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인간의 판단과 하느님의 판단

윤 베드로 2015. 4. 21. 12:28

●인간의 판단과 하느님의 판단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루가 18, 14).

 

1. 쉽게 행해지는 인간의 판단

 

우리는 일상 생활 중에 가끔 남을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그 판단받은 사람이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나쁜 사람으로 오해받는 수도 있고,

              그 판단하는 사람도 실제와는 달리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수가 있다.

성서의 말씀은 이러한 그릇된 경향들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도록 좋은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

먼저 집회서의 저자는 하느님을 의로우신 재판관으로서

        "누구에게도 한쪽에 치우친 판단을 하시지 않는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은 기쁘게 받아들이신다."(집회 35, 12. 16)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루가 복음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교만한 판단과

           예수님의 판단을 보여 주고 있다(18, 9-14).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서에는 재판 혹은 심판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가령 다니엘과 수산나의 이야기,

       간음하는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예수님의 판단에 맡긴 이야기,

       탕자의 비유 등, 여러 가지 비유를 든 판단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많다.

만일 성서에서 이 판단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삭제한다면 많은 부분은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간 생활 중에, 특히 사랑과 이해가 결핍된 곳에는

           항상 남을 심판하고 모함하고 멸시하는 일이 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우리도 혹시 남을 그릇되이 판단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그 동기는 여러 가지 원인에서 오는데 남이 잘되기를 시기하는 마음이라든가,

     자기만 잘살고자 하는 마음, 혹은 성서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올 수가 있다.

사람들의 이러한 그릇된 판단은 이웃을 영신적으로 숨막히게 하고,

              남의 인격을 무시하며 결국은 남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게 한다.

 

2. 예수님의 판단

 

루가 복음에서 보여 주는 예수님의 판단을 생각해 보자(18, 9-14).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먼저 바리사이파 사람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을 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생활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 볼 때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태도이며 나무랄 데가 없다.

과연 우리는 다른 것은 그만두더라도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을 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로 교회법에서 명하는 대로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의 단식과 금육재도

            가끔 지키지 못하고 고해 성사를 보지 않는가?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은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욕심이 없고 정직하고 십일조를 교회에 바친다.

십일조란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이다.

만일 매월 백만 원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만 원을 매달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 바리사이파 사람은 매달 십일조를 바쳤다.

그리고 그는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님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기도하였다.

'세리'라는 말은 오늘날 세금 징수원과 같은 사람인데,

        예수님 시대의 '세금 징수원'들은

        어떤 의미에서 유다 민족들 사이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다.

즉 그 당시 '세리'들은 같은 유다 사람들이지만

     자기 동족들한테서 세금을 걷어 정복자들인 '로마 제국'에 바치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말하자면 매국노와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세리'는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그는 감히 성당 가까이에 접근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또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자기 가슴을 치며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가 18, 13) 하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세리의 태도를 올바르게 보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문제는 인간이 하느님께 어떠한 태도를 갖느냐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자기의 의무는 하지만,

          그 의무를 지킴으로써 자신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악한 인간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3. 남을 이해하는 마음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격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약한 입장을 옹호하고

          또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바리사이파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욕심이 없고 정직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고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십일조를 바칠 수 있는 처지에 대해 감사드리면서

       또한 그와 아울러 '세리'와 같은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함께 손잡고 이해하고 공동체를 이루려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세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하느님께 고백하고,

       죄의 상황에 처해 있지만 한 걸음씩 좋은 길로 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므로 어떠한 죄인이라도 하느님께 부르짖으면

           올바른 사람으로 의화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또 많은 이들이 겉으로 보아 죄인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할지라도,

            그가 올바른 마음으로 회개하면 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갖자.

 

"겸손한 사람의 기도 소리는 구름을 꿰뚫는다."(집회 35, 17)라고 하였다.

우리는 진심으로 자신의 약한 처지의 개선을 위해 기도하며,

           하느님을 겸손되이 찾는 마음, 하느님을 통해

           나의 인격이 완성에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가지 실천 사항으로서 남의 나쁜 점은 결코 말하지 말고

            이왕이면 남의 장점을 이야기해 보는 습관을 가져 보자.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루가 1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