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믿음으로(11,1-13,25)
믿음(11,1-40)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되심에 대하여 말한 후,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가 무엇인지 말했다.
특별히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우리 앞에 성소에 들어갈 새롭고 산 길이 열려 있음을 말했다.
그는 이 은혜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할 만큼 지극히 큰 것임을
말하며 우리로 하여금 이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고하였다.
이제 그는 11장을 통하여 믿음의 본질과 믿음의 조상들을 통하여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줌으로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따라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주고 있다.
그가 이것을 말해 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믿음에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11,1-3 :
본문은 앎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앎이란 삶과 관련한 지식,
즉 우리가 “마땅히 행할 길”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앎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에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다면 신앙의 길로 행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세속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여기 앎의 문제는 신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동일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불의한 삶을 살았다.
이와 같은 삶의 차이는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앎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로부터 온 것이다.
즉 의로운 삶을 산 사람들은 義야말로 사람이 마땅히 행할 길이라고
알고 있는 자들이고,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일이 최선의 삶이라고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의한 일일지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될 때
서슴지 않고 그 일을 행한다. 이처럼 앎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유의 삶을 사느냐를 결정해 주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바른 것을 알 수 있는가?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하여 “믿음으로”라는 대답을 주고 있다.
즉 우리는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히브리서를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
말해 주었고(11:1), 다음으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의 통하여
그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어떤 삶을 살 수 있었는지 말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계시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바른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11:3).
저자는 믿음이 무엇인지 말한 후(11:1-3),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말해 줌으로 이 서신을 읽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을 본받도록 하였다(11:4-40).
저자는 여기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을 언급하였다.
그는 홍수 이전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4-7)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11:8-19), 족장들(11:20-22), 모세(11:23-28), 출애굽 이후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11:29-31),
하느님의 다른 종들(11:32-38)을 예로 들었다.
11,4-7 :
저자는 여기서 홍수 이전에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세 사람을 예로 들었다.
다음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믿음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졌으며,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받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 “무엇인가”란 아벨에게는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의미하고,
에녹에게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긴 것, 노아에게는 장차 이루어질
홍수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심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항상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다.
11,8-22 :
믿음은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허락해 주신 삶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 때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게 되고, 또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보다 힘써 배워야 할 것은 믿음의 삶이다.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본문은 믿음의 조상들(아브라함, 사라, 이사악, 야곱, 요셉)의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특별히 믿음의 조상들을 통하여
보여주신 믿음은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표준이 되므로
우리가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배우고 본받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났다.
믿음의 삶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삶이란 현재의 삶(세속에 기반을 둔 삶)의 터에서 떠나
새로운 삶의 터(약속의 땅)로 향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 가운데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삶을 삶으로 인하여 두 가지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
하나는 자신의 삶 가운데 위대한 삶의 전환점을 갖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사라의 믿음은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는 것으로 표현 되었다.
이것은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이다.
“나이가 많아 단산 하였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대로 생각할 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본인뿐만 아니고 모든 사람도 알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사람이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믿음은 이 상식을 초월한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모든 믿음의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이다.
이사악, 야곱, 요셉의 믿음은 “다음 세대에 이루어질 일을전망하는 것”으로 표현 되었다.
특별히 우리는 여기 세 사람의 예는 모두 죽음 직전의 모습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축복은 당대에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후손들 대대로 이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앞에 두고
그들의 믿음은 다음 세대를 축복해 주는 것으로 표현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연속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당대에 모든 것을 성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것을 믿음으로 행한 후에
나머지 일은 주와 및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는 의미다.
여기 주와 및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의 믿음은 언제나 소망으로 표현 된다.
11,23-28 :
저자는 다음으로 모세의 믿음에 대하여 말했다.
당시 파라오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男兒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믿음으로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숨겼다.
또한 모세도 장성하여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거절하고
하느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하였다.
또한 모세는 하느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으로부터
구원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파라오에게 나가
이스라엘을 그의 손으로부터 구원해 내었다.
저자가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해 주고자 하는 것은
믿음은 하느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라면
현재의 고난까지 기꺼이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장애들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기쁘신 뜻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1,29-31 :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
여기 저자는 이스라엘과 대비하여 이집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건너간 것은 믿음의 행위였지만,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시험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동일한 행위일지라도 계시 된 말씀에 따라 행할 때에는 믿음이 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행할 때에는 시험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이란 계시 된 말씀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11,32-38 :
저자는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수많은 판관들과 예언자들의 예를 들며
그들이 믿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말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믿음으로 대적들과 싸워 이기기도 하였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고,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였고,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언제나 승리만을 얻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동일한 믿음으로 인하여 악형을 받기도 하였고,
결박과 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여기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대적과 싸워 승리한 것이 능력이라면
믿음으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박해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믿음은 우리를 능하게 하는 능력의 통로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11,39-40 :
본문은 저자가 모든 시대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예를 말한 후 말한 결론이다.
여기 “이 사람들”이란 구약 시대 믿음의 영웅들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라는 말씀은
2절과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즉 그들의 믿음은 하느님께 인정함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그들이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 “약속”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하여 완성될 구원을 의미한다.
그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것은 믿음이 불완전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고
하느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믿음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삶의 전제이고(11:1-3), 삶의 기초이고(11:4-7), 삶의 능력이다(11:8-40). 이처럼 본문은 “믿음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능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이라는 말은 25번 나오고,
믿음의 사람들 중에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16명이다.
이 외에 “예언자들” “어떤 이들” “여인들” 등 불특정인들을 언급하므로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능력 이상으로 크고 위대한 일들을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삶과 믿음으로 행한 일들을 통하여
믿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위대한 힘을 본다.
하나는 긍정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의 힘이다.
여기 부정의 힘이란 “부정 의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부정 의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을 말하지만
부정의 힘이란 이미 세워진 낡은 것을 무너뜨리는 힘을 말한다.
자아를 무너뜨리고, 나쁜 습관을 무너뜨리고 탐욕을 무너뜨리는 힘이 바로 부정의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의 힘을 소유할수록 우리는 거룩한 삶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다.
다음으로 긍정의 힘이란 부정의 힘과 반대적인 것으로서 세우는 힘이다.
방주를 세우고, 약속의 땅을 향하게 하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고, 예리고 성을 돌게 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삶 가운데 긍정의 힘과 부정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균형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긍정과 부정의 힘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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