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복음 (요한 3,16-21) 묵상 ◐
심판이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16절)
시작도 끝도 없이 불사하시고 무한하신 지존께서 아무것도 아닌 이들을
사랑하셨다.
이들은 죄를 지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줄곧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
는데 그들을 사랑하셨다.
이들을 위해 그분은 다름 아닌 당신의 ‘외아들’을 내 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으며 귀중한 피를 흘리셨다.
그분이 헐벗고 나그네 되었을 때도 우리는 못 본체 했고, 무엇 하나 포기
하려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드님을
보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 오심은 이미 지났고 지금 계속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이 첫 번째 오심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두 번째 오심은 심판하기 위해
서이다.
그분은 두 번째 오시기 전까지는 심판하시는 대신에 용서를 베푸시며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로마 3,23)기 때문이다.
하느님의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절)
이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 받을 필요가 없고, 믿지 않는 자들은 불신
그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판은 이미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판받을사람들은 하느님께 충실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즉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유혹에 이끌려 잘못을 저지르고, 기도를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이러하다.
그들은 어둠을 떠나 빛으로 달려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빛이 자신에게 오는데도 빛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어둠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장님이 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자신이 눈이
먼 것을 빛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구원이나 멸망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다.
그들이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20절)
사람들은 진리가 자신들을 비출 때에는 사랑하지만 진리가 자신을 꾸짖을
때는 진리를 미워한다.
그들은 사기를 당하기는 싫어하지만 속이는 기술을 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악행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빛을 미워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언제나 악행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는 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나약한 자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악행에 빠진 채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21절)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선행이다.
선은 어둠을 사랑하지 않는다. 선은 드러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기뻐한다.
이제 우리는 빛으로 나아와서 우리가 하는 일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빛으로 나아온 것이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단식하고 베풂으로써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올바른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살아가야 하겠다.
여기서 올바른 믿음이 자라게 되고 그분의 은총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감사드리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구하자.
-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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