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31편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6절)

윤 베드로 2020. 5. 6. 21:09

31편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6

 

31: 개인 탄원시편,

이 시편은 다윗이 환난 때(사울에게 쫓기어 방황하고 있을 때) 쓴 시.

작가는 앞에서(2-19) 감상적인 어휘로 자신의 비참함과

          고뇌를 설명하는 한편,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는

          요지부동의 신뢰감으로 도우심을 청한다.

다음은(20-25) 전형적인 감사가가 된다.

이 부분이 애초부터 앞 절과 이어져 있으면서

             독립된 시편이 아니었다면, 작가가 받고 싶어하던

             은총에 대한 事前 고백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1. 구원을 부르짖음

1지휘자에게. 시편. 다윗]

2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니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하소서.

3 제게 당신의 귀를 기울이시고 어서 저를 구하소서.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2.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

4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생각하시어 저를 이끌고 인도하소서.

5 그들이 숨겨 놓은 그물에서 저를 빼내소서.

당신은 저의 피신처이십니다.

6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

7 저는 허황된 우상 섬기는 자들을 미워하고

오로지 주님만 신뢰합니다.

8 당신의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니

당신께서 저의 가련함을 굽어보시어 제 영혼의 곤경을 살펴 아시고

9 저를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며

제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3. 위험을 한탄

10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짓눌립니다.

제 눈이 시름에 짓무르고 저의 넋과 몸도 그러합니다.

11 정녕 저의 생명은 근심으로, 저의 세월은 한숨으로 다해 가며

저의 죄로 기력은 빠지고 저의 뼈들은 쇠약해졌습니다.

12 제 모든 원수들 때문에 저는 조롱거리가 되고 이웃들에게는 놀라움이,

저를 아는 이들에게는 무서움이 되어

길에서 보는 이마다 저를 피해 갑니다.

13 저는 죽은 사람처럼 마음에서 잊히고

깨진 그릇처럼 되었습니다.

14 정녕 저는 많은 이들의 비방을 듣습니다.

사방에서 공포가 밀려듭니다.

저를 거슬러 그들이 함께 모의하여 제 목숨 빼앗을 계교를 꾸밉니다.

 

4. 구원 기도

15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을 신뢰하며

?당신은 저의 하느님!? 하고 아룁니다.

16 당신 손에 제 운명이 달렸으니

제 원수들과 박해자들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17 당신 얼굴을 당신 종 위에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18 주님,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악인들이나 수치를 당하여 말없이 저승으로 사라지게 하소서.

19 거만하여 업신여기고 의인을 거슬러 파렴치하게 지껄이는

거짓된 입술들을 잠잠하게 하소서.

 

5. 찬양과 권고

20 얼마나 크십니까!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이.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를 베푸십니다.

21 당신 앞의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시고

당신 거처 안에 숨기시어 나운 입술들의 공격에서 구해 내십니다.

22 포위된 성읍에서 내게 당신 자애의 기적을 베푸셨으니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23 질겁한 나머지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당신 눈앞에서 잘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당신께서는 애원하는 저의 소리를 들어 주셨습니다.

24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께서는 진실한 이들은 지켜 주시나

거만하게 구는 자에게는 호되게 갚으신다.

25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힘을 내어 마음을 굳세게 가져라.

 

 

31: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의 이득을 위하여 고난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은혜의 수단으로 이용할 줄 안다면

              고난은 우리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우리들이 받고 있는 고난들 가운데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오는 것들이 있고

             원수들로 인하여 무고히 받는 것들이 있으며,

또한 재난과 질병 등과 같이 환경으로부터 오는 불가피한 고난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종류의 고난을 받고 있든지 그리고 그 고난이 얼마나 크든지

          그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다윗은 무고히 고난을 받고 있었다. 대적들은 시기(猜忌)로 인하여

           다윗의 생명을 취하려고 비밀히 그물을 쳐 놓고 있었다.

이와 같은 외적 고통은 그의 육체를 쇠약하게 했고 내적으로 갈등가운데 있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했다.

이와 같은 극심한 고통에 대하여 다윗은 31,11-13절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들은 다윗으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하느님을 신뢰하게 했다.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고통들을 은혜의 수단으로 만들 수 있게 했는가?

첫째 하느님을 피난처로 아는 믿음이었다(31,1).

다윗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사람들에 의하여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하느님께 의탁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너그러웠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에게 보여준 태도,

          자신을 저주하던 시므이에게 보여준 태도(2사무16,5-14),

그리고 자신을 거역한 요압 등에 대한 태도 등은 그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느님을 피난처로 삼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여기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을 피난처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싸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다.

이것은 일의 결정권이 하느님께 있다고 믿는 믿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윗에게 이와 같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수들이 자신의 생명을 취하려고

              비밀히 그물을 쳐 놓은 것을 알았지만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31,6)”라고 고백할 수 있었고

               내외적으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을 신뢰하며 당신은 저의 하느님!’ 하고 아룁니다.

당신 손에 제 운명이 달렸으니 제 원수들과 박해자들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31,15-16)”라고 고백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하느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이었다.

얼마나 크십니까!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이.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를 베푸십니다.

            당신 앞의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시고

            당신 거처 안에 숨기시어 사나운 입술들의 공격에서 구해 내십니다.(31,20-21)”

다윗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믿음은 그로 하여금 환난의 때에 더욱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했고 또한 환난 가운데서도 구원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게 했다.

현재 다윗에게 전개되고 있는 환경은 절망적이었지만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서도 다윗의 고백은 희망적이었다.(31,8-9)

그는 계속하여 구원에 대한 확신을 말하고 있다.

질겁한 나머지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당신 눈앞에서 잘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당신께서는 애원하는 저의 소리를

           들어 주셨습니다.(31,22)”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환난은 오히려 다윗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이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환난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無益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환난을 은혜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환난은 오히려 우리에게

           하느님을 의지할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