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열왕기 공부

열왕기하 19장 공부 : 아시리아가 다시 위협하다

윤 베드로 2017. 8. 29. 09:33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문의하다(19,1-8) 


히스기야는 아시리아 진영에서 돌아온 자들의 보고를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갔다.

그는 하느님께 호소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신하들을 예언자 이사야에게 보내어

아시리아가 하느님을 훼방하고 있음을 전하고 기도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는 그때의 유다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는 상태”에 비유했다(3절).

히스기야는 이런 처지에서 유다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지금 유다가 처한 곤경을 전하며 아시리아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시리아 임금의 종들이

나를 모욕한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내가 그에게 영을 보내면, 그는 뜬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자기 나라에서 칼에 맞아 쓰러지게 하겠다.(6-7절)”

예언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을 아시리아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처럼 히스기야가 하느님께 나가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였을 때

하느님은 그를 들어 주신 것이다.

만일 유다가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았을 때,

히스기야가 그들과 협상하려고 하지 않고

처음부터 하느님께 나가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더라면

그토록 많은 供物을 줄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오게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리아가 다시 위협하다(19,9-13) 

 

아시리아왕은 라기스를 정복하고 그곳을 떠나 립나로 갔다.

그런데 이때 산헤립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에티오피아 왕 디르하가가 아시리아와 싸우기 위하여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시리아왕은 조급해졌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 항복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는 군대장관 랍사게를 통하여 히스기야를 위협했다.

아시리아가 이처럼 예루살렘을 탐한 것은 디르하가를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유다를 확보해 놓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전략상 그의 후방을 호위해 줄 수 있고

또한 그의 퇴로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곳이었다. 

 

히즈키야의 기도(19,14-19) 

 

여기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펼쳐 놓았다는 것은 히스기야의 확신에 근거한 신앙의 행위였다.

즉 히스기야의 이런 행위는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지키시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훼방하는 아시리아 왕 산헤립을

반드시 멸하실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나온 것이다.

히스기야는 기도에서 하느님에 대하여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서

하느님만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오직 한분뿐이신

“만유의 주”시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유다를 아시리아의 손에서 구원하고자 하신다면

언제든지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런 하느님께 유다를 아시리아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자신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나무와 돌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자신들의 신이야 말로 모든 나라의 신들을

굴복시킨 가장 강한 신이라고 자랑하며

만유의 주되신 하느님까지 모욕하고 있는 아시리아를

하느님께서 멸하심으로 스스로 모든 나라 가운데

홀로 하느님 되심을 알리시기를 원해서였다. 

 

산헤립을 두고 하신 주님의 말씀(19,20-28)


히스기야가 성전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하느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아시리아왕의 훼방은

유다에게 행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행한 것임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사신을 보내 주를 훼방한 예들을 말해 주고 있다(19:21-24).

그러나 그들이 이처럼 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기 위한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아시리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동안

어떤 나라도 그를 당할 수 없었다.

비록 그들이 견고한 성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그 성은 아시리아로 인하여 돌무더기가 되었을 뿐이다.

26절은 하느님께서 아시리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동안

아시리아 앞에서 열국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가 되었는지 말해 주고 있다.

모든 나라가 이처럼 아시리아에 대하여 약한 존재가 되었을 지라도

아시리아는 자신의 힘을 자랑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었고 하느님께로부터 온 힘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처럼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어떤 사람을 강하게도 하시고 때로는 약하게도 하시는 것이다.

아시리아는 이와 같은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교만하여 “만유의 주” 되신 하느님까지 훼방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의 이와 같은 교만과 훼방을 모두 알고 계셨다.

하느님은 아시리아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19:27-28)


히즈키야에게 내린 주님의 표징(19,29-34) 

 

하느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말씀해 주었고,

그 하신 말씀을 확증해 주시기 위하여 히스기야에게 한 징조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금년과 명년에는 스스로 자란 것을 먹고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둔 열매를 먹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는다는 것은 유다가 전쟁으로 인하여

밭에 파종할 수 없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난 것을 먹는 동안에는

유다가 아시리아에 포위된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둔다고 했다.

이것은 아시리아의 손에서 구원받아 자기 밭에 파종할 수 있을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계속하여 하느님은 아시리아로부터 구원받은 유다의 회복을 말씀해 주셨다.

“유다 집안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다시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 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19:30-31).”

여기 “유다 집안의 살아남은 생존자”란

아시리아로부터 구원받은 유다를 말하며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라는 말은

그들의 회복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당시의 환경으로 볼 때 유다가 회복 된다는 것은 누구도 기대할 수 없었다.

유다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이런 회복이 사람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열심”으로 인하여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느님은 히스기야에게

다시 한 번 아시리아는 결코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못하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임을 확인시켜 주셨다(19:32-33).


산헤립의 말로(19,35-37) 

 

본문은 하느님께서 예언자 이사야께 하신 말씀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보여 주고 있다.

아시리아 군대는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하루 밤에 전멸 되었다.

아시리아 왕 산헤렙에 대한 예언도 성취 되었다.

그는 군대를 잃고 아시리아 왕도 니느웨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가 자신이 숭배하는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

자기 아들들에게 살해 되었다. 그들은 아라랏 땅으로 도망갔다.

그래서 산헤립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아시리아 왕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주신 모든 말씀이 성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