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호세아서 5장 : 지도자들이 백성을 멸망으로 이끌다

윤 베드로 2017. 6. 23. 08:15

지도자들이 백성을 멸망으로 이끌다(5,1-7)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왕족, 백성으로 구분하시고

그들 모두를 향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5:1).

이처럼 이스라엘을 세 부류로 구분하여 말씀하심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은 누구도 하느님의 말씀에 대하여

핑계대거나 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사람도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거역함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이 신앙에서 떠났을 때, 그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해졌다(5:4).

본문은 그들을 부패하게 한 원인을 “음란한 마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또한 그들은 교만에 빠졌다(5:5). 교만은 이스라엘과 에브라임과

유다 모두를 넘어지게 했다.

여기 언급하고 있는 교만이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고 또한 그 열매는 항상 패망이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형식화되었다.

하느님의 백성이 부패할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는 형식화된 예배다.

이스라엘은 양떼와 소떼를 끌고 하느님을 찾아왔지만,

이미 하느님은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들의 예배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5:6).

그래서 그들 가운데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던 것이다.

참된 예배를 상실했을 때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오히려 저주가 되었다(7절).

 

하느님은 예언자 호세아에게 기브아에서, 라마에서,

그리고 벧아웬에서 나팔을 불도록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에서 나팔은 축제를 알리거나 국가적인 재난을 알릴 때 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불라고 말씀하신 나팔은

본문의 문맥을 볼 때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부는 나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기브아와 라마는 유다 북방 경계선 상의 전략 요충지로서베냐민의 주요 도시들이었고,

벧아웬은 유다 국경에 근접한 지역,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한 벧엘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대적들이 침략이 있을 것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거룩한 곳을 더럽힌 에브라임에게는 좀 벌레처럼 되고

유다 집안에는 뼈 고름처럼 되리라(5:10-15).

여기 “좀벌레”와 “뼈고름”은 모두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언어들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심판자가 되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은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구하지 않고

오히려 앗시리아에게 구하였다.

하느님은 에브라임에게 앗시리가 “너의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5:13)”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앗시리아가 에브라임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14절 말씀은 하느님께서 진노하실 때 어떤 사람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강한 자들이 아니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죄와 벌(5,8-15)

 

하느님은 예언자 호세아에게 기브아에서, 라마에서,

그리고 벧아웬에서 나팔을 불도록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에서 나팔은 축제를 알리거나 국가적인 재난을 알릴 때 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불라고 말씀하신 나팔은

본문의 문맥을 볼 때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부는 나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기브아와 라마는 유다 북방 경계선 상의 전략 요충지로서베냐민의 주요 도시들이었고,

벧아웬은 유다 국경에 근접한 지역,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한

벧엘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대적들이 침략이 있을 것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거룩한 곳을 더럽힌 에브라임에게는 좀 벌레처럼 되고

유다 집안에는 뼈 고름처럼 되리라(5:10-15).

여기 “좀벌레”와 “뼈고름”은 모두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언어들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심판자가 되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은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구하지 않고

오히려 앗시리아에게 구하였다.

하느님은 에브라임에게 앗시리가 “너의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5:13)”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앗시리아가 에브라임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14절 말씀은 하느님께서 진노하실 때 어떤 사람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강한 자들이 아니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