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한 3,17 참조).
그러나 심판은 있습니다. 그것도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그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은 빛과 어둠, 진리를 실천하는 이와 악을 저지르는 자,
아드님을 믿는 이와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자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도들과 유다 지도자들,
복음 선포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이들과 거부하는 자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행동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지난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였지만,
이제 부활 사건 앞에서 그 결단은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그분을 주님이시며 하느님으로 믿을 것인가?
그렇게 돌아가신 분께서 지금도 살아 계심을 믿고 있는가?
그래서 십자가가 생명의 길임을 믿고, 그 죽음과 부활의 길을 따라나설 것인가?’
믿지 않는 자들은 생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빛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박해자들의 모습에서 확인합니다.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한 부활을 믿지 않으며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도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도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어둠이고 심판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을 거절하거나 물리칠 때 자신이 스스로를 죄짓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지만
이렇게 인간은 불신하고 거부하면서 그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 앞에서 우리 인간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그 선택에 따라 삶과 죽음이 판가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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