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여호수아기공부

약속의 땅에 정착하다

윤 베드로 2017. 1. 12. 22:55

☺약속의 땅에 정착하다

 

가나안사람들의 생활과, Ɵ백성이 그들 사이에 정착하게 된 경위를 살펴본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가능했던 것은 :

비옥한 반달 지대의 역사적 상황, 즉 그곳의 지형, 가나안 문화,

에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적 관계 등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모험을 감행하기에 적기였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해를 광야에서 보냈으므로

정복 의욕도 무르익어 있었을 시기였다.

 

①가나안의 지형 :

우리가 보면 형편없는 땅인 가나안은 광야와 비교해볼 때,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었다(신명 8,7-10).

․우기(11-2월)와 건기(3-10월)가 있어 정기적으로 비가 온다는 것,

․지중해 연안과 이즈르엘 계곡, 요르단 강 사이에 펼쳐진비옥한 평야,

․포도밭과 수풀이 있는 언덕,

․건축 자재를 캐낼 수 있는 채석장,

․구리 광산들이 있는 축복받은 땅이었다.

․올리브, 곡물들, 포도주가 풍부하고

․가축을 기르기에 알맞는 좋은 목초지들(고원들)도 꽤 있었다.

 

②산업과 종교 :

가나안은 농사가 주된 생활양식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풍작이었다.

풍년은 우기에 따라 좌우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종교는 多産과 풍작과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Ɵ 백성은 농민이 되자 가나안 사람들에게 농경술을 배웠고

따라서 농사에 수반되는 그들의 종교를 배척하기가 어려웠다.

 

③인종과 인구밀도 :

가나안 땅에는 : 여러 종족들이 먼저 와서 살고 있었는데

(아말렉인, 켄인, 히타이트 인, 여부스인, 가나안인, 시돈족, 암몬족, 모압인, 에돔인 등)

그 대부분이 하느님의 백성과 동일한 셈족에 속했다.

요즘의 기준으로 볼 때 인구밀도는 희박했을 것이다.

 

④국가 형태 : 울퉁불퉁한 가나안 땅은 메소포타미아 평원이나

나일강 계곡에서 볼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나라가 들어서기에 적합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현대의 고고학적 연구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트란스 요르단을

통과한 시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1932-1943년에 행한 고고학 발굴결과 이 지역의

여러 소왕국들은 기원전13세기부터 있었다고 추정되었다

 

하느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가나안땅은 :

여러 성읍국가, 즉 하나의 도시와 인근의 부락으로 구성된 국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들은 각각 나름의 ‘왕’이나 ‘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위급할 때는 협력하였지만

상호간에 중앙정부를 두고 정치적 결속을 맺고 있지는 않은 상태였다.

도시에 사는 귀족 계층과 그 도시에 의존하면서 외곽에 살고 있는

농부들 및 농노들로 구성된 일종의 봉건제도였다.

대부분 농경지로 적당한 평야지역에 큰 성읍들이 있었고

이 성읍들은 병거나 기타 여러가지 무기로 방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고원지대는 목축하기에 더 알맞은 지역으로서

게릴라부대의 공격에는 방어하기 힘든 지역이었다.

이 성읍들, 도시국가들 사이에는 어느 지배자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지역들이 있었을 것이다.

 

⑤국제적인 정치 여건 :

여호수아가 가나안 침공을 시작한 것은 1250년경으로

에집트에 라므세스 2세가 재임하고 있었으나,

헷 왕국과의 싸움으로 가나안에서의 세력이 약화되던 시기였다.

히브리인들은 평야에 있던 가나안 성읍국가의 요새나

에집트의 전초기지를 피하면서 중앙 고원지대만 점령해 들어갔다.

⇒라므세스가 죽자 라므세스의 아들 메르넵타(1224-1211)는

에집트를 다스릴 능력을 상실했다

그의 승전비는 성서 밖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란 명칭을

알려주는 유물이지만 메르넵타의 승전보고는

과장되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메르넵타 비문 : 이스라엘이 황폐해졌으니 자손이 없도다.

후루(Hurru)는 에집트에게 과부가 되었도다

(후루:가나안 땅을 일컫는 말)].

 

그에 의하면 중앙 고원지대에서 막 발판을 굳힌 이스라엘인들은

메르넵타의 침공으로 전쟁에서 패배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메르텝타 역시 ‘에게’ 해역으로 몰려온

침입자들에 의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에게 해역에는 남유럽으로부터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났고, 이들 민족들의 이름은 다양했으나

에집트는 그들을 ‘해양민족’이라고 불렀다.

그중 한 민족이 필리스티아인(Philistines)

-나중에 ‘블레셋 인’- 이었다.

메르넵타가 죽자 그 다음 라므세스 3세는

그들을 가나안 해안의 교두보까지 물리쳤지만,

그 후부터는 다시는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떻든 이렇게 하여(=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이스라엘인들은 약속된 땅을 차지할 바탕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잠시 살펴보았다시피

하느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해나간 경위를 재구성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여호수아서는 : 약속의 땅이 連戰連勝의 전투를 통해

순식간에 정복된 듯한 인상을 준다.<電擊的인 정복>

그러나 판관기가 제시하는 정복의 양상은 아주 다르다. :

즉 판관기는 가나안 점유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졌고 <漸進的인 정복>,

각 지파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몇몇 지파들이 결속하여 부분적인 정복을 하였거나,

어떤 경우는 아예 정복에 성공하지 못했던

매우 불완전한 정복이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