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열왕기 공부

열왕기하 23장 공부 : 요시야의 종교 개혁

윤 베드로 2017. 8. 30. 21:49


요시야가 계약 책을 봉독하고 계약을 맺다(23,1-3) 


요시아 시대의 개혁은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 일어난 일이다.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지만 듣고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여기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므로

하느님께서 그 말씀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듣는 것을 의미한다.

요시야는 성전 수리 중 발견된 율법 책을 통하여 자기 시대의 문제는

바로 이 말씀에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율법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권고했고

이로 인하여 유다는 영적으로 새롭게 될 수 있었다.

특별히 요시야는 성전 수리 중에 발견한 율법책을 통하여

조상과 자신의 시대가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 있음을 알고

옷을 찢었고, 또한 예언자에게 어떻게 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지 물은 후 모든 사람을 성전에 모이도록 하고

이 율법 책을 그들에게 읽어 주었다.

그리고 왕이 직접 백성들 앞에 나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님께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규정을 지키도록 권고했고,

백성들은 모두 왕의 권고대로 행할 것을 말했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23,4-20) 

 

요시야는 이처럼 백성들에게 말씀에 따라 살 것을 선포한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과 온 유다에 있는 우상들과 그 제단과

그것들을 숭배할 때 사용하던 모든 기구들을 제거했다.

왕은 이 일을 위하여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를 중심으로

 제사장들과 문지키는 자들(레위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일을 하게 했다.

요시야는 율법 책을 읽은 후 그것들이 성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들을 성전에서 제거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선왕들이 예루살렘과 유다 각 곳에 우상 숭배를 위해 세운 제사장들을 내쫓았다(23:5).

그는 또한 주님의 성전 가운데 세운 “남창의 집”을 헐었다(23:6).

남색은 이방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집은 므낫세가 지었을 것이다.

또한 유다 각 곳에 세운 산당들을 더럽게 하고(23:9),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였다(23:10).

여기 “더럽게 했다”는 것은 그곳의 신성성을 파괴했다는 의미다.

우상의 제단이 있는 곳이나 또는 유대인들의 산당은 모두 거룩한 곳

즉 신성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곳들을 더럽혔다는 것은 더 이상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인정할 이유를 없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시야는 계속하여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없애 버렸고(23:11),

아하스의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주님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헐어버렸고(23:12),

예루살렘 앞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다(23:13).

요시야는 유다 각 곳에 있는 우상들과 산당을 헐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각 곳에 있는 우상들과 산당들도 헐었다.

특별히 그는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헐었고,

사마리아 모든 지역에 세운 우상과 제단도 헐었다.

그리고 산당의 제사장들을 제단위에서 죽었다(23:19-20).

이처럼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땅을 정화했다.


요시야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다(23,21-23) 

 

요시야는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정화 한 후 과월절 축제를 회복했다.

그는 과월절을 지키되 계약 책에 기록된 대로 지켰고

또한 판관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열왕의 시대까지

이렇게 과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

하느님은 출애굽 시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長子들이 구원 받은 날을 기념하여

이스라엘에게 영원히 과월절을 지킬 것을 명하시고

과월절이 있는 그 달을 그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과월절이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해 준다.

과월절이 이토록 중요했던 것은 과월절은 구속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일생동안 간직해야 할 신앙의 고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월절에는 하느님의 능하심과 자기 백성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고 

       노예됨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 것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있다.


요시야의 나머지 개혁(23,24-27) 

 

요시야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지도력과 권위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인도했다.

요시야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 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침으로

그들의 신앙을 바르게 지도했다.

이것은 요시야가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백성들의 신앙을 개혁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둘째, 요시야는 백성들 가운데 우상들과 산당 그리고 우상숭배로 인하여

생겨난 문화 등을 제거해 줌으로 백성들의 신앙을 바르게 지도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바른 신앙은 영적 환경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만일 요시야가 유대인들 가운데 우상들과 그것들로 인하여 형성 된

문화적 요소들을 남겨 두었다면

백성들은 또 다시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요시야는 율법이 명한대로 축제들을 회복했다.

요시야가 처음 지켰던 축제는 과월절이었다.

이것은 반신앙적인 문화를 제거했다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신앙적인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제거하는 일만 하고 그것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바른 신앙의 정착은 어려울 것이다.

요시야는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을 가지고

이처럼 전심으로 하느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유다의 왕들 가운데 그의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율법에 대하여 열심인 자”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었다.


요시야가 죽다(23,28-30) 

 

애굽왕 파라오 느고가 아시리아를 치고자 유다에 속한 땅을 지나(므깃도)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갈 때,

요시야는 그를 저지하기 위하여 므깃도로 나갔다.

파라오는 요시야와 싸우기를 원치 않았지만(역대하3520-26),

요시야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결국 적병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당하였다.

그는 신하들에 의하여 급히 예루살렘으로 후송 되었으나 결국은 죽었다.

요시야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유다의 왕이 되었다. 

 

여호아하즈의 유다 통치(23,31-34) 

 

여호아하스는 유다의 왕이 되어 불과 석 달 동안 통치하였으므로,

왕으로서 행한 그의 업적을 평가할 수도 없다.

애굽의 파라오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잡아 애굽으로 끌고 가고

그를 대신하여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엘리아김으로

그 아비 요시야를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삼았다.

그가 바로 여호야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