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여호수아기공부

요르단 강 가에 제단을 쌓다(22,10-34)

윤 베드로 2017. 1. 14. 09:02

Ⅲ-2. 요르단 강 가에 제단을 쌓다(22,10-34)

 

10- 20절까지는 요르단 동편 땅으로 귀환하던 두 지파 반이

요르단 강가에 세운 큰 제단으로 말미암아 아홉 지파 반과 분쟁하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1-12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소식을 듣고 그들과 싸우기 위하여 실로에 모였다.

두 지파 반이 요르단 동편으로 가다가 요르단 강가에 제단을 쌓은 것은

사실 하느님을 잘 섬기고, 요르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과의 단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21:21).

그런데도 요르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은 두 지파 반이 율법을 어기고

자신들과의 단일성을 깨뜨리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이와같이 요르단 서편의 지파들이 분노하면서 싸움까지 하려고 한 것은

하느님의 제단은 오직 한 곳에 설치해 두어야 한다는 신명 12:4-14절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아홉 지파 반으로서는 두 지파 반의 행위를 신성모독적인

행위로 판단하고 의분(義憤)을 가졌던 것이다.

사실 두 지파 반이 제단을 세운 것은 의도는 좋았지만 좀 경솔한 행위였다.

 

13-14절, 요르단 강가에 세워진 제단의 우상 여부를 가리는 의혹 사건

조사단의 대표로 비느하스와 각 지파에서 뽑힌 10명의 수장과 함께 두 지파 반에게 갔다.

 

15-20절, 그들이 길르앗 땅의 두 지파 반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배신하여, 오늘 이처럼

주님을 따르지 않고 돌아서서 제단을 쌓아 주님께 거역하다니,

어찌 이런 배신을 할 수 있단 말이오? ...” 하면서,

브올에서 지은 죄와 아칸이 지은 죄를 例로 들어 항의하였다.

즉, 이 대표들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하여 두 지파 반을 만나 의문점에 대한 충고와 경고를 한다.

①제단을 쌓아 하느님을 거역하고자 하느냐?(16절)

②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19절).

 

⇒'브올에서 지은 죄'란 : 하느님께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악한 꾀를 내어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음란한 우상숭배 죄에 빠지게 한 범죄 사건을 말한다.(민수 25:3 ; 31:16).

 

21절, 이에 대하여 두 지파 반은 논리정연하고 차분하게 조사위원들에게 답변한다. .

그들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아홉 지파 반의 충고 및 경고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입장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2절에는 하느님을 일컫는 세 다른 명칭 곧 '엘'(전능하신 자),

'엘로힘'(하느님), '야훼'가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세 가지 神 명칭을 결합시키고,

또한 그것을 두 번씩이나 반복한 것은 아홉 지파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 지파 반이 결코 하느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려고,

제단을 쌓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자신들이 지금 하느님을 증인으로 채택한 만큼,

만일 추호의 거짓말이라도 있다면

자신들은 하느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길 없다는 뜻이다.

 

23절은, 실로에 안치된 주님의 제단을 무시하고 또 다른 제사용 제단을

쌓아 그곳에서 자신들끼리 제사를 드리려고 계획했다면,

질투의 주님께서 진노하여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뜻이다.

 

24-27절에서,

그것은 곧 아홉 지파 반의 후손들이 후일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너희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 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한 염려의 근거는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가 정해질 때

요르단 강을 중심으로 서편 경계만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25절 ; 민 34:10-12).

따라서 물론 당대에야 그런 일이 없겠지만,

후일 자손들의 代에 가서는 그러한 염려가 현실화되어,

동편의 사람들이 서편에 있는 주님의 성막에 가서

제사드리는 것을 서편에서 금지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따라서 두 지파 반은 그러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코자 증거의 제단을 쌓았다는 것이다.

즉, ①하느님 신앙의 보존, ②지파 간의 연대 의식, ③올바른 자녀 교육 등이다.

 

30-31절,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 오해가 있었지만

그들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 신뢰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대화는 이해를 넘어 사랑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

요르단 東, 西偏 사이의 갈등이 만족스럽게 해소된 것을 주님의 도우심 덕분으로 돌리는 말.

“주님의 손”은 : 주님의 심판을 말한다.

 

32-34절, 요르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은 진상 조사단을 통해

동편의 두 지파 반이 요르단 강가에 제단을 세운 이유를 듣게 되었다.

아홉 지파 반은 그 보고를 듣고 매우 만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