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56장 공부 ; 이방인들에게 내린 약속

윤 베드로 2017. 4. 20. 07:54

이사야 예언서 제 3 부 ; 귀환시대

 

이방인들에게 내린 약속(56,1-8)

 

하느님은 정의와 義를 행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정의와 의를 행하는 자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그 표식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고 또한 惡을 행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처럼 신앙은 개념으로 표현되고 그 개념의 생활화를 통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된다.

여기 정의와 의는 하느님의 인격과 선하신 모든 뜻을 포괄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으로서

         신앙의 개념에 속하는 것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악을 행치 아니하는 것은 신앙의 행위를 말한다.

 

3절,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은 이방인들 가운데 자신들의 신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온 자들 즉 개종한 자들을 의미한다(56:3).

하느님은 이들에게 “주님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개종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어떤 차별도

            두지 않으시고 모두 자기 백성으로서 인정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은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느님도 되신다는 선교 사상을 말해 준다.

 

“고자도 나는 마른 장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3절).

고자는 생산할 수 없는 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런 자에게도

            “나는 생산치 못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중에 육체적인 흠이 있는 자는 그들이 누리는 특권들에서 제외 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아론의 자손들 중에 육체적인 흠이 있는 자는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행할 수 없었다(레위21:16-24).

이처럼 육체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스스로에 대하여

            자조(自嘲)적인 말로서 “나는 마른 장작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나는 마른 장작이라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를 이스라엘 가운데 결함을 가진 자라고 생각함으로

                낙심한 자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느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은혜들은

           “그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이름”이고, 또한 “그들을 기도하는 집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56:4-7).

“쫓겨 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으시는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미 모아들여진 이들 말고도 다시 더 모아들이리라.”(8절).

하느님은 자격이 없는 자들(이스라엘의 쫓겨난 자)을 믿음 안으로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미 불러주신 자들 외에

            아직도 구원의 은총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들을 부르시되

             세상 끝 날까지 이와 같은 부르심을 계속 하실 것이다.

본문은 이처럼 장차 메시아를 통하여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시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속의 은총 안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부패한 지도자들(56,9-12)

 

여기 “들짐승들아, 숲의 짐승들아 모두 와서 잡아먹어라.”(9절).

이처럼 복음이 선포되는 때에도 두려운 심판의 메시지가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구원 받을 자들과 심판 받아야 할 자들을

             아시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두려운 심판의 대상자들은 “파수꾼들”이었다.

파수꾼의 임무는 항상 적의 동태를 잘 살펴서 백성들에게 위험을 예고 해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직무는 백성들의 안위와 직결되었다.

그런데 여기 언급하고 있는 파수꾼들은 짖지 못하는 개와 같았고,

              잠자기 좋아하는 게으른 자와 같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파수꾼으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직무를

               조금도 수행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들의 짐승들과

         숲의 짐승들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들짐승과 숲의 짐승들은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방 나라들을 의미하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상 숭배자들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주어진 직무를 행치 못할 때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대적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하여 파멸을 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盛衰를 가늠 하는

            중요한 열쇠는 언제나 지도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나라가 시련 가운데 있을 때 지도자의 바른 지도력은

                  그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원할 수도 있었지만,

                   반면 평화로운 때에도 자도자들이 부패하면 오히려 그 나라는 위기에 빠진다.

이처럼 지도자는 한 공동체의 성쇠를 가늠 하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부패한 지도자들을 소경. 무지한 벙어리 개, 꿈꾸는 자,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로 묘사되었는데

              이것은 이들이 지도자로서 자신의 직무를 행치 않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또한 이들은 탐욕이 심하여 만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

              자기 이득만 도모하는 자들로 묘사된 것은

               이들이 백성들의 탈취자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지도자가 이처럼 부패했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력 아래 있는 백성들도 함께 망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지도자의 부패에 대하여 그토록 두려운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