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은혜에 보답하는 삶

윤 베드로 2015. 4. 13. 17:42

●은혜에 보답하는 삶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 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루가 17, 11-16).

 

루가 복음에는 예수께서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고쳐 주시는 대목이 나온다.

나병 환자들은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가 17, 13) 하고 간청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측은히 여겨 고쳐 주실 마음을 가지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루가 17, 14)고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도중에 그들의 몸은 벌써 깨끗이 나았다.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작용이 있어서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에 신뢰를 갖고 따르는 과정에서 낫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몸이 깨끗해진 열 명 중에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고,

           다른 아홉 명의 유다인들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섭섭한 마음이 들어,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루가 17, 17)라고 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감사를 드리러 온 사람이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음에 의아해 하시고 더욱 놀라셨다.

유다인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으로서

              하느님께로부터 무수한 은혜를 받은 민족이었으며

              선민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민이자 하느님의 백성이었지만,

           인간의 일반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참으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나병 환자들이 입은 은혜는 어떤 것인가?

그들의 처지는 온몸이 흉측하게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는 상태였으며,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릴 수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처지였을 것이다.

이러한 처지에 있던 그들이 깨끗한 상태가 되어 진물과 고름이 멈추고

          문드러졌던 몸이 정상적으로 되고 이제 사랑하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면

          그들이 받은 은혜는 얼마나 큰 것인가?

그런데 그 받은 은혜에 대해 그리고 그 흉측한 병을 고쳐 주신 예수께

           감사의 말 한마디 안했다는 것은 얼마나 배은 망덕한 태도인가?

더구나 하느님을 믿고 그 백성이라는 유다인들이 그랬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오히려 감사의 표현을 한 사람은 유다인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예수님은 예리고의 길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을 구해 준 사람도

              유다인 사제나 레위 사람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다(루가 10, 25-37).

예수님은 마음속에서 이런 유다인들의 우월적이며 배타적인 선민 의식,

             종교적 형식주의, 애정과 사랑이 없는 율법주의의 병을 고쳐 주시고자 하였다.

 

루가 복음의 이 말씀을 우리 시대에 적용해 보자.

우리는 세례를 받고서 하느님의 자녀 신분으로 선택을 받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러한 신분에 있다고 해서 인간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해야 할 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인들의 선민 의식, 종교적 형식주의

          그리고 애정과 사랑이 결핍된 율법주의적 태도가 몸에 많이 배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여

         타종교인들의 종교심을 멸시하거나 비웃는 태도,

         그리고 성당에 나가 미사를 봉헌하고 헌금을 하니까

         특별히 다른 곳에 헌금을 하거나 봉사 활동 혹은 선행을 안해도 괜찮다는 생각,

         그리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마치 구원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티켓을 갖고 있는 듯이 우월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신자로서 일반 비신자보다 못한 편협함, 외골수,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정성이 없는 태도,

        인간적인 예의 범절이 없는 행동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복음에서처럼 치유받고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은 배은 망덕한 아홉 사람의 나병 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착하고 예의 바른 사마리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아직 세례받지 않고 주님을 모르지만, 그리스도 신자보다도

       더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은혜받은 삶에 보답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신자를 만날 때보다도 어떤 착한 비신자 안에서

          보다 깊은 내면의 인간성을 만나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수께서 이방인이었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을 칭찬하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보다 더 그리스도인다운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 이렇게 좋은 가르침으로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더욱더 주님을 믿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모르고 세례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좋은 일을 하여 예수께 칭찬을 받았다.

하물며 주님을 믿고 따르며 세례받은 우리가 좋은 일을 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기쁘게 한다면 예수께 얼마나 흡족한 기쁨이 되겠는가?

끝으로 우리는 은혜받은 자답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이웃에게 예의를 갖추고 사랑을 실천하여

           우리 주위를 사랑 가득한 보다 나은 세계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성실한 생활을 하도록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