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말라기 1장 공부 : 그릇된 경신례

윤 베드로 2017. 7. 27. 09:16

이스라엘과 에돔(1,1-5)

 

말라기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경고의 말씀을 받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저희를 사랑하셨습니까?’ 라고 말한다.(1:2)”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째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였을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을 현실 가운데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체험하기를 원했다.

특별히 그들이 보기 원했던 것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그러나 성전이 재건되고 예루살렘성도 보수하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은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을 소유의 정도에서 확인하고자 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하느님의 참모습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국경 너머에서도

위대하시다!‘ 하고 말하리라.(1:5)"

이스라엘은 국경 안에서는 하느님의 자신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볼 수 있었고

국경 밖에서는 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위엄과 능력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그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느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릇된 경신례(1,6-14)

 

1,6-10 :

하느님은 제사장들에 대하여 “내 이름을 업신여기는 자들”이라고 부르시며

그들의 죄를 책망하셨다.

제사장들은 하느님을 경외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느님을 멸시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의 악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저희가 어떻게 당신의 이름을 업신여겼습니까? 하고 말한다마는

내 제단에 부정한 빵을 바치는 것이 바로 그런 짓이다.

또 저희가 어떻게 당신을 더럽혔습니까? 하고

너희가 말한다마는 ‘주님의 제사상이야 아무러면 어떠냐?’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짓이다.(1:7)”

그리고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8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너희가 절름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그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가져가 보아라. 그가 너희를 달가워하겠느냐?

그가 너희를 좋게 받아들이겠느냐?”

 

무엇이 이처럼 하느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부패에 빠지게 했을까?

그들은 부르심을 세속화 또는 직업화했기 때문에 부패에 빠졌다.

제사장의 부르심은 매일 제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실하게 자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았더라면

그들은 매일 새롭게 하느님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느님을 멸시하게 된 것은

제사장직을 부르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직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 드리는 일을 번거로운 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더러운 떡, 병들고 저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제사장들이 하느님을 업신여겼음으로

하느님은 그들이 구할지라도 응답해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성전 문을 닫아걸어서

너희가 내 제단에 헛되이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너희 손이 바치는 제물을 받지 않으리라.(1:10)”.

 

1,11-14 :

여기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는

하느님의 우주적 통치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주님께서 더러운 예물을 드리는 예루살렘성전을 버리시고

이방인들 가운데 정결한 예배를 드리는 자들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겠다는 의미다(1:11).

즉 하느님의 영광이 하느님을 멸시한 이스라엘로부터 떠나

이방인들에게 옮겨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거부한 복음을 이방인들이 받아들임으로

그들 가운데 교회가 세워질 것과

그들 앞에 은혜의 문이 열려질 메시아 시대를 예언한 것이다.

하느님은 계속하여 그들의 말을 언급함으로

그들이 하느님을 얼마나 멸시하고 있는지 말씀하셨다(1:12-13).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의 행위를 사기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1:14).

“자기 짐승 가운데 수컷이 있어서, 그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서는,

주님에게 흠 있는 것을 바치며 속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정녕 나는 위대한 임금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민족들은 나의 이름을 경외한다.”

이 말씀은 “하느님은 만유의 주님으로서 존귀함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가 그를 높이는 것 자체가 영광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멸시했다.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