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1장 공부 : 에제키엘이 환시를 보다

윤 베드로 2017. 10. 6. 07:48


Ⅰ. 심판에 관한 예언(1,1-33,20)


에제키엘이 환시를 보다(1,1-3) 

 

에제키엘은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 자신도 제사장이었다.

그는 B.C.597년 여호야긴 왕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

함께 잡혀갔고(바빌론 제1차 포로 때)

그곳에서 5년째 되는 해 그발강 가에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발강은 바빌론 동남쪽에 있는 큰 강이었는데

그곳은 바빌론의 관계시설을 위하여

사로잡아온 유대인들을 수용하는 중앙 수용소가 있는 곳이었다.

에제키엘은 예언자로서 부름 받아 바빌론에서 20년 동안 활동하였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포로된 자들을 위하여 예언자를 세워주신 것은

자신들의 포로됨에 대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낙심할만한 바로 그 곳”에서 하느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발현(1,4-28) 

 

1,4-14 :

4절-28절까지는 에제키엘이 본 첫 번째 환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북방으로부터 몰려오는 폭풍과 큰 구름 가운데서 사면을 비취는 빛과 

      그 가운데서 나타난 네 생물의 형상을 보았다(1:4-25).

그리고 그는 또 다시 하늘의 보좌의 형상을 보았다(1:26-28).

이 환시에서 우리는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심판하실 때

북방의 한 나라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바로 그 나라가 바빌론이기 때문이다(예레1:14).

따라서 우리는 에제키엘이 환시 중에 본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도 바빌론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에제키엘은 폭풍과 큰 구름 사이에서 사면에 비취는 빛을 보았다.

이것은 유다가 비록 바빌론으로부터 큰 환난을 당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구원에 대한 소망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에제키엘은 그 빛 가운데 보이는 네 생물이 모습을 보았다.


네 생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이러하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저마다 넷이었다.

다리는 곧고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았는데, 광낸 구리처럼 반짝거렸다.

그들의 날개 밑에는 사방으로 사람 손이 보였고,

네 생물이 다 얼굴과 날개가 따로 있었다.(1:6-8)”

에제키엘은 네 짐승 모두의 전체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 생물들은 각각 얼굴과 날개와 다리와 발바닥 그리고 날개가 있었는데

날개 밑에는 손이 있었다.

에제키엘은 또 다시 “네 생물이 얼굴과 날개가 따로 있었다.”라고 말함으로

네 생물의 전체 모습 가운데 특별히 얼굴의 모습과

날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네 생물의 얼굴 모양은 각각 달랐다.

앞쪽 생물의 모양은 사람의 얼굴과 같았고,

오른 쪽 생물의 얼굴은 사자의 얼굴과 같았고,

왼쪽 생물은 황소의 얼굴과 같았고,

뒤쪽 생물의 얼굴 모습은 독수리의 얼굴 모습과 같았다.

유대인 랍비들의 해석에 따르면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 중에 가장 으뜸이고 

        사자는 맹수들 중에 으뜸이고 황소는 가축들 가운데 으뜸이며

또한 독수리는 날짐승 가운데 으뜸이므로

네 생물들이 이처럼 네 가지 형상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네 생물들은 모두 각각 두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두 날개는 모두 위로 펼쳐져 있었고 서로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네 생물들의 모양은 마치 숯불 혹은 횃불과 같았다.

그리고 네 생물은 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때에는

각각 앞으로 곧게 나아갔고 빠르기는 번개와도 같았다(1:9-14).


1,15-21 :

본문은 14절에 대한 보다 더 구체적인 설명이다.

14절에서 네 생물의 빠르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 생물들은 번개가 치는 모습처럼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다.”

그러므로 15절부터는 네 생물로 하여금 이처럼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기관인 바퀴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네 생물은 모두 한 개의 바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바퀴는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黃玉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바퀴는 어디로 가든지 방향을 돌이키지 않고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예언자는 바퀴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주었다.

“바퀴 테두리는 모두 높다랗고 보기에 무서운 데다,

그 네 테두리 사방에 눈이 가득하였다.(1:18)”

바퀴가 “높고 무섭다”는 것은 보는 이에게 경외감을 갖게 한다는 의미다.

여기 눈은 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바퀴는 움직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퀴의 둘레로 돌아가며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바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정확히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완전하신 하느님의 속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생물과 바퀴와 영의 생각은 언제나 일치했다.

이와 같은 일치는 영이 바퀴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은 생물의 생각과 바퀴의 움직임을 언제나 일치하도록

중재했기 때문에 생물과 바퀴와 영은 언제나 일치 할 수 있었다.


1,22-25 :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궁창 같은 형상이 펴 있어서 보기에 심히 두려웠다.

그리고 생물들이 행할 때 나는 소리는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았으며

군대의 소리와도 같았다.

여기 궁창의 형상, 또는 네 생물이 행할 때 내는 소리

그리고 궁창 위에서부터 나는 음성 등은

모두 네 생물의 위엄과 권능을 상징하고 있는 것들이다.


1,26-28 :

네 생물이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의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가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어좌를 상징한다.

여기 하느님을 한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느님을 묘사할 때는 언제나 상징을 사용한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언자가 본 환시를 정리하면

네 생물은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상징한다.

예언자가 본 환시에서 어좌는 하느님을 상징한다.

네 생물은 언제나 어좌 밑에서 하느님의 뜻을 시행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네 생물은 자율적 존재가 아니고 영의 인도를 받는 존재다.

즉 하느님의 뜻은 영을 통하여 네 생물에게 전달되고

네 생물은 영의 인도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시행한다.

그러면 네 생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본문의 내용을 개괄할 때 네 생물은 독립적인 존재이기 보다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권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네 생물에 대한 묘사가

천사를 묘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상에 있는 어떤 것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하느님께서 바빌론의 포로된 자들에게 네 생물의 모습을 통하여

만물을 통치하시는 자신의 권능을 계시해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신뢰함으로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도 구원의 소망을 갖도록 하려 하심이었다.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어떤 환난과 곤경에 처해 있든지

하느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그 하느님을 신뢰한다면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