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54장 공부 ; 새 예루살렘

윤 베드로 2017. 4. 19. 07:37

예루살렘의 번창(54,1-3)

 

*54,1-17 : 이스라엘과 교회에 내릴 축복

넷째 종의 노래를 통해 메시아의 수난과 승리를 말한 이사야는

         이제 관점을 약간 달리하여 본장에서 이스라엘에 내린 축복을 노래하고 있다.

이 축복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회복과 직접적 관련이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교회의 영원한 종말론적 승리와 영광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전장과 본장을 종합해 보면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승리하는 축복을 누리듯이,

             교회 역시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보내주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53장에서 예언자는 메시아의 고난 받으심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이 평화와 나음을 입게 될 것을 예언했다.

   54장에서는 이 평화와 나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말해 주고 있다.

 

54,1-3 :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노래할 것을 말하고 있다.

노래는 기쁠 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그들이 기뻐할 것을 말씀하심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기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여인과 같이 수치스러움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잉태치 못한 여인” 또는 “산고를 격지 못한 여인”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바빌론의 포로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일은 이스라엘에게 마치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여인처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들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느님께서 이들을 구속하실 때 이들이 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모든 축복을 회복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심이다.

그래서 그날에는 이들의 장막터가 넓혀져야 했고

            이들의 처소의 휘장 역시 넓게 펴져야 했다.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사랑(54,4-10)

 

비록 이스라엘이 지금 바빌론의 포로로 있을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고

                또한 그날에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날에 이들은 청년 때의 수치와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이 언약의 보장으로서

                 자신이 친히 이들의 남편이 되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들의 수치를 “자녀를 생산치 못한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들의 수치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게 해 주신다는 보장인 것이다.

실제로 버림받은 여인의 수치가 자녀를 생산치 못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이 여인은 남편을 갖게 됨으로 인하여 모든 수치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남편이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이들이 지금까지 당하고 있던 모든 수치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게 해 주신다는 의미이고

        또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축복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의 보장인 것이다.

 

7절, “잠시 너를 버렸다”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유다의 죄를 책망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잠시 바빌론의 손에 넘기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일 뿐이다. 하느님은 이들을 모으실 것이고

             또한 영원한 자비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여기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책망을 “잠시”로 묘사한 것에 비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영원”으로 묘사한 것은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의 어떠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잠시의 책망”과 “영원한 자비”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위하여

                 노아의 홍수를 말씀하셨다(9절).

하느님은 노아의 때에 홍수로 그 시대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셨다.

그리고 이 심판에서 구원 받은 노아에게 이후로 다시는

            홍수로서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고

             그 언약의 보증으로서 무지개를 보여 주셨다.

하느님은 이 언약을 지키셨다. 이처럼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잠시 그들을 버리셨으나 큰 자비로 다시 모으시고

                영원한 자비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도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언약하신 것처럼 영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는 이스라엘은 언제나 다음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10절).

 

새 예루살렘(54,11-17)

 

하느님께서는 구속의 은혜의 어떠함을 말씀해 주시기 위하여

                       구속의 은혜로 인하여 평화와 나음을 입은 이스라엘의 복된 모습을

                        아름다운 보석들로 단장한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묘사해 주셨다.

여기 “화려한 채색”은 여러 가지 보석들의 빛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내는 색일 것이다.

이 채색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묘사한 것이다.

즉 이 아름다움이 바로 하느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은혜 가운데 사는 삶의 가치를 모른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삶을 아름답게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은혜 안에서의 삶이 영원하도록 모든 대적들의 손에서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

하느님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을 지으신 분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는 자들도 지으신 분이시다.

즉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들에게 주권을 행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치는 자를 오히려 이스라엘로 인하여 패망하게 하실 수 있고,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제조된 기계를 날카롭지 못하게도 하실 수 있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송사하는 자의 혀는 단죄 받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안전에 대한 보장이 되어 주실 때

            그들은 영원히 은혜 가운데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