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2장 공부 : 에제키엘이 소명을 받다

윤 베드로 2017. 10. 7. 08:01

에제키엘이 소명을 받다(2,1-3,15) 


2,1-7 :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환시를 보여주신 후에 또 다시 그에게 말씀으로 임하셨다.

이것은 에제키엘로 하여금 말씀해 주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앎으로, 주시는 말씀을 권위로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아는 사람은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였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아는 지식 자체가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는

위엄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불순종은

하느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을 주셨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2,3)”

하느님은 에제키엘을 반역한 이스라엘에게로 보내셨다.

그러므로 에제키엘이 부르심을 받은 곳은 반역한 이스라엘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반역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었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에제키엘을 그들에게 보내심이 마치 가시와 찔레와

그리고 전갈과 함께 살도록 보냄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를 그들에게 보내신 것은 계약의 백성인

그들에 대한 사랑과 성실을 지키시기 위한 것이었다.


2,8-10 :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人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반항한 족속 같이 반항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도 반항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만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살 것을 말할지라도

자신이 순종하여 살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반항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기록된

두루마리 책을 내미시고 그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부르심을 받는 자들이 말씀을 위임 받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실지라도

그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언자는 받은 말씀들 가운데 선택하여 전할 수 있는 권한은 없고

언제나 直告해야 할 책임만 있는 것이다. 

 

3,1-3 :

1장부터 3장은 에제키엘의 부르심에 대한 말씀이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을 예언자로 부르시고

그를 포로된 이스라엘에게 보내시기 위하여 준비 시키셨다.

먼저 하느님은 환시를 통하여 네 생물과 보좌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 에제키엘로 하여금 자신을 불러 주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해 주셨고(1장),

다음으로 예언자로서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셨다. 즉 그가 누구에게 보내심을 받았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등이다(2장).

3장은 2장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3,1)

2장 8절의 말씀에 대한 반복이다. 예언자가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언할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고

말씀하심으로 보내심을 받은 곳에 가기 전에

먼저 그곳에서 대언할 말씀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다음의 말씀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어떻게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지 말해 주고 있다.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3:1)”

에제키엘은 말씀에 순종하여 두루마리를 먹었는데 그 맛은 꿀 같았다.

그 맛이 달다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말씀은 양식이 됨을 말한다.


3,4-11 :

하느님은 에제키엘을 통하여 대언의 말씀을 들을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고 이스라엘 족속이었다.

여기 이스라엘은 에제키엘과 동일한 족속이므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에제키엘이 어떤 말씀을 대언할지라도 그들은 모든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예언자가 전하는 대언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이것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하느님에 대하여 완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낸다면,

그들은 네 말을 들을 것이다.(3:6)”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셨다.

이것은 비록 그들이 지금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진노하심 가운데 있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가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예언자의 마음을 더욱 담대하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집안은 네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집안은 모두 이마가 단단하고 마음이 굳은 자들이어서,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이마를 바위보다 단단하게 하여 금강석처럼 만들었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그들은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3:7-9)”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굳은 이마와 굳은 마음”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그의 이마와 얼굴을 이스라엘 족속의 것보다 

        더욱 굳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주신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진리에 대한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게 해 줄 것이라는 의미다.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거부할지라도

그들의 태도로 인하여 동요하지 않고 진리를 진리라고 확신 있게 전하고 

    또한 죄를 죄라고 용기 있게 전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이마와 얼굴보다 더 굳은 이마와 얼굴을 갖는 것이다.

하느님은 예언자가 이스라엘에게 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귀담아들어라. 그리고 네 동포 유배자들에게 가서 일러라.

그들이 듣든 말든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3:10-11)”

말씀만이 부패한 하느님백성의 심령을 각성 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부패한 이스라엘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요청되는 것은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에제키엘을 보내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말씀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때로는 사람들이 말씀에 대하여 무관심할 때에도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3,12-15 :

에제키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세 가지 사실을 체험했다.

하나는 “주님의 영광이 머무르던 그 자리에서 위로 올라갈 때,

큰 진동 소리가 내 뒤에서 들렸다(3:12)”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어떠하든지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의 부패도 하느님이 사시는 거룩한 처소를 더럽힐 수 없고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손상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세상을 초월하여 거룩한 분으로 존재하신다.

다른 하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자신의 마음에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여기 예언자가 경험한 근심하고 분한 마음은 부패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지신 하느님의 마음을 말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강권적인 성령님의 감동에 이끌려 텔아비브에 이르러

거기서 칠일동안 머무르게 된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 가운데 있을 때

실제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성령님은 그를 텔아비브로 인도하시기를 원했고

그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이끌려 그곳에 이르렀다.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이 성령님의 감동 가운데 있을 때 갖게 되는 소원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텔아비브는 포로로 잡혀온 유다 백성이 거주한 일종의 수용소였고

그들은 이곳에서 홍수에 대비하여 관계 공사에 동원 되었다.

에제키엘은 이곳에서 “두려워 떨며 칠일을 지냈다”

이 말은 에제키엘이 텔아비브에서 칠일 동안 머무는 동안

하느님께서 자신을 감동시키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다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