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윤 베드로 2015. 2. 12. 16:50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고린 10, 31).

 

1. 그리스도만이 내 생의 전부입니다

 

이 말을 한 사도 바오로는 우리로 하여금 매사에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활동하도록 권고한다.

사도 바오로는 자기의 전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일생을 바친 분이다.

그는 "그리스도만이 내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 21)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했으며,

           자기의 노동을 통해서 전교비를 벌었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설립하여 마침내 이방인의 사도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에 가서도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고린토에는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계획되고(BC 6세기)

     건설되기 시작한 고린토 운하가 있다.

이 운하는 이오니아 해와 에게 해를 이어 주는

              상업적이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는 노예들을 수천 명이나 투입하여

       운하 건설을 시작했다가 완성을 보지 못했고,

       그 후 일곱 명의 황제도 힘을 기울였으나 완성하는 못했다.

그 후 19세기 말에(1883년) 비로소 완공되었다.

이처럼 고린토는 당시 문화가 발달된 도시였다.

또한 고린토 사람들은 다른 교회보다 믿음도 강하고 열심해서 빨리 발전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고린토 교회 내에 바오로파, 아폴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라는 파벌이 생기고 서로 다투고 논쟁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교회의 분열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린토 서간을 썼다.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고,

              그들을 하느님의 한 자녀로서 일치시키려는 권고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활동하는 것도

           결국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인생관을 갖고서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인간의 창조 목적 :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사실 인간은 그 생존을 위해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먹고 마시는 행위 그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발전과 완성을 도모한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의 완성이란 새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자녀로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릴 때,

           그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렇게 될 때 인간측에서는 구원이 되며, 하느님께는 영광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인간의 유익을 위해 주셨다.

따라서 인간은 세상 사물을 이용하고 개발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

인간은 지성과 자유를 가지고 인간 생활을 유익하고 편리하게

           세상 사물을 개발하고 이용한다.

인간의 이러한 창조 활동은 다 인간의 근본 목적에 합치하는 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세상 사물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것을 인간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3. 우주 만물은 창조 질서와 조화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한편 우주 만물도 그 자체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의 뜻을 따라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에 나타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많은 별들, 그 움직임도 창조주의 뜻을 따라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제 궤도를 이탈했을 때에는 한낱 별똥별로서 떨어지게 된다.

산천 초목도 그 자체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공중에 사는 새들, 바다의 물고기들, 들짐승도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느님은 모든 창조물로부터 영광과 찬미를 받고 계신다.

 

4. 성서에 묘사된 하느님의 영광

 

성서에서 묘사되는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으로 나타난다.

반면 인간은 죄인이기에 거룩하신 하느님을 보는 순간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은 황홀하고 신비스럽게 나타나며

           인간은 그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인간을 무한히 초월하는 위엄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는 하느님을 모시는 천사들이 밤낮으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6, 3) 하고 외친다.

또 시편에서는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땅은 그 손수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 1) 하고 노래한다.

또한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무수한 천사들도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했다.

즉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 14).

그리고 우리도 한편 영광송을 통해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기린다.

 

5. 인간의 자유: 하느님 흠숭과 우상 숭배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들은 그가 갖고 있는 자유 때문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도 하고 혹은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인간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보다는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든지

           혹은 그보다 못한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리기도 한다.

해, 달, 별, 바위 등 그 자체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찬미하거나 숭배한다.

혹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생겨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 보이는 것을 찬미하고 그 앞에 엎드려 숭배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이러한 행위를 가장 싫어하시고 질투까지 하신다.

십계명 중에서도 가장 첫째 가는 계명이 바로 우상 숭배를 금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모시지 말라."(출애 20, 3; 신명 5, 7)고 하셨다.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만드신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 인간들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어떤 일을 좀 잘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찾고 제 자랑하기 일쑤이다.

 

6.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정말 자랑할 만한 분이 제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극도로 낮추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일하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셨지만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당신 자신을 낮추어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일하신 분이다(필립 2, 6-11).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성서에서도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수천 마리의 소와 양을 가지고

       제사를 올리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다(아모 5, 21-25 참조).

그분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또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항상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 36) 하고 기도하셨다.

 

하느님의 뜻은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

              하느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그러기에 인간은 모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한 자녀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할 때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차지한다든지

          혹은 하느님 외의 것에 영광을 돌린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가 된다. 하느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

 

구약을 통해 보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혹은 우상에게 영광을 돌리느냐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신이나

          혹은 금송아지와 같은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경고하시고

         그래도 말을 안 들을 때에는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을 내리셨다.

이처럼 하느님은 인간들이 당신께만 영광을 돌리기를 요구하신다.

 

7. 현대의 우상인 돈(마몬)

 

그러면 현대의 우상은 무엇이겠는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것도 많이 있지만 현대에는 돈(마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수께서도 "하느님이냐 마몬이냐?"(마태 6, 24) 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돈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 너무도 많다.

돈 몇 푼 벌기 위해 사람을 속이거나 죽이기까지 한다.

돈 때문에 의(義)가 상하고 오해하고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돈이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돈이 인간을 지배한다.

현대인은 돈을 섬기고 있다.

요즘같이 물가고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돈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람을 돈의 가치로 평가하고, 또 돈으로써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그러나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제 돈을 섬기는 데서 벗어나 돈을 지배해야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그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다른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도 그것을 통해서 먹고 마시며 입고 살 집을 마련하고,

           또 하느님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완성을 추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돈의 우상을 섬기지 말고,

              오히려 돈을 지배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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