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이 받을 벌(9,1-11)
9,1-2 :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이스라엘이 더럽힌 성전의 모습을 보이신 후(8장),
다음으로 성전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에제키엘은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자들에게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고,
또한 그 말씀에 따라 여섯 사람이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잡고
북향한 윗문 길로 나와 제단 곁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 여섯 사람은 하느님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을 심판할 자들을 말한다.
그들이 “北向한 윗문 길”로부터 왔다는 것은 유다의 북쪽으로부터
유다를 침략하기 위하여 올 바빌론 군대를 의미한다.
특별히 그들은 성전에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 있었다.
놋 제단은 성전 뜰에 있는 단으로서 하느님께 희생을 드리는 곳이다.
그러므로 놋 제단은 죽음(희생)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은 죽음으로서만 그 죄를 대신할 수 있다.
바빌론 군대는 마치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
짐승을 희생으로 드리는 것처럼
죄를 범한 유다를 살육함으로 희생을 삼을 것이다.
9,3-4 :
여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영광이 지성소에서 떠났다는 의미다.
성전은 하느님의 영광이 지성소 커룹에 머무실 때만 성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임재가 떠난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비극적인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다.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날 때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될 수 없고
이스라엘에게서 떠날 때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선택한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느님의 영광이 지성소 커룹으로부터 떠났을 때 예루살렘에는 심판이 시작 되었다.
하느님은 심판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에게 예루살렘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를 범함으로 특별히 성전이 우상으로 더럽혀진 것에 대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경건한 자들로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슬퍼하고 탄식하는 자들이었다.
하느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경건한 자들을 잊지 않으신다.
그래서 유다를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의 이마에 표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심은 그들을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9,5-6 :
여기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두려운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심이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이 죄 가운데 있을 때 끊임없이 예언자들을
보내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죄로부터 돌이키도록 권고의 말씀을 주시고
또한 오래 참으심으로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 끝까지 거역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베푸신 자비하심을 거두어 가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9,7-8 :
성전은 거룩한 곳이다.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도록 허락해 주신 문으로 우상을 들여왔던 것이다.
그 결과 하느님의 영광은 성전으로부터 떠났고 대신 그곳은 우상의 소굴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전은 다른 어떤 곳보다 먼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심판을 명하셨을 때 성전에는 시체로 가득하였다.
거룩한 곳 지상에서 인간이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단 한 곳 거룩한 성전이
이제는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되었다.
시체는 부정한 것들 가운데 가장 부정한 것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생명 되신 하느님과 반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생명으로 충만하지만
하느님께서 부재한 곳에는 사망이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이다.
9,9-11 :
이 말씀은 에제키엘의 물음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대답이다(9:8).
즉 이스라엘을 아끼지 않고 멸하신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가득 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을 아끼지 않고 치신 것이다(9:8-11).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성전의 더럽혀짐과
이스라엘의 부패함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성전은 영성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성전이 정결하여 그곳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올 때 그 물을 먹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오늘의 우리 시대에 적용한다면 교회가 깨어 있을 때
성도들이 깨어 있음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고
빛과 소금으로서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화되어 영성을 잃어버린다면
그리스도인들도 세속화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은 세속화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세상을 비춰 줄 빛도 사라져버림으로
세상은 어둠 가운데 부패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성전과 교회는 영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교회의 부패와 세상의 부패함을 동일시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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