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단식(58,1-12)
58,1-6 :
이스라엘은 금식을 했지만 하느님께서 그들의 금식을 받으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금식을 돌아보시지 않았다고 불평하였다.
금식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은혜로 임하지 않은 것은
금식에 대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오해로 비롯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개인적으로나 또는 국가적으로나 위기를 만났을 때 금식했다.
물론 이와 같은 은혜의 수단인 금식은 바빌론 포로기에 제도적으로 발전되어
사월과 오월 그리고 칠월, 시월을 공적인 금식의 날로 지켰다(즈카8:19).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처럼 금식의 기회를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항상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심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이와 같은 규율들을 주신 참뜻을 잊어버리고, '
규율들'을 지키는 것 자체만으로 온전함에 이르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금식은 영적 생명력을 상실했다.
그들의 신앙은 점점 더 형식화 되어갔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시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하는 위험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오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우리가 공적 예배, 맡겨진 활동 등 신앙과 관계된 일에 참여할지라도
그 일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오해하고 참여한다면
그 일은 우리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
여기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뜻에 따라 행하는 일을
영성이라고 한다면 신앙과 관계된 일일지라도 영성을 결여하고
다만 肉에 속한 일로서 참여한다면 그 일을 신앙과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즉 영성을 상실한 일들은 비록 그 모양이 영적인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적일 뿐이고, 우리에게 영적 생명이나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영성을 잃어버린 일들은 우리를 지치게 할 뿐이다.
이스라엘은 열심을 다하여 금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4-5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금식은 했지만 영성을 상실하고
다만 육신에 속한 일로서 금식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영성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신앙의 형식을 지킬 줄 알았지만 내용을 지킬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기뻐하심을 얻지 못하였고 그들의 신앙도 형식화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금식에만 해당되었던 일이 아니었고, 자비를 베푸는 일에도,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도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영적 진보를 위하여
지키도록 허락해 주신 모든 일에도 해당 된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총체적인 위기 가운데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1절)고 말씀하신 것이다.
58,6-12 :
이스라엘이 상실한 은혜를 회복하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여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금식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금식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했다.
하느님은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6절)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금식을 명하신 것은 그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그들은 금식을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금식할 때 약속된 은혜를 사모하였을 것이다.
즉 영적인 금식은 먹지 않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죄악된 행위를 억제하므로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에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하는 금식이 참된 금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금식이 자신들을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이 이끌어 주었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했다.
이것은 모든 시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영적인 일들과 은혜의 수단들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주신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금식을 하든지, 다른 사람을 돕든지, 또는 안식일을 지키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것들을 통하여 하느님과 교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과 감사가 있어야한다.
이렇게 할 때 이런 일들은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은혜가 되며
또한 이웃에게도 진정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58:8-9).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합당한 금식을 한다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주시겠다는 의미다.
하느님께서 금식을 명하신 목적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죄로부터 떠나도록 하심이다.
하느님의 백성이 죄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불의한 일들을 끊어버리는 것을 말하며
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회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 있는 것이다. 즉 회개는 방향 전환이다.
이렇게 할 때 하느님은 그들을 항상 인도하심으로 그들의 삶을 물댄 동산같게 해 주실 것과
그들로 하여금 무너진 곳들을 보수하고
길을 수축하는 자로 삼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합당한 금식은 자신을 새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곳까지 새롭게 해 준다.
안식일(58,13-14)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은 안식일에 대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주셨다.
즉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의 수단은 그것을 행하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그것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대로 행할 때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식일도 그날 자체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육신의 일을 금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일에 전심함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되어 다른 모든 날에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주신 날이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합당하게 지키는 자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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