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요한묵시록 공부

[스크랩] 제23강 대탕녀 바빌론(묵시록 17ㅡ18)

윤 베드로 2016. 8. 29. 11:14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평화방송/ 박병규 신부님의 요한 묵시록 해설

제23강 대탕녀 바빌론 (묵시록 17ㅡ18장)

 

+ 찬미 예수님! 안녕하십니까?
예, 한 주간 잘 보내셨습니까? 예, 뭐 어떤 분이 방송 들으시는 분이 맨날 기억 나는

거는 한 주간 잘 보내셨습니까? 이 인사말 밖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데 제가 그

말을 계속 반복하는 거 같애요. 그런데 한 주간 잘 보내야 우리가  강의도 재미있고,

미사도 재미있고, 우리 신앙생활도 재미있고, 또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죠?

 

우리가 신앙생활이 뭐 맨날 저 세상, 영원한 생명 그렇게 말하고 현실은 자꾸 참아라,

극기해라, 희생해라, 뭐 겸손해라. 그러면 사실 저 세상과 이 세상이 맞닿아 있다고

하는데 이 세상부터 기뻐야  신앙생활도 재미있고, 저 세상 가서도 그 기쁨을 맛보고.

우리 그렇게 살아야 진정한 신앙인의 삶이니까.

 

하여튼 기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오늘 참 기쁜 소식이 인제 우리가 이 시간에

볼 겁니다. 왜냐하면 이제 악의 본질, 악의 근원 이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바라보는

악의 근원을 우리가 이제 다 멸망한 , 그것이 인제 송두리째 없어지는 그런 어떠한

내용을 우리가 배우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악의 근원인지, 뭐 정신적으로 더러운 영, 뭐 이래가지고 귀신, 우리 뭐

귀신 씌었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뭐 굿하는 분 불러서 작두도 타고 막 그런 거

뭐 하는데 그런 정신적이고 막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어떤 사상에서 처녀

귀신도 있고, 몽달 귀신도 있고 이런 귀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오늘 우리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측면과 연결이 됩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가, 우리가 악의 근원은

우리 용에서부터 봤죠? 12장에서 뭐와 싸웁니까? 미카엘 천사와 싸워서 바다의

모래에 떨어져서 거기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만나고 또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만나서 악의 근원에 대해서 우리 잠시 봤었습니다. 그것의 어떤 종착,

그것의 최고 근원을 오늘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기 전에 한 가지 제가 예를 들어서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엊그제 제가 산행을 갔었어요. 산에 올랐는데. 제가 유학 갔다가 들어와 가지고 거의

10년 만에. 운동이라는 거는 완전히 숨쉬기 운동 외에는 별로 한 게 없는데 ^^*~~~

올라 갔다가 그것도 955m  정도 되는 산이었습니다. 제법 높죠?

 

그런데 800m 되는 데까지 차 타고 올라갔어요. ^^*~~~ 차 타고 올라 갔는데 꼴랑

얼마 안 되는 건데. 올라 갔는데 어느 우리 본당의 형제님이 절대 이 일은 방송 가서

말하지 말라고 ... 방송 가서 이야기할 거다 그러니까 이름은 말하지 마라고...

이름은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 세례명은 비오 형제님이라고 있는데 그분이 등산

가자고 해서 인제 올라 갔죠. 갔는데.

 

저는 편한 길로 조금 쉽게 갑시다. 그랬는데 아, 등산길이 이렇다면서 막 끌고 올라

가는 거예요. 되게 가파르게 이래 올라갔습니다. 막 처음부터 이러니까 되게 숨이

가빠가지고. 저는 운동하러 왔는데... 기분 좋게 산의 공기를 ...

 

같은 등산인데 길이 험하다고 해서 그때부터 살살 제 속에서 운동하러 갔던 좋은

마음이 어떻게 변하느냐 하면,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로 데리고 가셨느냐?

더덕 캐러. ^^*~~~ 예, 더덕 10뿌리만 캐면 이거 시내 나가면 10만원 받을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캤는데 2뿌리 밖에 못 캤습니다. 더덕이  잘 없더라요.

다음에 더덕 캐러 같이 가기로 했는데.

 

이제 문제는 같은 등산, 하나의 등산을 놓고 제 마음이 변하는 것을.

뭐 등산 하시는 분들이 가끔씩 이렇게 말씀 하시는 거 보면, 등산 하는 것이 인생의

어떤 그런 굴곡을 느낀다고 그러는데 제가 등산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내리막 길에서는 평탄한 길, 그늘에 있을 때는 아, 좋다. 매주 와야지. 이러다가 조금

오르막에 있으면 내가 사서 이 고생을 왜 하냐? 이런 마음이 계속 반복이 되는 것.

오늘 제가 이 악의 근원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물론 바빌론입니다. 바빌론의 형상을

갖고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풀어가는데 악의 근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이것을, 이 어떤 세상에 주어진 어떤 환경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거냐? 살아가지 않는 거냐? 같은 상황인데 이것이 악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이것이

선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나한데 크게 잡아서 100억이 있다. 이것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나의 치장과 나의 어떤 건강, 나만의 어떤 행복을 위해서 사용하느냐? 아니면

이것을 뭐 우리 각자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각자의 가치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위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이 돈의 가치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겠죠.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쉽게 얘기해서 우리는 결론적으로 바로 말씀드리자면,

바빌론의 패망을 이야기 하는데 오늘 우리가 볼 게 18장입니다. 그러나 이 바빌론

패망은 로마의 패망인데 로마는 패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묵시록이 쓰여질 때는.

 

그러나 패망하지 않은 나라를 두고 패망했다고 보는 것. 이것은 철저하게 내가

바라본, 나라는 어떤 사람의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

요한 묵시록에 나타나는 패망이니, 멸망이니 어떤 악의 세력이 어떻게 하느님의

어떤 진노의 징벌에 의해서 없어진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무엇이 없어졌고, 무엇이 망했고, 그래서 세상에서 악의 요소가

없어졌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악은 내 눈에 안 보이는

거예요.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나의 욕심으로, 욕망으로만 바라보고 그렇게 달려들기

시작해 버리면 세상 모든 것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막 바빠요. 마음이 급해요.

저거 어떻게 내가 획득해야 되는데, 쟁취해야 되는데.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옆을 보고, 이웃을 보고, 어떻게 하면 내가 이 관계 안에서 우리가

나중에 이 관계의 측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건데 이 관계 안에서 너와 나의 관계

안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가?

 

이것에 따라서 우리는 악의 요소냐? 선의 요소냐? 분명히 밝힐 수 있습니다. 로마를,

바빌론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의 자세를 오늘 이 시간에 한번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 우리가 18장을 보는데 이 탕녀가 나옵니다. 대탕녀.

앞에 '대'자가 붙었습니다. 18장을 볼 거예요. 17장부터 봐야 되는데 오늘 중요하게

봐야 될 것은 18장입니다.

 

18장에서 숫자의 어감이 좀 그렇습니다마는... 열여덟 번째 장 ^^*~~~

이 장의 내용이 왜 이것이 악의 요소고, 이것이 왜 바빌론 다시 말해 로마가 멸망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인이 거기 있고, 이 바빌론 다시 말해서 로마를 설명하는 것이 17장

부터입니다.  * 묵시록 18장: 악의 요소, 왜 바빌론(로마)가 멸망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끝은 19장까지 걸쳐져 있는데 우리가 다음 시간에 19장은 또 본격적으로

보고요. 일단은 오늘 18장을 들어가기 위해서 17장부터 대략적인 어떤 구조를 먼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7장에는 바빌론이 도대체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모습을 이

17장에서 수술하고 있는데요.

 

* 묵시 17,1: 저마다 대접을 일곱 가진 그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대접, 일곱 대접을 땅에 쏟아 부었던 어떤 징벌이죠. 하느님의 징벌. 그 중에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와서 말을 하였습니다.

 

* 묵시 17,1: "이리오너라. 큰 물 곁에 앉아 있는 대탕녀에게 내릴 심판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라고 말을 하면서 뒤에 대탕녀의 모습을 인제 설명을 해 나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보면 이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 여기에 한번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주목해야 되느냐?

 

이것이 21장 9절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상 예루살렘(묵시 21,9-27)은 하느님

과 어떤 의미에서 일치의 관계를 드러내는 어떤  아주 우리 요한 묵시록의 결론적인

부분이거든요. 여기에 이 천상 예루살렘을 소개하는 천사도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에 하나 입니다. 같은 천사가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같은 천사가.

 

한번은 지금 대탕녀 바빌론을 소개할려고 하고 있고, 그 같은 천사가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같은 천사가 한번은 지금 대탕녀 바빌론은 소개하려고 하고 있고.

그 같은 천사가 지금 21장에 가서는 천상 예루살렘을 설명하려고 했어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거와 같은 맥락입니다. 같은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에 따라서 악의 요소가 되고 선의 요소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죠? 여기에

요한 묵시록 저자가 이런 식으로 의도했다라는 것. 좋은 것을 설명할 때도 그 천사고.

나쁜 것을 설명할 때도 똑같은 천사를 이야기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정말 어떻게 보면 같은 겁니다. 같은 건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 관점을 머리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외적 모습, 대탕녀의 바빌론의 어떤 외적인 모습을 한번 보면, 특별히

4절에 보면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 묵시 17,4: 그 여자는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였습니다. 손에는 지기가 저지른 불륜의 그 역겹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긴 금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자, 아주 화려해요. 그죠? 옷도 자주색과 진홍색의 예쁜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긴 금잔을 들고 있었어요. 불륜까지를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불륜의 의미는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고, 여기서 우리가 봐야 될 것은

이 대탕녀가 나쁜 짓을 했습니까? 나쁜 짓이 윤리 도덕적으로 뭔가 잘못햇다는 것을

언급하는 게 아니죠? 치장하는 걸 언급해요. 그죠?

 

그리고 뭐 화려한 거, 그 다음에 금잔을 들고 이 안에 불륜의 어떤 더러운 것, 역겨운

것이 가득찼고. 외적인 모습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윤리 도덕적인 어떤 차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꾸미는 것에 대한 이 재화, 물질적인 차원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8장에 가서 그 로마, 바빌론을 어떻게 비판하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해 나갈

때 대부분의 설명이 재화에 관련된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 특별히 값비싼 것들에

대한 겁니다. 우리 대탕녀의 모습을 처음에 소개하는 장면에서 우리가 이제 생각해

봐야 될 것은 한 관점으로 이렇게 요한 묵시록 저자가 몰고가는 거지요. 몰고 가는데

있어서 재화, 물질, 거기에 지금 요한 묵시록 저자는 우리를 지금 데리고 가고 있다.

 

그래서 더러운 영, 귀신, 뭐 윤리 도덕적으로 법법자, 뭐 이런 개념은 조금 내려

놓으시고 지금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은 세상의 재화, 물질적인 것, 그런

차원으로 우리가 조금 관심있게 봐야 되겟다. 요한 묵시록 저자의 관점이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7,7-18을 보면 이 대탕녀의 신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특별히 9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묵시 17,9: "여기에 지혜로운 마음이 필요한 까닭이 있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며 또 일곱 임금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대탕녀의 신비, 대탕녀가 누구냐? 다름 아닌 일곱 산은 뭐냐?  로마에 가면 일곱

동산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요한 묵시록 독자들이, 당시의 독자들이 봤을 때 일곱

산이다 그러면 아, 일곱 개의 동산이 있는 로마다. 대탕녀의 신비라고 쭉 설명을

하지마는 뭐 다름 아닌 제가 계속 말씀드렸던 로마를 지칭하는 것이죠.

 

그래서 앞의 말과 제가 방금 했던 이 구절의 말을 다시 말해서 4절과 9절을 연결해서

보자면 로마의 재화, 로마의 물질적인 측면 이것을 가지고 지금 악의 근원, 대탕녀,

바빌론의 모습을 우리가 살펴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묵시 17,4: 로마의 재화, 로마의 물질적인 측면을 설명

 

사실 이 돈이 문제예요. 돈이. 그죠? 세상 살아가는데 이 재화가, 돈이 이제 참

사람은 망칠 수도 있을 수 있고, 사람을 흥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왜 그 돈이 나쁜가의 모습, 나쁜 측면, 안 좋은 모습, 그것을 로마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 보자는 것입니다.

 

자, 이 17장에는 이러한 대탕녀의 모습을 로마의 물질적인 측면으로 우리가 한번

이야기해 보겠다라는 것을 전제로 깔아 놓은 것이고요. 18장에 와서는 이 로마의

패망을 말하고 18장 마지막에는 "다 멸망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제 기뻐해라.

소위 이제 망했으니까, 로마가 망했으니까. 그러면서 19장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나옵니다. 요렇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 묵시 18장: 로마의 패망

* 묵시 19장: 어린양의 혼인잔치

 

바빌론의 어떤 설명, 바빌론이 망하는 것, 그 다음에 망해서 나타나는 것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라는 것입니다. 요것이 소위 한 단락인데요. 한 묶음이예요.

이야기의. 자, 이것이 어떻게 연결이 돼 있나 우리가 다시 한번 자세히 보면요.

 

바빌론이 나왔습니다. 바빌론. 바빌론이  패망하죠. 패망을 하고 그 다음에

어린양의 혼인잔치입니다. 자, 요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빌론이 대 뭐요?

대탕녀죠? 자, 대탕녀라는. 자, 탕녀 뭐 우리 창녀, 불륜 뭐 이런 걸로 연결해서

자, 혼인잔치와 일단 한번 비교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망해서 혼인잔치에로. 창녀가, 탕녀가 이건 아니구나. 망해서 혼인잔치로 지금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창녀, 탕녀는 혼인을 해요? 안 해요? 할 수도

있지마는 하지마는. 아, 이러니까 우리가 자꾸 인권적인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지금의 창녀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안 되고 요한 묵시록이 봤을 때 어떤 불륜을

저지르는, 자기의 욕구와 자기 욕망, 자기만을 위한 것을 드러내는 어떤 그런 

존재로 대탕녀라고 했습니다. 

 

혼인 관계가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욕구 중심, 욕망 중심적이죠. 

이것이 망하면 혼인잔치는 뭡니까? 혼인은 저 혼자 합니까? 같이 해요?

관계 중심이죠? 대탕녀는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인데 아까 제가 17절

4절과 9절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로마의 어떤 측면? 

 

로마의 경제적이고 물질적이고, 재화 그리고 돈, 돈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 물질적인, 이기적이라고. 이것이 재화, 이런 경제적인 패망을 하고

나서 혼인잔치,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관계적인 측면입니다. 그죠?

 

어떻게 이 많은 재화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이 재화는 물론 돈 뿐만 아니라 모든

어떠한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물질적인 인간 세상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 혼인 자치가 혼인이 완전히 성사 되어서

완전히 이제 부부, 소위 부부 그런 모습이 보이는 게 천상 예루살렘 아닙니까? 

 

거기가면 오만가지 거기 보석들이 등장해요. 이 보석들은 여기에 대탕녀를 위한

금, 진주로 치장하고, 혼자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하느님과

어린양, 동시에 하느님과 어린양과 모든 민족들. 이 관계 안에서 모든 것을 공유

하는 개념이 나중에 천상 예루살렘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패망한다는 거 이게 18장인데 요것을 중심으로 바빌론의 어떤 모습과

어린양의 어떤 모습이 대비가 됩니다. 대비가 되죠? 그래서 18장의 이 패망의

모습은 한 가지 측면, 재화, 물질적인 것, 경제적인 것을 놓고 한쪽은 자기만을

위한 것. 한쪽은 관계를 위한 것. 이것이 어떤 경계점, 구분점이 된다라는 구조를

가지고 우리가 텍스트를 한번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자, 우리가 볼 것은, 지금부터 볼 것은 18장 4절에서 20절입니다.

왜 18,4-20을 보냐하면,  여기서부터 이제 소위 우리가 18장에 나오는 바빌론의

어떤 무습이 망해야 하는가? 망하는 것이 어떤 것이 망하는가? 무엇 때문에?

하느님의 어떤 진노, 개입, 하느님의 진노 때문에 망해야 하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가가 18,4-20절까지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라보면 한 가지 특징적인 게

있습니다.

 

* 묵시 18,4: 나는 또 하늘에서 울려오는 다른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또 어디에서? 하늘에서 울려오는 다른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자, 그 다음에 우리가 봐야 될 것이 20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18장 20절을 보면 어떻게 돼 있습니까?

 

* 묵시 18,20: "하늘아,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아 저 도성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저 도성에 심판을 내리셨다."

 

자, 장소적인 측면이 어디죠? 하늘입니다. 하늘.

자, 우리가 장소를 보면 참 재미있어지는데요.

 

 

 

여기가 바빌론이라고 합시다. 여기가 하늘이라고 합시다.

여기가 이제 하늘이예요. 바빌론은 상대적으로 하늘에 비교해서 땅의 어떤

자리라고 합시다. 여기가 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용이 어디에

내렸습니까? 바닷가에 내렸죠? 그 다음에 이제 바다에서 올라 오는 것,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그리고 땅의 주민들. 그죠?

 

이런 식으로 지상과 연결된 어떤 개념들이 요한 묵시록에 쭉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라보는 관점이 어디 차원에서 지금 보고 있느냐의 모습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요한 묵시록 18장을 시작하면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예요. 하늘에서.

여기(바빌론)을 바라보는 거예요. 자, 그러면 땅에서 땅의 주민들이 바라봐서

"아이구야, 저거 대단하구나!" 땅의 관점에서 보자면, 뭐 쉽게 얘기해서 다른

말로 바꿔 봅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아이구, 대단하네, 정말 멋잇네!" 요거 13장에

나왔었습니다. 어디 이 짐승과 누가 비길 수 있을까? 누가 이 대단한 짐승 앞에

누가 감히 요거와 비교되고 이보다 더 나은 게 있을 수 있을까? 라고 13장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경배를 합니다.

땅의 관점에서 보자면.

 

물론 그것도 로마의 군사, 정치적인 어떤 측면, "대단하다. 로마. 저 앞에 누가,

어떤 나라가 감히 대적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으로

봤을 때 바빌론이, 다시 말해서 로마는 엄청 대단한 어떤 힘을 가졌는 거예요.

 

그러나 하늘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이것(바빌론, 로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지 마시고 하느님의, 하늘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

보라고 지금 이야기의 첫 번째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이것을 하늘

에서 땅(바빌론)을 다 보고 난 후에 자 하늘아 보지 않았느냐? 어떻게 돼 있습니까?

 

* 묵시 18,20: 하늘아,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아 저 도성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저 도성에 심판을 내리셨다.

 

예, 하늘의 관점에서는 누가 있느냐? 성도들, 또 누가 있습니까? 사도들, 그 다음에

예언자들. 자, 이 사람들의 관점이 이 세상(바빌론, 로마)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이

사람들(성도, 사도들, 예언자들)은 여기에(바빌론, 로마), 세상적인 것의 인간적인

어떤 측면만을 바라보는 것에 이것의 패망, 멸망은 이 사람들(성도들, 사도들,

예언자들) 에게는 기쁨이 되는 거예요.

 

세상적, 순수 인간적 관점만 바라보는 어떤 그런 측면에서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기쁨이 될 수 있다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18장 4절에  

 

* 묵시 18,4: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그리하여 그 여자의 죄악에

  동참하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앙을 입지 마라."

 

자,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그 여자는 누구? 여기서(바빌론, 로마) 나와서 이 부분

(성도들, 사도들, 예언자들) 여기는 하느님의 백성이죠. 하느님 백성의 자리로 가라.

여기(바빌론, 로마)는 뭐가 남았겠죠? 이 장소(바빌론, 로마)에서. 18장을 보면요.

사실 바빌론, 다시 말해서 로마가 스스로 이야기 하는 거는 없습니다. 로마가 로마

자기에 대해서 "아, 내가 낸데!"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러나 세 부류에 의해서 로마에 대해서 증언하는 게 나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한번 세 부류를 보겠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첫 번째가 이제 로마, 바빌론 안에 들어왔어요. 첫 번째 9절에 땅의 임금이있습니다.

땅의 임금이 첫 번째 부류고, 두 번째 11절에 상인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가 19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등장합니까? 바다에 관련 돼 있죠? 바다에서 배를 타고 상업적인 거를 운송

하시는 그런 것에 관련된 사람들. 뭐라고 할까요? 항해사라고 할까요? 아무튼 땅의

임금, 상인들, 항해사 이 세 부류가 로마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바빌론은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증언인데 이 증언을 한번 보겠습니다.

 

* 묵시 18,9-10: 그 여자와 함께 불륜을 저지르며 사치를 부린 땅의 임금들은 그

   여자를 태우는 불의 연기를 보고 울며 가슴을 칠 것이다. 그들은 그 여자가 받는

   고통이 두려워 멀찍이 서서 말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저 큰 도성!

   강한 바빌론아 삽시간에 너에게 심판이 닥쳤구나.'

 

자, 땅의 임금들의 뭐 때문에 지금 울며 가슴을 칩니까? 사치를 부린 땅의 임금들은

그 여자를 태우는 불의 연기를 보고 울며 가슴을 칠 것이다. 불의 연기가 무엇이겠

습니까? 불의 연기가 뭐냐하면, 네로 황제가 로마를 한번 불지른 적이 있지요?

 

거기에 대한 요한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한참

전에 했습니다. 그죠? 다섯 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가 로마 황제 네로가 불을 질러서

로마를. 그거를 그리스도인들이 했다. 유다인들이 했다라고 이렇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그런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로마의 패망을 보고

땅의 임금들이 가슴을 칩니다. 상인들도 11절에 보면,

 

* 묵시 18,11: 땅의 상인들도 그 여자 때문에 슬피울 것이다. 더 이상 자기들의

  상품을 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치를 부린 땅의 임금들도 운다. 왜? 앞으로 사치를 부릴 수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타버리면. 땅의 상인들은 더 이상 자기 물건을 소위 돈벌이가 이제 끊겼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이제 19절에 어떻게 돼 있습니까?

 

이거는 항해자들이라고 표현한 바다의 그런 재화를 옮기는 수단이 되고 거기에 종사

하는 사람들입니다.

 

* 묵시 18,19: 또 머리에 먼지를 뿌리고 슬피 울며 부르짖었다.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저 큰 도성! 바다에 배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그 재화 덕분에 부자가

   되었건만 삽시간에 폐허로 변해 버렸구나.'

 

자, 로마 덕택에, 바빌론 덕택에 부자가 되고, 다 이것이, 증언이 어디와 연결이 돼

있습니까? 지금 재화나 부와 연결이 돼 있습니다. 이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증언

하는 내용을 한번 보십시오. 재화와 부가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 다 불행하다, 불행

하다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화와 부와 반대쪽에 있는 거. 다시 말해서 아까 하늘의 영역인 성도들,

사도들, 예언자들인 하느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이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자, 약간

좀 유치하지마는 소위 돈과 재화쪽과 반대쪽에 지금 하느님의 사람들이 지금 놓여

있는 거예요.

 

경제적인 것, 돈의 반대쪽에 지금 요한 묵시록의 어떤 구조는 그렇게 놓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돈은 나쁜 거다라는 차원으로 지금 흘러가고

있는데 돈의 어떤 것이 나쁜가는 또 한번 더 구체적으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까 세 부류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돈의 어떤 측면? 무작정 돈은 나쁜 게 아니예요. 돈은 있어야 되고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이 돈이 어떻게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가를 한번 보면,

 

아까 상인들이 11절에 더 이상 자기들의 상품을 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상품들이 쭉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18장에서 제일 긴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품목들이 나오는  이 품목들이 어떤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는가를 보면,

돈의 어떤 측면이 나쁜 것인지를 우리가 보게 됩니다. 14절을 보면,

 

* 묵시 18,14: 네 마음이 탐내던 열매가 너에게서 사라지고 온갖 화려하고 찬란한

   것들이 너에게서 없어져 다시는 그것들을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

 

자, 여기 너라는 것은 지금 하늘의 목소리가 요기만 유일하게 바빌론, 로마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부분이거든요. 그전에는 상인들의 어떤 증언, 그 이후에도

상인들의 증언이 나옵니다.

 

그런데 14절 요기만 그 상인들은 자기 물건 못 팔아서 슬프고, "아이고, 불행하다,

불행하다, 큰일났다." 이러지마는 14절 요기만 로마의 그 물건이 너희들의 부를,

재화를 너희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그 로마에 대한 비판이

14절에 바로 1인칭 어떤 대화의 차원으로 그렇게 등장하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부분은 "네 마음이 탐내던 열매가 너에게서 사라지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뭐냐? 상인들이 팔았던 그 많은 재화들 이것이 로마의 탐욕과 연결 된다는

것입니다.

 

* 네 마음이 탐내던 열매가 너에게서 사라지고= 로마의 탐욕과 연결

 

경제적 측면의 부와 재화가 탐욕과 이렇게 엮여져서 온갖 화려하고 찬란한 것들이

너에게서 사라진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자기들의 탐욕을 꾸민 것으로 그것으로 이

재화, 부를 사들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품목들 이것이 주고 받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주고 받는

것들이 아니라 어떻게 됐나하면, 로마로 수입하는 겁니다. 로마로. 계속해서 로마가

거두어들이는 품목들입니다.

 

무슨 말인가? 내가 너와 상업적인 거래 관계에서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끌고 들어오는

거죠. 끌고 들어오는 것. 나만을 위해서. 나의 탐욕의 어떤 상징들의 이 물건들이, 이

재화들이, 이 보석들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금 있다가 하나하나 살펴

보도록 하고요.

 

그런데 여기가 문제는 여자의 형상으로 입니다. 대탕녀가 여지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치, 화려하고 찬란한 것, 탐욕, 경제적인 것을 탐욕의 어떤 것으로

바꿔버린 14절의 그렇게 바라보는 것을 왜 여자의 형상으로 이야기 했을까?

여자들이 사치를 많이 해서 그런가요? 왜 여자일까?

 

예나 지금이나 약간 좀 그러한  차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도 여성 비하

발언일  수 있는데 남자들도 사치부리는 사람은 사치 부리죠? 그죠? 예, 그런데 보면

여자들이 많이 그런 쪽에 관심이 있으시니까? 그죠? 화장도 하고.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을 한다고 그럽니다마는 왜 그런 쪽으로 여자와 연결을 했을까? 여자의 형상이

왜 그럴까? 고것을 대탕녀를 왜 여자의 형상으로 이야기를 했을까? 고런 측면에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대탕녀로서, 창녀로서의 바빌론의 어떤 모습에 대해서 한번 보고자 하는데요.

먼저 이것을 보기 위해서 우리가 13장에서 배운 것을 한번 더 머리 속에 떠 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 한 마디로 표현하겠습니다. 13장에 나타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동물 이것은 로마의 무엇을 상징한다고요? 제가 수차례 이야기했습니다.

로마의 무엇?

 

자, 그 13장을 보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짐승 앞에 경배를 하고요. 경배를 하는데 여기

전쟁을 하고 여기를 다스리고 세상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다스리고 그 전쟁의 그 힘이

누구가 감당해 낼 사람도 없고 그래서 이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요. 대부분 군사적인 힘

그리고 정치적인 힘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그 13장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들에게 사용

되었습니다.

 

자, 지금 창녀로서의 바빌론의 모습을 우리가 조금조금씩 알아보기 위해서 13장 이야기

부터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짐승이 18장에 나타나는 대바빌론, 이 대탕녀 바빌론과

연결이 됩니다. 그 연결은 어디서부터 되는가? 17장에 나타나는데요.

 

* 묵시 17,2-3: 땅의 임금들이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땅의 주민들이 그 여자의

   불륜의 술에 취하였다.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인 나를 광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진홍색 짐승을 탄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짐승의 몸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한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습니다.

 

여인이 어디에 타고 있습니까? 진홍색 짐승. 짐승은 어떤 짐승이죠? 마지막에?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습니다. 이 짐승(13장: 바다의 짐승) 이거든요. 여인이.

여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죠. 우리가 창녀로서의 바빌론의 어떤 모습?

로마의 경제적 측면이라고 계속 말씀을 드렸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이 지금 어디와

연결되고 있느냐하면, 로마의 정치, 군사적 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연결 되어서 아까 17장 2절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땅의 주민들이 그

여자의 불륜의 술에 취하였다. 땅의 임금들이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은 조금 더 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땅의 주민들,

이 모든 사람들이 땅의 임금들도 하여튼 모든 사람들이 로마의 이 짐승의 모습과

동시에 아까 바빌론의 경제적인 측면과 같이 어루러져서 함께 지금 취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되는 것은, 이 바다의 짐승이 아까 13장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앞에서 경배 한다고 그랬지요? 경배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꼼짝 못해요. 이 힘의 세력

한데 당해낼 사람이 없어요.

 

자, 그러니까 어떻해요? 경제적으로 힘센자가 "야, 가져와! 이리 가져와!" 이러면 다

빼앗기죠? 당시 이 상인들이 파는 이 모든 물건들이 아까 제가 수입만 한다고 그랬

습니다. 계속 로마로 집중한ㄷ고 그랬습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의 입장은 왜 이 13장

바다의 짐승과 연결을 했는가?

정치, 군사적 힘으로 로마 제국이 눌러가지고 빼앗아 오는 거죠. 그래서 빼앗아 오니까

세앙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의미로 상납을 하는 거죠. 로마의 부는 자기가 노력

해서, 자기가 어떻게 해서 벌어들인 정당한 몫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 힘으로 눌러서,

억압을 해서 갈취한 것에 연결되어 있다라는 측면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소위 조폭이 골목에서 이렇게 하는 그런 수준으로 이 어떤 경제적인 측면을

로마의 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황제 숭배,

그리고 로마 자체에 대한 숭배, 이것을 한번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우리가 로마의 억압이라고 했을 때 황제 숭배다. 황제를 신으로 이렇게 하는 그런 

어떤 억압,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자꾸 생각하면 약간 좀 편협된 관점이고요. 

로마 자체의 어떤 정치, 군사, 경제 모든 차원에서의 이 억압, 그리고 거기에 어떤

억눌려 있는. 로마 제국이 아주 넓었으니까요. 거기 민족들의 억압 그 자체가 이

요한 묵시록 저자가 보기에는 불합리하고 이것은 맞지 않다. 이것이 악의 요소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악의 요소의 로마의 어떤 이런 모습을 봤을 때 왜 불륜인가?

구약의 어떤 것은 호세아 예언서도 그렇고요. 구약의 어떤 전통을 보면,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간의 관계를 혼인에 자주 비유합니다.

 

그래서 혼인에 비유했는데 이 혼인의 어떤 관계 안에서 성실히 임하자 않고 다른데

마음을 두는 것. 이것을 우리가 불륜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이 하느님의

백성 입장은 여자쪽으로 나타나죠. 구약의 전통상 이렇게 눈여겨 보면. 여자인데

여자가 다른데 마음을 두고 있다. 다른데 마음을 두고 있으면 이것이 어떻게?

 

불륜으로 된다는 것이죠? 지금 18장에 나오는 대탕녀 바빌론의 불륜은 경제적인 측면

과 연결돼 있고, 이 경제적인 측면 뒤에 군사, 정치적인 힘으로 누르려는 어떤 힘의 요소.

이것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 불륜이라는 것은, 여자라는 것은 하느님 백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고. 이 하느님의 백성이 어디에 우상 숭배를 하고 어디에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가? 경제적인 측면에 빠뎌 있다는 것이죠.

 

* 불륜(구약성경): 하느님의 백성이 경제적은 측면에만 빠져 있음

 

아까 세 부류가 땅의 임금, 상인들, 그리고 바다의 어떤 종사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다 안타까워하고 불행하다고 울면서 그랬던 이유가 자기들의 경제적인 것에 어떤

집중화 되어 있던 로마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로마가 사라진 것은 자기의 부의 획득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부에 의지해 있었고 이 의지해 있던

것이 사라져 있다라는 것은 자기가 바라보는 목적을 상실했고 그 목적의 상실이 바로

우리 경제적인 어떤 측면의 상실과 연결돼서 지금 불륜은 경제적은 측면의 불륜입니다.

 

돈만 추구하고 자기 돈이 아까 로마의 어떤 탐욕을 채구는데 그것이라고 그랬죠?

거기에 이제 탐욕이, 이제 자기의 탐욕이 사라진 것에 대한 어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불륜을 생각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이제 로마가 하나의 우상 숭배의 하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차원이 분명히 아닙니다. 설상 모든 권력,

세상 모든 힘, 세상의 논리,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보면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신앙생활 하다가 우상 숭배라고 했을 때 그때 흔히들 생각하다 보면

점집에 가거나 뭐 다른 어떤 미신적인 행위를 하거나 이런 식으로만 생각하게 되는데

세상의 힘의 논리에 따라서, 세상의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서 돈만 벌면 된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입장에서, 하늘에서

바로보는 입장에서는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기 사치를 하고, 찬란하고 화려하게만 자기만을 위해서만 한다는 것은,

내가 성당에 예쁘게 꾸미고 가는 것은 상관 없죠. 그런데 성당에 가면서 내가 정말

화려하게 꾸미면서 꾸미는 것이 하느님보다 더 좋고, 더 관심 있고, 성당에 앉아

서도 미사를 드리면서 "아, 내가 오늘 무슨 헤어스타일? 어떤 치장을, 악세사리를

하고 왔나? 남이 알아 봤으면 더 좋겠다." 이러고 있는 모습. 이것도 우상 숭배죠.

 

예,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바빌론의, 로마의 모습을 우리가 봐야 되겠습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측면에서 우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떤 우상

숭배로서의 어떤 바빌론, 로마의 모습을 이제 구체적으로 상품 하나하나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겟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이 상품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가? 한번 보겠습니다.

금, 은, 보석, 진주, 상아 이런 것들이 등장합니다. 주로 이것들이 아프리카에서

수입 됐던 제품들입니다.

 

* 금, 은, 보석, 진주, 상아(묵시 18,12): 당시 아프리카에서 수입되던 제품들로

   대저택을 치장했던 물품들

 

이걸 왜 수입했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거 못 구하겠죠? 이것은 대저택의 인테리어,

대저택 안을 치장했던 어떤 그런 보석들 그런 물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17장 4절에 보면 아까 금, 은, 진조로 대탕녀가 치장을 했다고 그랬죠? 이게 같은

겁니다. 로마의 치장이.

 

* 묵시 17,4: 그 여자는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금, 은, 보석으로. 이거는 다른 사람이 못 한다고 그랬습니다. 대저택의

소위 정말 잘 사는 부자들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 부자들이 꾸미는 금, 은, 보석 이런

것들이 우상이 돼서 로마가 거기에 취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취했으니 그것만을

맹목적으로 나가다보니까 다른데서 정치, 군사적 힘으로 뺏어 왔다는 것입니다.

뺏어 와서 자기를 치장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뭐 얼마 전부터 지금 뭐 전 세계적으로 운동이 일어나는 게 월가부터

시작을 했죠? 소위 세상의 어떤 자본주의, 자유주의에 저항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어떤 데모를 합니다. 데모를 하는 이유가 이제 가난함에 대한 어떤 그런 가진자

들과의 어떤 갈등 구조가 드러나고 있는데 부의 편중, 한쪽으로 치우져 가는 부자들

만을 위해 나아가는 그런 어떤 것들. 그것에 대해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상당히 지금

어떤 의미에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비단이 등장합니다. 비단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 등장합니다. 비단은 당시에

황제 집안에서 겨우 입을만큼 엄청나게 값비싼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옷감이었고

 

* 비단(묵시 18,12): 로마 제국 당시 황제 가문에서 입었던 값비싼 옷감 재료

 

그 다음에 측백나무도 나타나는데 향나무로 감귤과 나무입니다. 이거는 무늬가, 결이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오래 갔다고 합니다. 이것도 대저택의

귀족 집안에서 가구에 사용됐던 어떤 그런 재료입니다.

 

향료가 있습니다. 향료 중에 계피가 있는데 500g에 천에서 이천 데나리온 했다고 합니다.

자, 한 데나리온이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버는 품값인데 계피의 그 향을 어떤

부자의 저택에서 즐겨했다고 그러네요. 한번 쓰기 위해서 일용직 노동자가 천 일을 혹은

이천 일을 일했던 것을 금방에. 그런 것들을 계피를 통해서 볼 수 있고요.

 

포도주, 올리브 이거는 뭐 우리가 구약의 전통 안에서도 메시아 시대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아주 값비싼 어떤 그런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요.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말. 말은 예수님 시대에 말은 함부로 못 타고 다녔어요. 비싸서.

그래서 나귀를 타도 다니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재미 있는 게 '몸'입니다. 몸.

'써마톤'이라고 그리스 말로 되어 있는데 이게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죠.

 

사람을 물건 취급했다. 자신의 어떤 물질적인 어떤 차원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사람을

물건 취급하게 되는 구조. 자 보십시오. 이 부의 편중 현상이 정말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것도 엄청난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릴 수 없는 그런 지금 재화들, 물질적인 모습을

쭉 이야기 하고 있고 마지막에 가서는 심지어 사람까지 지금 그 물질의 어떤 획득을

위해서 이용하고 있는 모습으로 이 상품이 진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땅의 상인들의 상품들(묵시 18,12):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아마포, 자수색 옷감,

   온갖 상아 공예품, 그리고 매우 값비싼 나무와 구리와 쇠와 대리석으로 만든 물품,

   또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 기름, 고운 밀가루, 밀, 소, 양, 말,

   마차, 노예, 포로 따위다.

 

경제가 나쁜 것이 아니고,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어느 사람 어느 관점에 따라서 이것(재화)을 취하고 있는가의 모습이 이 18장에 나오는

바빌론의 어떤 모습이고 잘못이겠죠. 한쪽만을 위해서 사용되는 돈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한쪽만을 위해서, 세상의 한 부류만을 위해서 사용되는 모든 재화는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배의 정의가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지는 것이지. 나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죠. 100원을 내가

받으면 누군가는 100원이 빼앗겨야 되는 게 우리 삶의 구조입니다. 그래서 늘 함께

한다는 정신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한번 생각해 보는 그런 마음의 전환, 마음의

우리 어떤 경제에 대한, 돈에 대한 어떤 관점의 변화 이것을 우리가 잘 생각해 보는

그런 모습니 이 18장을 통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시간 예고: 어린양의 혼인잔치(묵시록 19장)

 

 

 

출처 : 성서100주간
글쓴이 : 小花 글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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