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바울로서간 공부

율법이냐? 믿음이냐? (3,1-4,7)

윤 베드로 2014. 5. 17. 17:03

3. 편지의 핵심 부분 ; 신앙과 율법(3,1-5,12)

 

1). 율법이냐? 믿음이냐?, 율법과 목적 (3,1-4,7)

 

*편지의 핵심 부분인 이 단락은(3,1-5,12) :

             먼저 갈라디아 신도들이 처음 신도가 되었을 때를 회상시켜,

             그들이 체험한 것을 근거로

           바울로의 복음, 즉 믿음을 통한 자유와

           율법에 의한 속박을 증명한다.

 

⇒이 증명은 : 유대 신도들이 신앙의 근거로 삼은

                      모세 오경에서 두 가지 예를 들어 전개되는데,

                      모두 신앙에 의한 義化를 제시한다.

 

①(3,1-5)은 : 서론 ; 성령의 선물의 원천

서론에서 : 바울로는 갈라디아인들의 경험에 호소하면서 시작한다.

                 그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데,

               왜 벌써 잊어버리고 어리석게도 다시 肉的인 것으로

                               되돌아가느냐고 질문한다.

                   이 항목의 주제인 믿음과 율법이 제시되고 있다.

 

②(3,6-4,7)은 : 구원 역사상의 신앙과 율법의 역할,

믿음에 의한 義化를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아브라함의 例를 들어 설명해 주는데 :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에 義化되었고,

                               하느님께 축복 받았다.

          ․아브라함에게 내린 축복은 그의 후손인

                                   그리스도에게 내려진 것이고,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됨으로써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누린다.

 

그런데 율법은 :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 아니고

                  중재자(모세)의 손을 거쳐 주어졌다.

         ․이 율법은 하느님께서 약속된 후손이 올 때까지

              하느님께 불순종하지 않도록

                 죄가 무엇인지 밝혀주어 죄를 짓지 않도록,

                 또 죄짓는 자는 저주와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덧붙여 주신 것이다.

          ․율법은 마치 주인의 자녀를 학교로 인도하는 노예처럼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돌보고 준비하는

                      교육적 역할 밖에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신 뒤에는 이런 후견인이 필요 없다.

                          우리 신도는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의로와 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 스스로 율법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율법 아래 있던 우리를 해방시키시어

                  성령을 통하여 θ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누리게 해 주셨다.

 

⇒다시 살펴보면,

*갈라 3-4장에서는 : 위의 명제를 논증하고 있다.

        즉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은 율법을 준수함으로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온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

            계속 논거를 제시한다.

 

*이 논거를 보면,

먼저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활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에서 유도한다.

            즉,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삶에로 개종할 때

                  이미 성령의 선물들을 체험했었다.

            이 은사들은 율법을 실천함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온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어리석게 넘어간 그들에게 충고하고 있다(3,1-5).

 

②그리고 이어서 3,6-18에서는 :

    바울로는 자신이 한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 성서를 펴들고

                  하느님을 신뢰했던 유다인 모두 자기네 백성의 조상이요

                  신앙의 최고 표본인 아브라함을 들고 있다.

   (※이런 구약성서 인용방법은 :

      초 세기 유다교 랍비들이 사용했던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들은 성서본문의 전후 문맥이나 역사적 맥락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목적에 따라 본문을 뽑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있지도 않았던 율법인데

          그 율법에 충실했기에 θ이 그 충실성에 대한

                          보답을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었고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이렇게 하느님께 가는 길이 율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믿음이라면 율법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주어진 것인가?

    만일 율법이 하느님의 작품이라면

            어떻게 인간이 감히 그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폐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바울로는 :

           여느 때와 같은 방식으로 성서구절을 인용하면서

         '율법이 하느님의 뜻을 표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시적인 수단으로서 의도된 것'이었다고 한다.

 

   율법의 큰 기능은 죄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 그 자체로서는 죽은 것이며,

                          생명을 부여하지 못한다.

               다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미리 가르쳐 준다고 한다.

 

③3,23이하에서도 역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지 우리의 후견인 구실을 했고,

              그리스도가 오신 뒤에는 우리가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기에,

               이제 더 이상 후견인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한다.

 

④3,27에 그 유명한 말씀,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고 한다.

 

⑤이어 4장에서는 :

           종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즉 모세 율법의 법규에 지배받는 믿음이 아닌

            집안의 모든 특권을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자 답게 살기 바라고 있다.

            율법에 매인 채로 있는 한은 그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