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요엘서 1장 : 주민들아, 모두 들어라

윤 베드로 2017. 7. 3. 06:59

주민들아, 모두 들어라(1,1-3)

 

*1장은 이스라엘에 갑자기 닥칠 메뚜기 떼의 비참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요엘은 이 재앙이 단순한 天災가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의 채찍임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1,1-3 :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원로들과 모든 주민들에게

“원로들아, 이것을 들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특별히 원로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들에게 하느님께서 행하실 심판의 어떠함을 증언 하도록

증인으로 세우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원로들은 그 시대 생존해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애 동안 경험한 것에 비추어 하느님께서 행하실

심판의 어떠함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예언자는 원로들을 포함하여 모든 주민들에게 이렇게 물은 것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1:2)”

 

메뚜기 재앙(1,4-9)

 

다음은 그들에게 내릴 심판에 대한 말씀이다.

“풀무치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 먹어 버렸다.”

여기 메뚜기와 관련된 네 개의 이름은 메뚜기 재앙에 대한 황폐 정도를

메뚜기의 서로 다른 네 가지 이름을 들어 시적 표현

또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한 것으로 본다.

예언자는 네 가지 이름을 통하여 두려운 하느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다.

즉 메뚜기들이 지나갔을 때 그곳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을 때 이스라엘은 황폐함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은 심판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무감각하여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술 취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영적으로 무감각한 자들도 술 취한 자들과 같이 事理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깨어 울어라”고 말씀하심으로

영적으로 각성하기를 촉구하셨다.

지금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심판이 어떤 것인지 안다면

그들은 결코 그 심판에 대하여 지금처럼 무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메뚜기 떼로 묘사된 이방의 군대가 그들을 침략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5절에서 “너희는 깨어 울어라”고 한 말은

8절에서 “서럽게 울어라, 신랑을 잃고 자루옷을 두른 처녀처럼.” 라는 말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째서 이처럼 哀哭해야 하는지 말해 주고 있다.

그 날에 유다 가운데는 “주님의 집에서는 곡식 제물과 제주가 동이 나고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통곡한다.”(9절).

 

가뭄(1,10-12)

 

5절에서 “너희는 깨어 울어라”고 한 말은

8절에서 “서럽게 울어라, 신랑을 잃고 자루옷을 두른 처녀처럼”

라는 말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째서 이처럼 애곡해야 하는지 말해 주고 있다.

그 날에 유다 가운데는 곡식제물과 제주가 동이 나고

이로 인하여 제사장들이 슬퍼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 가운데 곡식제물과 祭酒가 동이 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이방 군대의 침략으로 하느님께 드릴 穀食祭物과 祭酒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날에 농부들도 부끄러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으로 인하여 그들은 소출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판의 날에는 유다 가운데 인간의 희락이 말라 버릴 것이다.

 

단식하고 기도하여라(1,13-15)와 가뭄(1,16-20)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특별히 제사장들에게 슬피 울라고 권고한 것은

앞으로 오게 될 유다의 재난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직무는 주님과 주님 백성들의 관계를 바르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자신에게 위임된 직무에 성실하다면

이스라엘 가운데 이처럼 불행한 심판이 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사장들은 직무에 성실하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은 부패하게 되고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심판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황폐함은 제물과 제주를 드릴 수 있는 곡물을

얻을 수 없게 했으므로 성전에서 제물과 제주가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제사장들은 궁핍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직무에 더욱 소홀하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은 더욱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제사장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자들이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에게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울라”고 권고하시며

또한 “금식일을 정하고 집회를 소집하여 원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느님의 성전으로 모으고

주님께 부르짖어라(1:14)”고 권고한 것이다.

 

15-18절은 심판으로 인하여 유다에게 내린 재난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졌고,

씨앗이 땅속에서 썩을 것이며 가축들이 꼴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진노하심 가운데 있을 때

우리뿐만 아니라 생존하는 모든 것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은혜 가운데 산다면 우리로 인하여 생존하는 모든 것들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님, 제가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광야의 풀은 불이 삼키고

들의 나무는 불꽃이 모조리 살라 버렸습니다.

들짐승들마저 당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물줄기들은 마르고 광야의 풀은 불이 삼켜 버렸습니다.(1:19-20)”

이 재난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기 때문에

예언자는 하느님께 탄원하고 있다.

그는 지금 유다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하느님께 고한다.

이것은 자신이 유다의 구원을 얼마나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지말해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이 재난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구원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안다면하느님만이 구원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하느님을 아는 자들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