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엘리파즈의 셋째 담론(22,1-30)

윤 베드로 2017. 2. 20. 08:18

Ⅲ-13. 엘리파즈의 셋째 담론(22,1-30)

 

*욥과 친구들의 셋째 논쟁이 시작되는데, 이전과 달리 소발은 등장하지 않는다.

엘리바스는 욥이 짓지도 않은 죄까지 추측하여 신랄하게 욥을 단죄한다.

엘리바스의 논점은 한결같이 하느님의 심판이 욥의 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께 무익한 존재(22,1-4) ; 네 죄악 때문이다 :

①하느님께 대한 사람의 행동, 즉 “사람이 하느님께

유익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한다(1-3절).

②아무 증거도 없이 욥을 큰 죄인으로 몰아넣는다(4-5절).

 

⇒여기에서 엘리바스는 하느님께 대한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말한다.

하느님은 사람의 혜택을 받으실 일이 전연 없다.

그 이유는 그가 절대로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그와 반면에 사람은 언제나 하느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

 

욥의 죄악(22,5-11) :

①자네의 악이 크지 않은가?

②자네가 형제들에게 담보를 강요하고 헐벗은 이들의 옷을 벗겼기 때문일세.

③자네는 목마른 자와 배고픈 자에게 물과 음식을 거절하였네.

④엘리바스는 욥을 오해하여 단죄하는 말을 한다(8-9절)

⑤무자비한 죄악은 무자비한 벌을 받는다(10-11절)

 

⇒여기 진술된 벌은 모두 돌연한 것이고 무자비한 것이다.

이것이 욥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진술된 범죄자는 마땅히 이런 벌을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의 무자비한 죄악은 무자비한 벌을 받음이 하느님의 공익이기 때문이다.

엘리바스의 말은 진리이지만 그것이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진리를 잘못 적용하는 자는하느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이며(예레 23:30),

그는 병자에게 약을 잘못 처방해주는 거짓 의사와 같다(예레 23:30).

 

욥의 회의적 태도(22,12-20) ; 악인의 멸망 :

 

①욥이 하느님을 가리켜 인간의 일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12-15절).

②엘리바스가 욥의 말을 풍자하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16-18절).

③악한 자들이 끊어질 때에 의인들은 기뻐한다(19-20절)

 

⇒여기서도 엘리바스는 욥을 오해하고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로 흠을 잡는다.

곧, 욥이 하느님을 가리켜 인간의 일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욥은 하느님을 그렇게 오해한 적이 없었다.

엘리바스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고 한

악인들의 말과 욥의 말을 동일시하며

욥이 악인들처럼 멸망당할지도 모른다고 위협한다.

 

화해의 열매(22,21-30)

 

21-23, 하느님과 화목하라 :

①하느님과 화목하고 평화하면 복이 찾아온다.

②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고,

③전능자에게로 돌아가라(23절)

 

⇒사람은 다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평화도 거짓된 것이 있고 참된 것이 있다.

이 세상 평화는 모두 다 거짓된 것이고,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만이 참된 것이다.

사람이 진정한 평화를 얻으려면 하느님과 화목해야 한다.

하느님과 화목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24-28,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라 :

①하느님을 대신하는 것을 버리라.(24절).

②그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리라(25-28절)

 

⇒우리에게는 하느님 외에 다른 것을 보배롭게 여기는

고질 된 버릇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사상을 버려야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들이라도

계곡의 돌 같이 버리고 그것들에게 애착을 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보배롭게 여기던 물질을 하느님께 바치는 때에도

그것을 아까와 하는 심리로 바치면 안 되며,

그것을 바친 후에 계곡의 돌같이 잊어버려야 된다.

물론 이렇게 실행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보배로운 것들을 돌과 같이 던질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보배로운 것들을 하느님을 위해 바칠 때에

그것들보다 더 좋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욥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겨 죄를 짓게 만든

일시적인 것들을 버리고 주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면

주님이 친히 영원한 보배와 기쁨이 되어주신다고 한다.

 

29-30, 겸손하라 :

남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 하느님께서는 도리어 그를 높여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다.

 

⇒엘리바스는 하느님께서 죄 없는 사람을 구원하시므로

욥이 하느님께 돌아와 죄를 회개하고, 깨끗해지기만 하면

지금의 재앙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엘리바스가 불의에 대해 말하면서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만 이것이 욥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욥이 악하고 교만해서 고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바스는 욥이 심각한 죄를 범한 악인이며,

욥의 최대의 관심이 그의 재산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욥의 고민은 잃어버린 재산이나 자녀들, 건강이 아니라,

의로운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느님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