

            세상의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능한 자로 세워 주실 수 있다.

버러지 같이 연약한 존재가 어떻게 날카로운 타작기계와 같이 강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경이로운 귀향길(41,17-20)

 

하느님께서 택하여 주신 자들이 누리게 되는 은혜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필요를 구할 수 있는 특권이다.

하느님은 그들이 구한 것을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 날에 헐벗은 산에는 강이 흐를 것이고

                    광야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간구를 들어 주시는 날,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능하신 일들을 행하실 것이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느님의 능하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41:17-20).

 

주님만이 하느님(41,21-24)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어떠하심이 계시 될 때

             사람들은 우상의 헛됨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우상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해 보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든지 하여 스스로 神 됨을 증거 하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느님께서 우상들에게 자신의 됨을 증거 해 보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그들이 응답할 수 없다면

스스로 헛된 우상일 뿐임을 증거 하는 것이 된다.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요 너희의 업적 따위는 있지도 않으니

           너희를 선택하는 자는 혐오스러울 뿐이다.(41:24)”

 

키루스의 승리를 예고하신 주님(41,25-29)

 

이 말씀은 고레스왕을 가리키는 예언인데,

                 앞에 2절에서 그가 동방에서 일어날 것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북방이라고도 하며 “해 돋는 곳”이라고도 한다.

장래의 일을 말씀하실 분은 오직 하느님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보셨을 때 이처럼 장래에 대하여

                 또는 물음에 대하여 대답할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세상에 스스로 하느님 됨을 증거 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아무도 없다”에 포함되는 것은 우상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포함 된다.

즉 우상들 가운데서도 사람들 가운데서도 스스로 하느님 됨을

                 증거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하느님만이 스스로 하느님 되심을 증거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세상에서 하느님을 아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