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신 그리스도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요한 18, 37).
교회 전례상 연중 마지막 주일에 거행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1925년 11월 11일, 교황 비오 11세가 제정한 것으로서,
당시에 만연된 세속주의, 무신론적인 현상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가 온 우주의 질서를 지배하는 구세주이심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1. 세상의 왕들
우리는 예수께 대해 왕이라는 찬양을 드린다.
왕은 자기 왕국 내에서 모든 능력과 권세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기에 왕에 대한 이미지는 왕이 그의 막강한 권한 행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왕이 자기 백성들을 잘 지도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들어 주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선정을 베푼다면,
사람들은 그를 성왕, 인군, 현군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왕이 국민의 바람을 외면하고 자기 왕가만의 이익을 생각하고 국민을 착취한다면,
그 왕은 왕이지만 폭군이라고 불릴 것이다.
역사상 각 민족들은 씨족, 부족, 종족의 형태에 따라,
각각 그들 나름대로의 왕들을 모셔 왔다.
그들 중에는 폭군이라고 불렸던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
혹은 성왕들이라고 불렸던 중국의 요, 순, 우, 탕, 무왕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요즈음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도 왕이 있는 국가들이 많은데,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하는 영국에도 왕이 있고,
벨기에, 포르투갈, 태국 등에도 왕들이 있다.
중국에는 천자라는 명칭으로, 일본에는 천황,
그리고 우리 나라에도 금세기 초까지 왕 제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체제 속에서도,
왕이 존재하기도 하고, 왕 없이 다른 제도로서 다수의 행복을 도모할 수도 있다.
2. 그리스도 신자들의 왕
그런데 우리는 천주교 신자이면서 또 다른 한 분을 왕으로 모시고 있다.
그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왕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그분은 왕이셨으면서도,
세상의 보통 왕들과는 다르게 가난하게 사셨고,
물질적인 부자가 되기를 거부하셨고,
철저히 남의 행복을 위해 사신 분으로 믿는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신 분으로 믿는다.
이러한 '속죄의 어린양'이라는 이미지와 '왕'으로서 갖는 이미지 둘 다 그리스도께 적용된다.
우리가 호칭하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 말의 '메시아'라는 말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구약 성서에서 '메시아'라는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왕'이라는 말은 동일한 뜻을 갖고 있는
서로 다른 두 언어의 반복이다.
구약 성서에서, '기름 발린 왕'은 하느님께 선택되어
자기 백성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지혜와 슬기와 용기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 지상에 실현시키는 주요한 임무를 갖고 있었다.
구약에 예언된 종말론적인 예언자를 생각해 본다면,
이 메시아는 우선 "야훼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는 충실한 종이다"(이사 42, 1; 49, 3).
그는 선택받는 뜻으로 머리에 기름을 발리고,
야훼의 영을 받고, 참된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만국의 빛이 된다.
이사야서 61장에는 이 메시아 활동이 요약되어 나타난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라.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라"(이사 61, 1-3).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은
이러한 구약의 이상적인 메시아 활동이
바로 예수의 인격과 업적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수께 적용된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신약 성서에 500여 번 나오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주님이라는 칭호는 350번, 인자라는 칭호는 80번,
하느님의 아들은 75번, 다윗의 후손은 20번,
그러므로 이중에서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은
예수 자신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 점에 관한 예수님의 태도를 마르코 복음에서 살펴보면,
예수님은 악마가 자신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아도 말 못하게 금지하셨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후에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모시려 했을 때,
산으로 몸을 숨기셨다.
그리고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드러내시긴 했어도
그것을 선포하기를 금하셨다.
3. 하느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 왕
그러면 예수께서 언제부터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드러났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죽음을 앞둔 수난 때부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이었다.
초대 신자들은 이 신앙, 즉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하느님의 업적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은 예수가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는
'야훼의 순명하는 종'으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은 것으로 본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에서,
바로 이 점을 요약하여 전해 준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필립 2, 1. 5-11).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앞으로 올 새 시대의 메시아(왕)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의 나라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며,
앞으로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왕국의 왕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을 믿는 우리는 영원한 왕국의 시민으로 초대받은 것이며,
정의와 공정 그리고 인자한 덕으로 다스리시는
그분의 통치하에서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관이다.
그리스도를 왕으로서 모시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뜻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주님께서 베풀어 주실 영원한 평화를 고대하며
이 현세를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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