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요한묵시록 공부

제2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1,4-3,22)

윤 베드로 2016. 8. 30. 12:30

제2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1,4-3,22)


1. 요한의 인사(1,4-8)


1,4-8은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행해진 전례적인 대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파트모스 섬에 유배 가 있던 요한에게 전달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주님의 날(1,10)에 모여 있던 교회 공동체에 전달되었다.


[4-5a절] 성삼위(聖三位)가 언급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성부는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으로,

성자는 “진실한 증인이시며,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며,

         땅 위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골로1,18에서도 예수는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 나신 분”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그분의 옥좌 앞에 있는 일곱 영신”으로 나타난다.(묵시5,6 참조)

우리가 전례에 사용하는 ‘성령강림 부속가’에서 ‘성령칠은’(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경외심)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이사11,2에서 유래된 것이다.

주님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주님을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이사11,2)


땅 위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묵시록이 씌어질 당시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잔인한 로마 제국의 박해자(황제)들의 손에

         목숨이 달려 있는 의지할 데 없는 소수집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묵시록 전체를 통해서 일관하는 사상은 전 우주의 주권이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확신(신념)이다.

이런 사상이 묵시록 5장에서 “옥좌에 앉아 계신 어린양의 환시”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5b-7절] 묵시록을 읽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용기를 갖게 된다.

본 대목에 나오는 문구는 우리가 미사전례 때 사용하는 내용으로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찬가였을 것이다.

 

아멘”: 원래 히브리어로서 “그렇게 되어지이다”라는 의미이다.

           주로 기도나 찬가 끝에 사용되었다.

7절에는 묵시록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가 들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와 동시에 일어날 사건들이 언급된다.

이 대목의 전반부는 다니엘7,13의 인용이며, 후반부는 즈가12,10에서 왔다.

요한19,37에 언급된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기록도 즈가12,10에서 온 것이다.

 

구름” : 성서에서는 구름이 자주 신현현(神現顯)과 연결지어 사용된다(출애19,16).

그러나 본대목에서의 구름은 다니7,13의 “사람의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라는

           표현을 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가슴을 칠 것입니다” : 이 말의 원어(kopsomai)의 의미는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에 눌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다“라는 의미이다.

 

[8절]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알파는 희랍어 알파벳의 첫 글자이고, 오메가는 끝자이다.

이는 “시작과 마침 그리고 전체(일체)를 포함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사야의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이사44,6)을 즉시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한결같으셔서 언제나 당신의 권능으로 그들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파요 오메가”는 이 절에서는 이사야서와 같이 성부 하느님을 지칭한다.

그런데 똑같은 ‘알파,오메가’라는 용어가 묵시록1,18에 가면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다.

이 부분은 묵시록의 종결사인 22,6-21과 문학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두 부분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장 4-8절

22장 6-21절

8절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13절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다.

7절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7절12절

내가 곧 오겠다.

7절

그렇습니다. 아멘.

20절

아멘.

4절

 

 

5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과, 그분의 옥좌 앞에 있는 일곱 영으로부터,

또한 충실한 증인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며 땅 위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가 내리시길 빕니다.

21절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이와 함께

 

 

 

 

 

위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전례의 개회 인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주체가 되시고,

           폐회 인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고 있다.

이처럼 묵시록의 전례 방향은 하느님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묵시록의 종결사는 이처럼 예수께서 종말론적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2. 영광에 싸이신 그리스도의 환시 체험(1,9-20)

 

 

구약성서에서 대부분의 대예언자들은 우선 하느님의 영광에 압도된 환시를 체험하고 나서

      그들의 예언직을 비로소 개시했다.

“이사야의 소명”(이사6장)에서도 이사야는 환시 중에 자신이 “높고도 뛰어나신” 주님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장황하게 묘사하고 있다.

에제키엘1장에서도 똑같은 예를 볼 수 있다. 신약의 요한 묵시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한은 자신의 예언 서두에서 “영광 중에 싸이신 승리자 그리스도”를 환시체험한 이야기부터 기록한다.

예언자로서의 그의 권위는 이 환시체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주님께로부터 그에게 위탁된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묵시1,19-20)


 

[9절] 요한은 예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죄수가 되어 ‘파트모스’(Patmos) 섬에 갇혀 있다고 밝힌다.

그가 갇힌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예수를 증언한 탓”이었다. 이 섬에 강금된 죄수들은

채석장 노역을 했으리라고 추측된다. 요한의 체험은 이 섬에서 주님의 날에 영에 사로잡힌 예외적인

내적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이 섬을 방문하게 되면 요한이 환시를 체험한 장소라 일컬어지는

동굴을 볼 수 있다.

 

 

[10절]주님의 날” :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이 용어는 이 대목에서 단 한 번 나타난 뿐이다.

후대에 와서 이 용어가 일요일 혹은 주간 첫날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영어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Church라는 단어는 바로 이 “주님의”라는 뜻인

              희랍어 키리아케(kyriake)에서 왔다.

 

성령에 사로잡혀” : 요한은 육체적으로는 ‘파트모스 섬’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영적으로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고차원의 영역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탈혼상태’에서 한 음성을 듣고 환시를 체험하였다.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 : 요한 묵시록을 읽을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점은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문자 그대로 나팔소리가 귀에 들렸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유다인 전승속에서 볼 때, 나팔은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다.

출애19,16이나 히브12,19을 보면 주님의 현현이 나타날 때 나팔소리가 울린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나팔은 그리스도의 귀환(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기 위해 선택된

             도구라 할 수 있다.(마태24,31; 1고린15,52; 1데살4,16)

12절 이하에서 보겠지만 나팔소리는 바로 인자의 소리인 것이다.


[11절] 그 음성은-예수의 음성-요한에게 체험한 환시 내용을 기록해서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에

전하라고 명령한다. 그럼 왜 일곱 교회인가? 신약성서나 이냐시오의 서간들을 보면 그 당시 밀레토스,

 트로아스, 골로사이, 히에라뽈리스 등에도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미 존속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묵시록이 이미지나 글자의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일곱은 완전성, 충만성을 의미하므로,

묵시록은 꼭 여기 나오는 일곱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 보편교회를 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요한이 기록해야 할 내용은 묵시록 2-3장에 순서대로 나타난다.


 

[12-13절] 이 대목부터는 일곱 개의 황금 등경 한가운데 나타나신 ‘사람(인자) 같이 생긴 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내용의 모델은 에제키엘이 본 환시이다.

에제키엘이 본 환시는, 두 시기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첫 번째 시기에는 4명의 케루빔이 옮겨 놓은 옥좌가 나타난다(에제1,4이하).

뒤이어 야훼의 영광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존재가 나타나는데,

           예언자 에제키엘은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그 신비스러운 존재는 예언자 에제키엘을 안심시키고,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할 선교 사명을 맡기게 되는데,

          그 사명은 두루마리를 삼켜 버리는 환시를 통해 확증되고 있다.(에제1,26-3,11)

두 번째 시기에는 예언자 에제키엘이 영에 이끌려 들어 올려지게 되고,

           등뒤에서 멀어져 가는 야훼의 영광의 소리를 듣게 된다(3,12이하).

예언자 에제키엘은 비탄 속에 잠겨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야훼의 영광을 보고,

          자신이 수행해야 할 선교 사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듣게 되는 장소로 가야만 했다(3,22이하)

이와 같이 에제키엘이 본 개막 환시는 파트모스 섬에서 자신이 겪었던 예언자적 체험을 묘사하려는

        요한에게 하나의 구조적인 틀을 제공해 주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점은 요한 묵시록 속에 에제키엘이 본 환시 내용이 계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로서

        입증이 되고 있다(4장의 하느님의 옥좌를 둘러싸고 있는 케루빔에 대한 언급과,

        10장의 삼켜버린 두루마리).

 

요한의 환시의 두 번째 성서적 모델은 다니엘서이다.

요한 묵시록이 서술해 주는 “인자 같은 분”, “순금띠” 에 관한 환시 내용은 다니엘7-12장에서 소개되는

        메시아적 환시 내용들을 갖다 쓰고 있다

        (상징적 짐승들, 옥좌에 앉아 계신 태고적부터 계신 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

이렇게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기록하면서, 에제키엘서와 다니엘서에서 인용한 대목들을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13-18절의 내용들은 다니엘7,13에서 빌어다 쓰고 있는 내용들이다.

인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셨다.”(13절)

여기서 말하는 ‘긴 옷’은 히브리 대사제들이 입던 옷을 지칭한다(출애28,4).

이는 인자가 참된 사제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의미이다.

 

출애28,4 : 그들을 시켜 지을 옷은 가슴받이, 에봇, 도포, 자주 속옷, 사모, 제복띠 등이다.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너희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입을 거룩한 옷을 지어 나를 섬길 사제 일을 맡게 하리라.

 

 

또한 ‘7’이라는 숫자가 거듭 등장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일곱 영신’, ‘일곱 교회’가 거론되었고 앞으로도 묵시록 전체를 통해

        이 숫자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성서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함, 충만함, 거룩함’ 등을 의미한다.

 

황금등경” : 묵시록에서 금붙이들이 자주 나타난다.

                    예컨대 “금띠”(1,13), “금관”(4,4), “금대접”(5,8) 등이 그러하다.

금은 왕권과 영광의 상징이다. 이 일곱 개의 황금등경의 이미지는 분명 그 기원을 구약성서에 두고 있다.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만들라고 하신 모형을 본 떠 순금으로 등잔대가 만들어졌다는

                        출애25,39-40과 37,17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출애25,39-40 : 이렇게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만드는 데 순금 한 달란트를 들여 산                      위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양대로 만들어라.

출애37,17 : 그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었다. 한 덩이를 두드려서 밑동아리와 원대를 만들고, 또 두드려서 꽃받침과 꽃잎 모양을 갖춘 잔들이 벋어 나오게 만들었다.

 

또한 즈가4,2와 4,10을 연상케 한다.

즈가4,2 : 그가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나는 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보인다고 대답하였다. 그 등잔대 꼭대기엔 그릇이 하나 있고, 그 가장자리로 돌아 가며 심  주둥이가 하나씩 뚫린 등잔 일곱 개가 붙어 있었다.

즈가4,10 : 이 일곱 등잔은 천하를 살피는 야훼의 눈이다."

 

등잔의 상징은 천하를 살피시는 야훼의 눈이라고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대부분의 성서는 이처럼 금으로 된 등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금으로 된 등잔을 특별하게 취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순수한 상태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경신례를 위해 그것이 사용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20절에 가서 일곱 등경이 일곱 교회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곱 등경이란 충실성을 간직하며 기다림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의 이미지인 것이다.


 

[14-15절] 이 구절 전체도 구약의 다니엘서와 에제키엘서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 눈같이 희었으며”(다니7,9a),

“그분의 눈은 등불 같았으며”(에제1,7; 다니10,6),

“그분의 팔다리는 놋쇠처럼 윤이 났으며”(에제1,7; 다니10,6),

“그 소리는 큰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습니다.”(에제43,2)

요한은 이런 인용을 통해 심판관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신적인 특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6절]일곱 별” : 20절에서 “일곱 교회의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날카로운 쌍날칼” : 하느님 말씀의 날카로운 관통력을 상징한다.

사도 바오로 역시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 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피조물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히브4,12) 고 하였다.

이사야 예언자도 “그분은 내 입을 칼처럼 날세우셨다”(이사49,2)고 묘사하였다.

 

12-16절의 그리스도께 대한 묘사는 시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상징이다.

이 대목을 합성된 시각적 표상으로 생각할 때 아주 기괴한 어떤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각각의 표상에 딸려 있는 상징을 고려하면서 그로부터 요한의 의도한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

이 일련의 상징들은 그리스도의 신체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속성, 또는 자질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가를 말해주고 있지, 그분이 어떤 모습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상징들이 낳는 총체적인 효과는 엄위로운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광휘를 묘사해 보이는 것이다.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표상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다니엘서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이 표상들은 원래 형태로는 하느님께 사용되던 것이지만, 요한은 그것을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시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모든 예언의 실현이시라는 것이 명백히 함축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왕의 권위(금띠)를 지닌 사제(긴 옷)로 묘사되며, 또한 영원한 지혜(하얀 머리와 머리털)로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불꽃 같은 눈) 변함이 없으시며(놋쇠 같은 발), 당신의 위엄으로 존경과 경외를 명하시는 분(큰 물소리 같은 음성)이시다. 그분의 입에서 나온 칼은 인간들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가 꿰뚫고 심판하시는 말씀인 하느님의 음성을 상징한다.

 

요한은 그리스도 환시체험 내용(12-16절)을 일곱 교회에 보내는 각 편지 서두에

            매번 한 두 개씩 재사용 하고 있다.

 

 

[17a-b절] 요한이 환시 중에 그리스도를 뵙고 압도당한 나머지 그가 어떤 정신상태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 아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요한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땅에 쓰러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위엄에 압도되는데, 주께서는 그를 일으켜세우시고 그더러 교회들에게 글을 써보내도록

 명하신다.

이처럼 신현현(神現顯)의 순간에 압도당하는 장면을 성서는 여러 군데에서 전하고 있다.

모세가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자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출애33,18-20)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이사6,5)

“사방으로 뻗는 그 불빛은 비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 처럼 보였다.

        마치 야훼의 영광처럼 보였다.그것을 보고 땅에 엎드리자, 말소리가 들려왔다.”(에제1,28)

고기잡이 기적 후에 크게 놀란 베드로는 예수의 발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루가5,8) 하고 말했다.


[17c-18절] 예수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 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계신다.


[19-20절] 일곱 별과 일곱 황금등경의 신비

일곱 별” : 일곱 교회의 천사들, 원래는 일곱 교회의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일곱 등경” : 요한이 편지를 보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의미한다.

등경은 밤에 빛을 비추기 위한 도구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이 마태5,12-16에도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인자가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있다(권세의 상징).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등경 한 가운데 서 계시는 그리스도는 역사 해결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이시다.


<계시>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으며 음성을 들을 수 없는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하여 당신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시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건들을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신다”라고 말한다.

계시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베일을 벗기다’ 라는 뜻으로,

       사람의 지혜로써는 알아듣지 못하거나 밝힐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알아듣도록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이다.

예언자나 사도, 사자가 어느 집단 전체를 위해 계시를 받을 경우 이를 公的啓示라 하고,

한 개인, 즉 계시받은 당사자를 위해서나 어느 특수 부류만을 위해 계시될 경우

         이를 私的啓示라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당신을 완전히 계시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드러내 보이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다른 말씀이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헌장 4항)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류 구원을 위한 계시는 모두 종결되었다.

그러므로 종말때까지 더 이상의 계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핵심이다.

그분이 흘리신 피와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모든 계시가 채워졌으며,

       더 이상 보완하거나 추가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공적계시에 충실하여야 한다. 사적계시를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며,

           종종 잘못된 길로 빠지게 마련이다.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