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호세아서 7장 : 이스라엘이 외세에 의지하다가 벌을 받다

윤 베드로 2017. 6. 25. 06:48

배신과 정변(7,3-7)

 

“그들은 악행으로 임금을, 거짓말로 대신들을 기쁘게 한다(7:3).”

이 말은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말해 준다.

백성들은 불의를 행함으로 통치자들을 기쁘게 했고,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불의를 보고 기뻐했다.

이것은 서로(백성과 대신)의 탐욕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라면 不義도 허용했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공의가 세워진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다만 부패의 늪으로 침몰 될 뿐이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7:4)”라고

말씀 하셨고, 그들이 이방 신을 좇는 열정과 탐욕을 달궈진 화덕에 비유하셨다.

특별히 지도자들은 왕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열정이

달궈진 화덕과 같이 뜨거워져서 재판장들을 삼키며 왕들을 삼켰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북 왕국 역사를 보면 왕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하느님 앞에 합당하게 행한 자가 없었다.

그들은 탐욕에 사로 잡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를 죽였다.

이로 인하여 짧은 역사 가운데 왕조가 여러 번 바뀌었고

또한 신하들로부터 살해당한 왕도 여러 명 있다.

즉 탐욕으로 달궈진 열이 재판장과 왕들을 삼켰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외세에 의지하다가 벌을 받다(7,8-16)

 

또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뿐만 아니라

이방의 나라들처럼 되기 원하는 열정으로 그들을 불러들임으로

그들은 열방에 혼잡 되었다.

아합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고

또한 이세벨은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 숭배와 아세라 숭배를 위하여

이것들을 숭배하는 예언자들을 이방으로부터 들어왔다.

실제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싸울 때

그곳에는 바알 예언자 450인과 아세라 예언자 400인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이세벨이 이방 나라로부터 데려온 자들일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마치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이 쓸모없는 자들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능력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을 떠나 구원할 힘이 없는 이방을 의지했다(7:10-12).

하느님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하느님은 “교만”이라는 말로 표현하셨고

또한 “어리석은 비둘기”에 비유하셨다.

여기 교만이란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하느님을 의지할 수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에서 교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저희 자신을 거슬러 증언하지만

그들은 주 저희 하느님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그를 찾지 않는다.(7:10)”

그러므로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주님에 대하여 교만하게 행하는 자다.

 

또한 본문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어리석은 비둘기”로 비유했다.

비둘기는 독수리에게 쫓김으로 다급해 질 때 사냥꾼이 처 놓은 그물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는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둥지로부터 너무 멀리 날아가서

결국은 둥지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둘기를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의지해야 할 때에

오히려 애굽과 앗시리아를 의지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자신이 의지했던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惡行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었고

또한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려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하느님을 멀리 떠났고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했다.

그리고 더욱 음란하듯 우상을 숭배했다.

그러므로 이처럼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가 범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얼굴을 하느님께 향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생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잃어버렸던 모든 은혜를 회복하는 길이며

또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죄의 상처로부터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바로 하느님께 향할 때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