族譜는 본래 그 씨족의 계보로서 아버지의 계통, 즉 父系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체계적으로 나타낸 도면과 글이 적힌 책을 말한다.
동양에서 족보는 일찍이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제왕연표가 족보의 시작이다.
우리나라 족보도 고려 때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유력한 씨족만이 지녔던 족보가 더욱 일반화된 것은 조선시대 선조 이후
당쟁과 문벌간의 대결이 가열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족보는 본래 혈통을 존중하고 동족간 유대를 돈독히하자는 데에 뜻이 있었다.
그래서 족보는 기본적으로 그 종족의 역사를 나타내며 혈통을 입증한다.
따라서 족보는 후손으로 하여금 자기 근본을 알게 하고 조상을 숭배하고
종족간 우애와 화목을 통한 단결심을 고양하는 역할을 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족보 한권을 딸의 혼수품목에 올려 보내는 것이
가문이 있는 집안의 풍습이었다.
유다인들에게도 족보가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세밀하고 복잡하지는 않지만
유다인들 역시 가죽 두루마리로 만든 족보를
'탄생의 책'이라고 부르면서 무척 중시했다(창세기 5장).
족보는 자기 조상이 누구인지 확인해주는 역할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혈통 보존에 그 목적이 있었다.
특히 족보 주인이 특권층 출신일 경우에는 더욱 중요했다.
권력다툼이 있더라도 족보의 기록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서 위계와 질서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유다인들도 자신들의 족보에 대해서 무척 민감했다.
족보를 무엇보다 필요로 했던 집안은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중심이 된 사제가문이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구별하는 데는 학벌이나
어떤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는 엄격한 규정이 따로 없었다.
단지 그가 제사장이나 레위인가문 출신이라는 것이 입증되어야 했다.
혈연을 통한 이런 직위의 세습 과정 때문에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만일 자신이 합법적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에는
당사자와 그 후손들까지 사제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할 수도 있었다.
혈통을 중요시하는 풍조는 제사장 후보자 심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가문 전체를 도식처럼 그려나가는 우리 족보와는 달리 성경에 기록된
족보들을 보면 대체로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보통 직선적 족보 형태로 각 세대별로 한명씩, 즉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만 기록했다.
이런 족보의 목적은 맨 마지막에 거론되는 사람이 적자로서
권리를 상속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편적 족보에도 적어도 한 세대나 그 다음 세대의 자식들 이름이 여럿 기록되었다.
이 족보는 주로 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자식과 손자들의 이름을 각각 기록했다.
이것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족보였다.
남성 중심과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유다인들 역시 철저하게 부계 중심적 생각들을 지니고 있었다.
여자쪽의 혈통은 결혼식 때만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후손들에게 대대로 계승되기를 바라는 제사장 가문에서는
무엇보다 순수한 혈통의 신부를 원했다.
따라서 결혼 전에 여자의 가문을 족보를 통해서 일일이 확인했다고 한다.
제사장 가문에서는 처녀의 이름은 물론 그녀의 부계 조상들의 이름과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인들의 진술까지 요구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약성서 마태오복음(1장)과 루가복음(3장)의 예수님 족보는
기존 족보와 기록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마태오는 기존 상식에서 벗어나 여자들의 이름들을 예수님 족보에 포함시켰다.
마태오는 여인들의 이름을 예수님 족보에 기록하여 메시아가 태어나는
다윗의 가계가 끊기려는 순간마다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 자체가 유다인들의 일반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태오복음의 족보는 이미 하느님 섭리는 남녀를 초월해서
모든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처럼 신약성서의 예수님 족보에는 하느님의 구원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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