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성경 일반 자료 540

숫자 “1”의 상징-

숫자 “1”의 상징- 그리스도는 한분, 성령 믿음도 하나 일반적으로 전체성을 의미하는 숫자 “1”은 태양이나 빛, 생명과 자연의 기원을 나타낸다. “1”은 창조와 시작을 뜻하는 유일한 수로 권위와 리더십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구 전통에서 1은 그 자체로서 남성적이고 공격적이며 능동적 의미를 갖는다. 피타고라스학파에게 1은 점, 모든 계산의 공통적 기초였다. 따라서 숫자 “1”은 시초와 자아, 고독의 상징이다. 이집트에서 1은 위대한 태양신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일신교에서 신을 나타내는 숫자인 1은 원초적 통일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인들은 1이란 수를 불행의 수로 여겼다. 성경에서 '하나'라는 수는 특히 한 분이신 하느님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성경을 읽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 성경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 여러 가지 가운데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즉, Ɵ 말씀, Is이 체험한 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①성경에는 : 하느님 말씀이 기록. ․성경은 θ의 말씀 그 자체이다. ․이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씀이 바로 계약의 말씀이다. 성경 안에서 θ의 모든 말씀은 두 가지 계약, 곧 舊約과 新約으로 귀결된다. ②성경은 : 이스라엘 민족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하여 기록.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성경은 Is 민족이 만난 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θ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택하셨고, 이집트와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어떻게 구원해 내셨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Is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 예수 ..

그리스도 교회의 분열(계통도)

그리스도 교회의 분열(계통도) ↓ 분열(1054년) : ①로마 총대주교좌의 首位權 논쟁 ②필리오케(Filioque : ‘또한 성자로부터’) :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나왔느냐” 아니면 “성자에게로부터 나왔느냐”는 논쟁. ↓ 서방 교회(Roman Catholic) 동방교회 (정교회) ↓ 종교개혁 (1517년) 카톨릭 (그리스 도교의 宗家) 루터교(1530년) ①구원은 “오직 신앙만으로”, ② “오직 성경만” 권위를 가짐, ③신앙적․ 정신적 측면 강조. 장로교(1542년) ①성경만을 신앙 규범으로 삼음, ②절대 예정설, 적극적 실천 성공회(1534년) ①정치적 문제 (헨리 8세의 재혼 문제), ②전례제도 : 카톨릭적, ③성경 : 개신교적. ↓감리교(1729년) ①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 ②개인적 회개와 경건강..

예수시대의 무덤

1. 매장과 무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고 갔다?(마태 27,58-60). 동산에 있던 이곳은(요한 19,41)?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 으로,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루가 24,3). ⇒이 짧은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다 땅의 매장 방식이나 무덤 모양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2. 死後의 삶 *예수께서 돌아가신 뒷날은 장사지내는 일이 금지된 안식일이면서 과월절. 그래서 저녁때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날로 묻히셨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죽은 이를 당일에 묻는 것이 일반적 관습. 더운 지방이어서 시신이 빨리 부패하고 또 주검과 접촉하..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

1. 주님이란 단어 '주' 또는 '주님'이란 단어는 구약에 7,245 곳에 등장하고, 신약에는 916번 등장한다. 신약에서의 주님은 구약처럼 하느님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마태 11,25 ),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마태8,2 등). 구약에서 하느님을 뜻하는 칭호는 '야훼' '아도나이'등이 있지만 대부분 主 하느님 또는 주님으로 호칭된다. '주님'이라면 무조건 하느님을 뜻한다. 異說이 있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3년간 공생활을 하실 적엔 아직 그리스도 교회가 탄생하기 전이었고, 당시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은 구약성경을 읽었다. 이 사람들 사고방식으로 주님=하느님 이었으므로, 예수님께 주님 이라고 했을 때는 이미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었다는 증거이다. 2. 예수님을 하느님 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Jn 15장) 1. 포도나무 : 평화와 축복의 상징 *포도는 :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식물이다. 포도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포도가 당시 사람들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 ⇒팔레스티나 지역의 여름은 고온 건조하고 비가 적게 내려 포도를 재배하기에 알맞다. 그래서 포도는 이 지역 가장 중요한 생산물의 하나였으며, 이곳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있었다(민수 13 참조). *포도와 올리브와 밀은 : 가나안의 삼대 농산물(신명11,14). 이렇게 가나안 땅에서는 Is 사람들이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였고, 성서에 보면, 노아가 처음으로 포도를 심고 포도주를 빚는다(창세 9,20-21). *성경에는 ..

산헤드린(최고의회)

산헤드린(최고의회) *산헤드린(최고의회)은 : 종교와 관습에 관한 사항들을 결정하는 유다의 최고 의결기구. *산헤드린은 : 예루살렘 성전에서 열렸고, 구성은 : 대사제, 원로들, 율법학자들, ⇒정원은 71명. 의장은 : 대사제이고, 대사제가 소집할 때마다 수시로 열려 그가 중대 사안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었다. 여기 “대사제들”은 : 현직․전직 대사제와 중견 사제들이고, “율법학자들”은 : 구약성서와 조상들의 전통을 전공한 이들로서 주로 바리사이파에 속했으며, “원로들”은 : 지방유지들. *헤로데 대왕 시절 산헤드린 :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한때 산헤드린에서 수모를 당하여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면서 약화시켰기 때문. *로마 통치 때 산헤드린 : 유다종교와 관습에 대해..

성서시대의 도로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 로마제국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고, 실제로 대 제국을 이룩했던 로마는 도로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도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정치, 경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유럽 곳곳에는 아직도 로마 도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2. 이집트와 바빌론 사이에 있던 이스라엘에는 : 오래 전부터 중요한 국제 도로가 형성되어 발달했다. 지리적 여건상 좋은 항구가 없었고 해상 활동에 익숙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이웃 국가들과 교류를 도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3. 이스라엘의 도로 형성은 몇 가지 지리적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 ①첫 번째는 식수의 공급 : 대부분의 도로는 샘과 우물이 있는 지역을 따라서 형성. ②두 번째는 도로 형성에 유리한 부드..

사마리아인의 법

☆사마리아인의 법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또는 ‘사마리아인의 법’이란? : ①타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거나 본 경우, ②자신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때 ③타인의 위험을 제거해 줄 의무가 있다는 법이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 우리나라 법규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미국 각 주와 프랑스, 러시아, 폴란드, 일본 등이 유사한 법률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형법은,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 징역, 혹은 360프랑 이상 1만5000프랑 이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63조 2항). *이렇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 ①위험에 처한 이를 도와주는 것이 단순히 윤리적 문제가..

이방인의 땅 사마리아

1. 성서에 보면(요한 4장,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 이스라엘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접촉은 물론 대화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 그래서 유다인들은 남쪽 유다에서 북쪽 갈릴래아로 갈 때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두배나 되는 먼길을 돌아다녔다. 2.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왜 그토록 원수지간일까? 이방인 지역이라 지칭하는 사마리아지역도 : 본래는 유다땅 지금의 Is 전체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상도 정도의 땅. 통일 왕국이었던 Is이 솔로몬왕 시대 이후 南北王國으로 분열. 그때 사마리아는 북Is의 수도였고 가장 번영한 것은 기원전 8세기경. 북Is이 앗시리아에 점령(B.C 722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