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엘리파즈의 둘째 담론(15,1-35)

윤 베드로 2017. 2. 18. 09:40

Ⅲ-7. 엘리파즈의 둘째 담론(15,1-35)

 

*욥과 친구들의 첫 논쟁이 끝나고 다시 엘리바스와의 둘째 논쟁이 시작된다.

위로와 설득이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되지만,

말이 오고 가다가 상대방으로부터 반박을 받으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가 스스로 변론하게 되고,

내 말이 왜 맞는지 설득하는데 대화의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대화가 왜곡되는 것이다.

초심은 사라지고 대화자체의 논리적인 순환이 시작된다.

누구의 말이 더 논리적인가가 대화의 중요한 목적이 되고,

마음을 먼저 주고자 했던 첫 의도는 어느덧 사라지는 것이다.

 

⇒욥의 거친 항변(12-14장)은 스스로 불경건한 죄인임을 드러낼 뿐이며,

자신의 지혜에 대한 확신은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를 엘리바스가 반박한다.

 

결백하지 못한 인간(15,1-16)

 

1-6, 네 입이 너를 단죄한다 :

①엘리바스가 대답한다(1절)

②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2절)

③어찌 쓸데없는 이야기와 소용없는 말로 논쟁하겠는가?

④자네야말로 경외심을 깨뜨리고 하느님 앞에서 묵상을 방해하는구려.

⑤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 구나(5절)

⑥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6절).

 

⇒4,1에 이어 엘리바스가 두 번째로 변론하는 장면이다.

첫번째 변론과 비교해 볼 때 엘리바스는 한 차례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욥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음을 본장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첫 번째 변론 때에는 엘리바스가 욥의 특정한 범죄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으나

위로와 동정 어린 어투로 권면하였다(4:7 ; 5:17).

그러나 본장에서는 욥의 재난에 대해 단순한 인과응보적 시각만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7-10, 미천한 지혜를 자랑하지 마라 :

①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7절)

②하느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8절)

③네가 아는 것, 깨달은 것,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9절)

④우리 중에는 머리가 횐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이스라엘 사회에서 노인들은 지혜를 많이 지닌 것으로 여겨져

존경의 대상이었다(12:12 ; 레위 19:32).

연로한 자가 더 지혜롭다는 당시의 보편적 인식에 근거를 두고

한 말로서, 엘리바스 등 욥의 친구들이 지혜로운 자들임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11-16, 하느님의 위로를 하찮게 여기느냐? :

①자네는 하느님의 위로가 모자란단 말인가?

②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12절)

③하느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13절)

④사람이 무엇이기에 결백할 수 있으며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다 하리오?

⑤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다(15절)

⑥하물며 불의를 물마시듯 저지르는 인간이야!

 

⇒엘리바스는 욥이 부드러운 하느님의 위로를 거절하고,

거칠게 자기 마음을 표출했다고 훈계한다.

그러나 친구들의 조언은 정작 당사자인 욥에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욥의 상처를 찌르는 폭력이었다.

 

악인의 운명15,17-35)

 

17-19, 내게 들으라 :

①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②지혜로운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이다.

③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다(19절).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을 지혜자라 자처하며 친구들의 훈계를

수용하지 않자, 그를 비판하며 단죄한다.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지혜자들의 가르침을 들으라고 촉구하면서,

악인들의 운명에 관한 전통적인 가르침을 제시한다.

친구들의 말을 반박했던 욥을 비판했던 엘리바스는,

본절에서부터는 이전에 주장했던 그의 논리처럼(4, 7-11)

또 다시 악인은 고통과 환난을 당한다는 원칙론적 교훈을 피력하고 있다.

이중에서 17-19절은 그의 본 논지를 교훈하기에 앞서이끄는 序言이라 할 수 있겠다.

 

20-25, 고통스러운 악인의 삶 :

①악인은 일생 동안 공포에 시달리는 법,

②무서운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리고 태평스러울 때도 폭력배가 그를 덮친다네.

③칼날이 숨어서 기다리고,어둠의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22-23절)

④불안과 초조가 그를 소스라치게 하고 압도한다네.

⑤그가 하느님을 거슬러 손을 내뻗고 전능하신 분께 으스대었기 때문이지.

 

⇒인격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인과법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

엘리바스는 전통적인 인과법칙을 따라 악인들이 형벌을 받고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원리를 따라 욥이 당하는 고통도 하느님을 대적하여

악을 행한 결과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24-35, 惡人의 최후 :

①그는 목을 세우고 방패를 들고 하느님께 달려든다.

②그의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다.

③그는 황폐한 성읍 집에 거주하였다(28절)

④그의 소유는 땅에서 불어나지도 못한다네.

⑤하느님의 입김으로 그가 쓸려가리라(30절)

⑥허무한 것이 그의 보상이 될 것이고,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할 것이다(31-32절)

⑦그는 포도나무 줄기처럼 설익은 열매를 떨어뜨리고 뇌물을 받는 자의 천막은 불탈 것이다(34절)

⑧그들의 모태는 속임수만 마련할 뿐이라네.

 

⇒엘리바스는 지금 당장 악인들이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잘 살고 있다고 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지금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다 벌을 받고 있는 악인은 아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있을 영광을 위한(로마서 8장 18절) 예비 단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