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카톨릭 서간 공부

야고보서 2장 공부 : 믿음과 실천

윤 베드로 2017. 8. 5. 19:21

차별 대우(2,1-13)

 

<2,1-13 ; 차별 대우에 대한 비난> :

․2-4절에서는 :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문제를 비교적 자세히 다룬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서는 : 지위나 부에 따라 어떤 차별을 두거나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2-4절).

신앙인에게는 : 그리스도가 유일한 판단기준이며 그분의 영광이 유일한 영광이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이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는 점을 자주 강조한다.

2-4절에서 필자는 대인논법을 사용하여 훈계한다.

 

4절, 그리스도인이 부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

편견과 차별대우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으로 재판을 하는 재판관과 같다.

 

․5-7절에서는 :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두어 그들을 선택하신다.

⇒야고보는 : 가난한 이를 경멸하고 부자를 두둔하는 처사의 그릇됨을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지적한다.

①가난한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로 택한 사람들이고(5절),

②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것이다(6-7절).

 

5절, 예수님이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은 :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완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연 사람들이다(루가 6,20).

하느님은 어떤 경우든 그들이 억압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9절).

 

․8-12절에서 야고보는 : 하느님의 계명이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느님의 계명대로 사랑해야 할 이웃은 무엇보다 먼저 가난한 사람이다.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사람은 계명 전체를 범하는 것이다(8-11절).

그렇지만 마지막 심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게 되면

계명 전체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12절).

마지막 심판 때 적용될 법은 : 자유의 법이다.

예수께서 가르쳤던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의 자비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의 죄를 용서한다(12-13 ; 마태 6,12. 14-15 참조).

 

⇒여기 法이란? : 이웃사랑의 계명뿐 아니라 모세의 율법(윤리법)에 기초를 둔

그리스도교의 윤리법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로와 달리 야고보는 : 율법을 높이 평가하여

그것을 법 중의 왕자다운 법이라고 강조하며,

지키는 사람에게는 참다운 자유를 준다고 한다(1,25 ; 2,12).

야고보의 인용문 중에는 : 儀式法이 없고 윤리적 계명만이 나온다.

즉 형식주의를 배척하고 예수의 율법해석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법의 중심은 사랑의 계명이다(8절 ; 1,26-27).

 

믿음과 실천(2,14-26)

 

신앙의 실천이 야고보의 가장 큰 관심사다.

야고보는 이미 신앙(1,3. 6 ; 2,1)과 실천(1,22-25)에 관해 언급했다.

이제 14-26절에서는 신앙과 실천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바울로는 : 인간이 신앙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는데(로마 3,28 ; 갈라2,16),

야고보는 : 행함이 없는 신앙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14,27. 26).

⇒그렇지만 야고보가 강조하는 행동은

바울로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비판한 “율법의 行業”이 아니라,

바울로가 신앙과 성령의 열매라고 한 德行이다.

 

․야고보는 : 행동으로 구현되고 입증되는 신앙을 요구한다.

그 행동은 특히 이웃 사랑과 기도다.

이와같이 행동을 강조하는 것은 마태오복음에 반영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입장과 비슷하다.

 

․바울로는 : 율법의 행업으로 구원된다는 보수적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구원론을 반대하여 신앙으로 구원된다는 설을 강력히 내세웠다.

그 결과 그는 신앙과 행동을 엄격히 구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야고보가 직면한 현실은 아주 달랐다.

그는 바울로의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왜곡하여

행동의 가치를 무시한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해

신앙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하게 되었다. <200주년 주해서, 분도>

 

․15-16절은 : 훈계가 아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실감나게 설명하는 비유이고,

21-25절까지는 : 자기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창녀 라합을 본보기로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